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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a Seong Sep 03. 2022

직장인, 미국 변호사 준비 생존기 (2학기 편)

직장인, 미국 변호사 준비 생존기




데드라인이 코 앞인 보고서를 제출하고 집으로 가는 길. 이번 한 주도 무사히 넘겼다.


여느 때처럼 도서관에서 주말을 보내다 밖을 나섰다. 이번 주는 어떻게 버틸까. 막막함에 미칠 것 같지만 나는 안다. 이 감정이 올라온다는 건 곧 끝이 다가온다는 의미다. 그렇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여름학기가 마침내 끝났다. 아직도 거쳐야 할 구간이 많지만 가장 맞이하기 싫었던 구간의 마침표를 찍었다.  <직장인, 미국 변호사 준비 생존기(2학기 편)> 을 기록한다.


2학기는 어떻게 보냈는가?

작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40학점을 채웠다. 2학기는 1학기와 다를 게 없었다. 처음 듣는 과목이 편성되어 여전히 단어, 문장 해석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9월 말 미국 로스쿨 과정을 시작하면서 차원이 다른 고통을 맞이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모르는 것뿐이었다.


일이 힘든 날은 뻗어 버릴까 봐 퇴근 후 늦게라도 카페로 향했고 스터디카페 정기권 등록까지 했다. 하루를 포기하면 다음 날은 배로 힘들어지기에 어떻게든 목표치를 채우고 집으로 갔다. 어려운 수업은 새벽 1시가 넘을 때까지 공부를 했고 어쩔 땐 2-3시에 집으로 갔다.



주로 들었던 생각은?

내가 유능하단 생각은 단 한 번도 한적 없다. 그래도 평범하다고는 생각했는데 이 마저도 아닌가 라는 생각을 수백 번 했다. 이야기를 나누니 나와 비슷한 분들도 있지만 필드에서 직간접적으로 뛰는 분들이 많았다.


2학기가 되자 열등감, 부끄러움 등 새로운 감정에 휩싸였다. 이곳에서 비교할 필요가 있나? 내가 겪는 감정을 다른 누군가도 경험하겠지. 지금의 감정도 언젠가 과거가 되겠지. 지금의 나는 그들처럼 될 수 없지만 이렇게 해치우다(?) 보면 조금은 따라갈 수 있겠지. 통제 밖의 것은 수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이버대는 어땠나?

사이버대학은 중요도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대신 출석, 과제, 시험은 확실히 챙겼다. 수시 시험과 과제가 꽤 있으므로 사전에 체크해야 한다. 오픈북이 가능하니 기본만 해도 학점 4.0 이상 나온다. 머리에 남는 게 없지만 그 정도는 감안했다.


참고로 서울사이버대학교는 아주 좋은 곳이다. 직장인은 학비가 무료다. 커리큘럼도 좋고 유익한 프로그램도 많이 제공한다. 본인이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분명 좋은 채널이다.


한림 미국법 과정은?

한림 교수진은 모두 한국인이고 한국어로 진행한다. 영어를 못해도 되냐고 여쭈어 보시는데 수업 자료가 영어이긴 하지만 분위기 자체는 부담 없다. 타이트하게 진행하는 교수라도 본인 노력 하에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나도 2학기까지는 힘들었지만 그 정도도 따라가지 못하면 애초에 의지가 없는거다.


한편 학습 과정에서 한국어를 찾는 나를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현직에 계신 분들은 "무조건 영어로 보고 생각해라." 말씀하셨는데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1년 동안은 한국어와 병행했으나 점점 영어로 찾고 의식하는 연습을 했다. 3학기부터는 거의 영어 자료만 보며 수업을 들었다.



2학기 수업 중 정말 타이트하게 진행하는 교수님이 있었다. 토요일 10시 수업이었는데 아침 6시에 일어나 2~3 시간 정도 예습을 하고 들어갔다. 그렇게 해도 중간고사를 과락 수준으로 봤다. Rule 적용이 안 됐고 문제 자체도 읽히지 않아 시간이 부족했다. 질문이 많은 수업은 몇 번이라도 더 읽고 들어가야 겨우 이해하고 답변을 했다.


1년 동안은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했고 에세이 과제도 먼저 제출했다. 답안을 공개해야 했으나 매번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엔 지적을 많이 받아도 4회 차가 되니 시간 내에 이렇게만 작성하면 된다는 평을 받았다.


창피하지만 그 순간을 견뎌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기말고사도 엉망으로 본 것 같은데 A+를 받았다. 기본을 지키면 기본 학점은 준다. 단 스스로 챙겨야 한다. 자격증 취득이 우선이기에 일반 대학원과는 다른 분위기인 것 같다.


UCONN 첫 학기는 어땠나?

앞서 말했지만 상상 이상의 스트레스가 시작됐다. 가을학기 첫 과목으로 ‘Legal Writing & Research’ 수업을 들었다. 로스쿨 신입생 필수과목이다. 말 그대로 법률가로서의 글쓰기, 자료 찾기와 접근 방식들을 배운다. 교수 자체는 좋았다. 적당한 압박, 속도를 조절하며 과제를 던져주고 리드했다.


수업 흐름은 케이스 하나를 던져 준다. 케이스를 분석하며 핵심을 논한다. 클라이언트 사건에 맞는 판례와 조항을 Westlaw에서 찾고 우리 사건에 적용한다. 근거 자료에 기반해 승소 또는 패소 의견 제시 후 마무리한다. 이것을 I-R-A-C 구조로 풀어간다. IRAC 글쓰기는 네이버나 구글로 검색하면 정보가 많으니 설명은 생략한다.


