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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a Aug 06. 2022

직장인, 미국 변호사 준비 생존기 (1학기 편)  

직장인, 미국 변호사 준비 생존기




맙소사.


미국 로스쿨 여름학기 종강일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여름학기 마지막 과목은 증거법(Evidence)으로 연세 지긋한 노교수가 맡고 있다. 매주 수 백 페이지의 리딩 자료, 랜덤 토론 세션과 퀴즈로 미칠 것만 같다.



회사와 학교 사이에서 그저 버텨보는 것이 목표였던 내게 그동안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문의해 주시는 분들도 늘어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부족하지만 조금씩 기록해 보려 한다.   


백그라운드가 어떻게 되는가?

비법학 전공자, 법률 관련 업무 경험은 없다. 학부 시절 영어를 전공했고 MBA에서 영어를 간혹 썼기 때문에 기본 리딩 및 리스닝은 가능하나 라이팅, 스피킹은 많이 부족하다.


어떤 학위 과정을 하고 있는가?

미국은 주(State) 마다 변호사 응시 요건이 다르고 취득할 수 있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본인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국내 직장인들은 대부분 LLM 과정을 통해 DC로 응시하는 편이다. LLM 지원을 위해 법학사(LLB)를 반드시 소지해야 한다. 한국 변호사는 LLM 학위가 없어도 CA, IL로 응시 가능하다.


나의 경우 서울사이버대학교 법행정학과 학사(편입),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미국법학과 석사, 코네티컷대학교 로스쿨 LLM 과정을 밟고 있다.


1학기는 어떻게 보냈는가?

사이버대 24학점, 한림 10학점으로 총 12과목을 들었다. 첫 학기는 시간 관리가 관건이었다. 이를 위해 일정표를 평소보다 세세하게 관리했다. 몰입도가 낮은 구간, 낭비되는 시간대, 업무가 몰리는 시점, 불필요한 관계 등 마이너스 요인도 최소화 했다.



사이버대 첫 학기 성적이 나오면 LLM 과정에 지원할 수 있는데 법학사 완료 시 졸업/성적 증명서를 LLM 담당자에게 제출하면 된다. 기말고사 직후 토익 시험에 응시했고 동시에 학업 계획서와 지원서를 작성했다. 그 외 제출서류와 LLM Legal Writing 시험도 준비했다. 추천서는 교수님 1명, 변호사 2명에게 부탁을 드렸다. 합격 공지는 8월 말쯤 받았다.


LLM 학위는 어느 정도의 재정 여건이 되는 사람들이 타깃이므로 합격 자체는 어렵지 않다. 버티느냐, 나가떨어지느냐. 그 후가 문제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결론은 할 만하다.


1학기를 동안 들었던 생각은?

의지는 최고점을 찍었으나 현실은 단어 검색과 문장 해석하는데 모든 시간을 썼다. 영어 단어를 검색하면 한국어 뜻을 몰라 한국어로 그 뜻을 다시 검색하는 게 일상이었다. 예를 들어 retrospective legislation -> 소급입법 -> 과거 행동 또는 사건을 현재 새로운 법으로 적용 -> 영어로 다시 이해하는 순이었다.


일하고 잠잘 때 외에는 책상에만 앉아 있었다. 판례 한 두 페이지를 읽는데 기본 3-4시간이 걸렸고 그마저도 몇 분이 지나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작정 읽고 또 읽고 외웠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넘어갔다.



과목마다 내용 차이는 있지만 결국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다. 100% 이해는 불가하므로 첫 학기는 기본 개념과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하는데 의미를 뒀다. 연습문제를 풀며 룰(Rule)을 적용하는 연습도 병행했다.


자고로 사람이란 눈에 보이는 것에 충실하므로 당장의 결괏값이 나오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그 구간을 넘겨야 하는 것 같다. 반복에 지치면 안 된다. 새로운 과목을 배우면 초기화가 되지만 어쩔 수 없다. 그 패턴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었던 순간은?

체력과 감정 조절이 가장 힘들었다. 의욕은 앞서나 상황은 따라주지 않으니 몸이 버티지를 못했다.


일정이 맞물리면 대학원 수업 도중 사이버대 시험을 쳤는데 6월 중순엔 기말고사와 수시 시험만 총 15회를 쳤다. 그렇게 진이 빠진 상태에서 집으로 오면 기억이 끊기거나 눈을 뜨면 아침인 상황이 여러 번이었다.



또다시 학교를 다니는 나를 화젯거리로 삼는 분들도 있었다. 물론 뒤에서 들은 말이지만 피해를 준 적도 없고 그런 말을 들을 정도의 관계도 아니었는데 신기하면서도 씁쓸했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내가 잘 되길 바라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따뜻한 밥 한 끼에 술잔을 기울여 주던 사람들. 몸은 어때, 도와줄 건 없니, 언제든 연락해, 결국 끝까지 갈 거야. 그 말 한마디가 참 눈물 나고 고마웠다. 진짜를 곁에 두게 된 시간이었다. 그 후로 별 것 아닌 것들도 새삼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겨졌다. 그런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틴 것 같다.


그 시간을 지나 22년의 여름학기를 보내는 중이다. 아직 5번의 라이브 수업과 파이널 시험이 남았으나 조금씩 끝이 보이는 요즘이 행복하고 벅차다. 내년 여름엔 어딘가로 훌쩍 떠난 나를 상상하며 다시 판례집을 읽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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