성효은의 스타트업 브런치
얼마 전 예술 분야 스타트업과 예비창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그동안 인큐베이팅했던 기업 리스트를 보니 문화예술 분야 스타트업 비중이 높은데 대부분 타 분야 또는 융복합 기술(예. 웹, 앱, 빅데이터, AR/VR 등)과의 결합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비즈니스로 창출되고 있는 모습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국내외 아트페어와 갤러리, 경매장, 공연 등 문화예술 시장이 전반적으로 큰 침체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소셜(Social)과 버추얼(Virtual)의 의미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코로나 19가 쏘아 올린 언택트 열풍은 과거 오프라인 기반의 체험형 위주로 이루어진 문화예술 시장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AR/VR 갤러리, 온라인 스트리밍, 인스타그램 라이브, 전시 스트리트뷰, 화상 경매 등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영역으로 확장되며 가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고 있다. 이젠 문화예술을 즐기는 방식도 진화하는 시대. 그 사례들을 크게 3가지 카테고리로 정리해 보았다.
디지털 예술과 블록체인이 만났을 때
미국 경매회사 크리스티 측은 고(苦) 백남준 작가의 영상작품 'Global Groove'이 'NFT'(Non Fundable Token·대체불가토큰) 경매에 나온다고 5월 27일 밝혔다. NFT는 디지털 콘텐츠에 고유성과 소유권을 주는 블록체인 기술이다. 희소성을 부여할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것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고유 코드를 저장하면, 블록체인이 기록하고 저장하여 가치를 부여한 후 NFT가 소유권을 입증해 주는 방식이다.
최근 크리스티 경매에서 '비플(Beeple)'이라는 예명을 쓰는 아티스트 '마이크 윈켈만(Mike Winkelmann)'의 디지털 아트워크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가 약 6,930만 달러 (한화 783억 원)에 낙찰되면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해외를 비롯한 국내 업체들도 NFT 미술품 시장에 진출하고 있지만 투자 안정성, 저작권, 원본 확인 등에 대한 이슈로 아직까지는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현대 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는 NFT에 대해 'I think it’s I.C.S.(나는 그것을 I.C.S.라고 생각한다.) ”며 “International crooks and swindlers.(국제적인 도둑놈과 사기꾼)”'이라고 혹평을 가했다. 하지만 유명 예술작품들이 높은 가격으로 계속 낙찰되고 크리스티, 소더비, 서울옥션블루 같은 국내외 메이저 미술품 경매회사들이 NFT 미술품 시장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면서 디지털 예술과 블록체인의 결합에 대해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온라인 플랫폼, 문화예술의 장벽을 허물다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큰 변화 중의 하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문화예술의 향유이다. 경매, 갤러리 전시, 아트페어 뷰잉 룸, 공연 등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향하고 있다. 여기에 기술을 활용한 연출력까지 더해져 예술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시간과 장소 구애 없이 특별한 경험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SNS를 통해 예술가-예술-향유자가 소통하기 시작했다. 20년 4월 19일 세계 4대 뮤지컬로 손꼽히는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25주년 공연 실황이 Youtube 채널 '더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s Must Go On)' 을 통해 무료로 공개되었는데 단 2일 만에 조회수가 1,000만 뷰를 기록했다.
케이옥션은 미술품 정보를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여 컬렉터가 미술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를 습득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고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저가부터 고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프리미엄 온라인 경매' 횟수를 늘려 격주마다 진행하며, 20년 10월 현장에서 진행되는 경매를 라이브로 관람하면서 동시에 서면, 전화, 온라인으로 응찰할 수 있는 'LiveOn Auction: A New Beginning' 을 실시하기도 했다.
매일 저녁 11시, 하루 한 점의 미술 작품과 에세이를 디지털로 만나볼 수 있는 미술 구독 서비스 플랫폼 '백그라운드 아트웍스(BGA)'. 월 1만 2천 원의 구독료를 지불하면 고전과 현대미술을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들을 웹사이트와, 안드로이드 및 iOS 앱을 통해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크라우드 펀딩 형태로 미술품에 투자 후 작품 가치가 상승하면 매각하고 지분만큼의 차익을 나눠 가지는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2018년 아트앤가이드에서 고(苦) 김환기 화백의 작품 <산월>을 국내 최초로 공동 구매하였으며 현재까지 ‘아트투게더’, ‘테사(Tessa)’, ‘피카프로젝트’ 등의 회사가 공동구매 시장에 뛰어들었다. 미술품 공동 구매의 경우 실물이 아닌 분할 소유권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까다로운 보존관리에 대한 걱정을 줄일 수 있고 적은 금액으로도 고가의 작품을 소유하여 투자 수익을 예상할 수 있기에 '향유'와 '투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일반인과 특히 밀레니얼 세대가 주류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에서 아티스트별 콘서트 수요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의 콘서트 메이킹 플랫폼 '마이뮤직테이스트(마뮤테)'는 음악 아티스트의 공연을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팬들은 자신이 원하는 아티스트의 콘서트를, 아티스트에게는 다양한 콘서트의 기회를, 공연기획자(프로모터)에게는 안정적인 수익구조와 지속적인 콘서트 기획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와중에도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으로의 방향 선회, 자체 앱 출시, 온라인 팬미팅과 비대면 팬 사인회, MD 판매와 같은 커머스 사업 등을 통해 사업영역을 다각도로 확장하는 모습이다.
기술, 또 하나의 작품이 되다
가전만 작품이 되라는 법이 있나. 참고로 나는 작품 같은 가전제품 브랜드 아주 좋아한다. 비싸서 엄두가 안 나서 그렇지. AI(인공지능) 및 가상현실(AR), 증강현실(VR) 등을 접목한 실감형 기술의 활약이 대단하다. 이젠 '기술'이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는 시대를 맞이하면서 좀처럼 경험할 수 없었던 풍경들을 자아내고 있다.
페르노리카 코리아의 럭셔리 위스키 브랜드 '로얄살루트'는 국내 아티스트 5인과 로얄살루트의 럭셔리 라인업을 현대적 예술작품으로 표현한 '로얄살루트 컨템포러리 아트 디지털 페스티벌' 을 통해 VR 전시회, 스트리트 전시회 방식으로 예술작품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예술가 세바스티안 에라수리스(Sebastian Errazuriz)와 잰더 엑블라드(Zander Eckblad)는 증강현실을 통해 집에서도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비대면으로 작품을 사고팔 수 있는 온라인 전시회 플랫폼 'All Show'를 개발했다. 작가들은 작품을 자유롭게 내놓고 구매자들은 이 작품을 둘러보고 작가에게 직접 연락할 수 있다. 온라인 관람객들은 'See in AR(AR로 보기)' 기능을 통해 작품을 눈 앞의 공간에 불러와 감상할 수 있는데 무료이고 앱을 다운로드할 필요도 없다. 잰더 엑블라드는 "With the arrival of 5G, 3D scanning technology and augmented reality glasses; art as we know it will change forever. We are looking at the beginning of a new artworld(5D, 3D 스캐닝, 증강현실 안경 등의 등장으로 새로운 예술 세계가 시작할 것)"이라 말했다.
시장 크기나 수요층이 다소 한정되어 있는 국내 문화예술시장 특성상 이러한 변화들은 틈새 생산자와 소비자를 발굴하고, 폭넓은 채널을 통해 소통하며 이들을 집합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시장의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그 속에 스타트업이 문화예술 시장에 합류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며 보다 진화된 방식으로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시키고 있다. 인류가 진화하듯이 예술도 똑똑하게 진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