수시 과제를 통해 이 작업을 반복하고 디밸럽 한다. 기말고사는 새로운 케이스를 주고 배운 것에 기반해 Interoffice Memo를 쓴다. 시니어 변호사를 위한 보고용 문서다. 10장 내외로 쓴다. 아주 유익했고 왜 필수과목인지 이해했다.


초기에 실수했던 부분은 법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자료들(예. 트렌드, 뉴스 기사 등)로 주장한 것이다. 지금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 그 정도로 법학에 무지했다. 예전에 논문을 적으면서 Citation 작업을 했는데 유사한 부분이 많아 감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나마 쉬운 수업이었지만 경험이 없으니 어려웠다. 그래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오피스아워나 이메일을 통해 피드백을 받으며 페이지를 채워나갔다.



그러다 올해 1월, 겨울학기로 ‘Torts(불법행위법)’을 들었다. Socratic Method 수업의 정석을 보여주는 교수가 맡았다. 목소리가 취조하는 듯해 내 이름을 부르면 정말 불법을 저지른 사람 마냥 심장이 두근거렸다. 참고로 미국 로스쿨이라고 모두 소크라틱 메소드로 교육하진 않는다. 교수법이 다르고 과목 특성도 있기 때문에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러프하게 진행하는 수업이 있는 반면 다소 몰아붙이듯 진행하는 수업도 있다.


Torts 교수는 요일별 콜드 콜 그룹을 정해 구성원 이름을 돌아가며 불렀다. 난 세 번 정도 콜을 당했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진심으로 총 맞는 심정이었다. 중간이 없는 사람이라 답변을 하면 맞아/아니야 단호하게 말했다. 업무가 많은 날은 말할 기운도 없어 정신이 나간 상태로 대답했다. 그날은 모조리 털린 채 집으로 갔다. 일요일 밤만 되면 땅으로 꺼져 사라지고 싶었다.


교수가 그랬다. 로스쿨이 그나마 평화로운 곳이다. 죄송하지만 당시의 내겐 그녀와 함께하지 않는 곳이 곧 평화였다. 이 시즌에 유독 일이 많았고 수업 강도까지 높으니 몸이 견디질 못했다. 종강 직후 구토에 코피를 몇 시간 쏟았는데 수개월을 3-4시간만 자며 버텼던지라 탈이 났던 것 같다. 다행히 이 수업에서 내성이(?) 생긴 것 같다. 하하.


수업을 듣다 보면 느끼겠지만 교수마다 개성이 확실하다. 그 개성을 고려해 접근하면 좋다. 불법행위법 교수는 판례를 아주 디테일하게 읽는 것을 추구했다. “왜?”를 계속 생각하게 만들고 페이지 구석구석 숨은 Key sentence 답변을 요구한다. 그런 수업은 준비할 것도 많고 정신을 제대로 차려야 한다.


웃긴 건 콜드 콜 빈도가 높을수록 리딩 속도나 판례 분석 능력이 향상된다. 콜드 콜은 로스쿨 수업에서 아주 흔하다. 익숙해져야만 하고 그래야 배우는 게 있다. 이 부분은 마지막 학기 편에서 풀어보겠다.


힘들었던 순간은?

죄송하지만 학기를 거듭할수록 힘들었다는 점, 그렇다고 내가 부정적인 사람은 아니란 점을 미리 강조하고 싶다. 깊게 말할 수 없지만 안팎으로 정말 힘들고 여기서 바닥을 더 찍을 수 있나 싶었다.


제정신에 앉아 있는 게 힘들어 수업 도중 카메라를 꺼놓고 울기도 했다. 그 와중에 수업을 듣고 새벽까지 일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진을 했다. 노력에 대한 결과였지만 그 결과를 위해 치러내야 했던 과정은 말로 담을 수 없다. 외면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통한다는 걸 배웠다. 지금은 웃음이 나온다.



직장인에겐 변수가 많다. 제어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나의 기준을 가지고 한다는 그 무언가, 몸과 마음을 다해 직진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나'를 더욱 알아가게 됐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혹은 없는 일들을 무수히 마주하고 끝까지 내려가다 보면 결국 이해하는 것이 불가함을 깨달았다.


그 후 좋은 문장을 찾고,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그림을 느껴보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좋은 것이기 위해, 그런 방식을 통해 내가 세상에 덜 찌들고 덜 훼손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나약한 사람인지라 순간의 감정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덤덤해졌고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


지난주 증거법 파이널 시험을 마무리 지었다. 눈앞에 뜬 점수에 잠시 충격이었지만 동기들과 처참함의 감정을 나누며 또 하나의 끝을 자축했다. 그래, 오늘의 점수는 그저 과정에 불과하니 훌훌 털고 다가오는 다음을 맞이하자.


하루를 버티는 게 목표였던 내가 이제 마지막 학기를 앞두었다. 일주일 간 모처럼 여유로운 일정을 가지며 좋은 에너지를 가득 받았다. 앞으로의 일정표를 보니 조바심이 들지만 후회 없이 잘 헤쳐 나가고 싶다.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이렇게 시간은 흘렀다.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래서 특별한 지금의 모든 순간들. 시간이 흘러 이 글을 다시 보았을 때 애틋한 감정만 남아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 학기도 후회 없이 잘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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