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미국 변호사 준비 생존기
네 번째 학기다. 코로나에 걸려 몇 주를 후유증에 시달렸네. 그 사이 출근을 하고 강의를 뛰고 수업을 듣고 1차 졸업 시험과 중간고사까지 무사히 마쳤다. 1년 전 마치 바이블처럼 읽던 The Daily Stoic 한 구절이 떠올랐다.
One day, it will all make sense. We need to remember that all things are guided by reason - but that it is a vast and universal reason that we cannot always see.
크고 작은 일련의 순간들은 가끔 나를 좌절시키기도 했지만 내가 견뎌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기억이 살아있을 때 최대한 글로 남겨둬야 하기에 3학기에 대한 생각과 향후 계획을 기록한다.
3학기는 어떻게 보냈는가?
3월부터 8월까지 40학점을 채웠다. 팀장 승진 후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다. 외부 활동도 잦아져 업무 스터디 비중도 높여야 했다.
과거에는 느낌에 의존해 영어를 구사했는데 정확도를 높이고 싶었다. 과외를 통해 라이팅, 스피킹 파트의 취약점을 보완했고 수업 녹화 파일을 생활 소음처럼 들으며 중얼거렸다. Youtube에서 바 시험 관련 채널을 구독해 운동을 할 때도 듣고 뛰었다.
학교 수업과 회사 업무 외에는 공부만 했었다. 무너질 것 같을 땐 멘토와 동기들을 만나 멘털을 추슬렀고 버텨야 하는 이유만 되뇌었다. 1년 전에 대비해 여러 면에서 나아졌지만 여전히 어휘력을 중요 과제로 뒀다. 출퇴근길에 볼 자료들을 정해 반복하며 보고 외웠다. 더불어 판례집을 의식적으로 읽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는데 읽어가는 게 목표가 아닌 무엇을 읽고 파악했는지에 주력했다.
주로 들었던 생각은?
I think. 이 공부를 시작하며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다. 생각이란 걸 해봤으면 좋겠다, 언제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을까. 더 이상의 바닥은 없겠지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그보다 더한 바닥을 찍고 미치겠다 싶으면 신기루 같은 무언가가 눈에 아른거렸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럴 거면 준비는 왜 했나,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고 수업을 들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기엔 쏟은 시간과 노력은 아직 부족했으니까.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한 과정이고 설령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도 이 때문에 인생의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니 순간에 흔들리지 말자며 자기 암시를 했다.
사이버대는 어땠나?
조기졸업을 계획했으나 응시요건이 강화되어 무산됐다. 매 학기 계절학기를 포함해 24학점을 들었는데 18학점을 더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미국 로스쿨 여름학기에 신경을 쏟아야 했기에 수업, 출석, 과제, 시험 등 기본사항만 준수하며 들었다.
한림 과정은?
신규 과목(유언/신탁법) 및 개인적으로 어려웠던 과목(민사소송법, 회사법) 중심으로 수강했다. 또한 판례 분석과 연구 수업을 들으며 판결문을 I-R-A-C 구조와 연관 짓는 훈련, 이를 통해 에세이 시험 감각을 익혔다. 한림 과정에서 기본 개념을 듣고 UCONN 수업을 들으면 이해도 차이가 확연히 났다. 어차피 과목 자체가 모두 바 시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앉아 있는 시간만큼은 집중해 수업을 듣는 것이 좋다.
UCONN 과정은 어땠나?
유콘 과정은 봄, 여름학기를 포함해 총 4과목(14학점)을 이수했다. 과목별 후기는 아래와 같다.
- U.S. Law and Legal Institutions : 미국 법률 체계와 사법 제도, 법해석의 고유 권한과 행위, 법규 해석 기준, 법해석 방법론 및 기술 등을 배운다. 이 수업도 상당히 고역이었는데 그만큼 법률적 사고방법에 익숙지 않다는 증거였다. 개념 자체가 머리에서 그려지지 않았고 이걸 왜 적용하는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과제는 제출해야 했다. 무작정 앉아 판례집을 읽고 몇 줄이라도 적겠다는 의지로 머리를 쥐어짰다.
그렇게 꾸역꾸역 하다 보면 무언가 보였고 매번 데드라인에 맞춰 제출은 했다. 판례를 읽을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분석하는지, 최종 판결까지 얼마나 세심한 작업과 사고를 요구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처럼 비전공자이거나 실무 경험이 없는 분들의 경우 이 수업을 정말 어려워했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 판례를 보는 시야가 확연히 달라진다. 개인적으로 로스쿨 수업 중 이 수업이 가장 유익하지 않았나 싶다.
- Constitutional Law : 연방 및 주정부의 관계, 수정 헌법, 삼권분립, 헌법상 개인의 자유와 평등권 등 마치 미국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다. 미국법 체계의 근간을 배우는 만큼 책 두께도 엄청나다. 파이널 시험을 8시간 동안 보느라 진이 빠졌다. 3시간이면 충분하나 여유 있게 8시간을 준다고 했는데 어이가 없어 시험 치는 내내 헛웃음만 나왔다. 점심까지 거르며 시험을 쳤으나 3초를 남기고 겨우 답안 제출을 했다. 성적은 너그러웠다.
- Legal Ethics : 법조인이 갖춰야 할 윤리 및 법적 사항을 다룬다. 그 예로 현재-과거 클라이언트의 이해관계가 상충했을 때 변호사가 행해야 할 조치사항이나 금지 규정 등이 있다. 이론을 사례와 엮어 학습한다. 은근히 복잡하고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아 룰을 확실히 외워야 한다. 필드 경험이 없어서인지 공부를 해도 추상적으로 느껴진 과목이다. 예를 들어 내가 봤을 땐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이 필드에서는 큰 문제가 되거나 결코 넘어가면 안 된다는 그런 기준들이 있다.
- Evidence Law : 미치고 환장하겠다는 말을 매일 같이 달고 살았던 수업이다. 예외(Exception)의 예외가 꼬리처럼 늘어져 미궁 속에 빠지는 것 같고 무작위 콜드 콜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어떤 질문이 걸릴지 가늠할 수 없어 매번 마음을 졸였다. 쉬는 시간 직전 배정된 질문이 뜨는데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판례집과 이론서를 펼쳐 놓고 미친 듯이 준비를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도서관에 나가 책을 읽으며 준비를 했고 정답 여부를 떠나 Volunteer로 자처해 답변했다. 파이널 시험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내 점수가 평이했던 건지 학점은 나쁘지 않았다.
UCONN 수업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봄/가을학기 수업은 필수 과목으로 온라인 진행, 여름/겨울학기는 일반 과목으로 오프라인 진행이다. 학점은 2학점, 4학점 단위로 개설된다. 수업은 평일 퇴근 후 이뤄진다. 4학점 수업은 주 9시간 이상을 수업에 할애하므로 주말을 활용해 수업 준비 및 컨디션을 조절하는 게 좋다.
수업 강도는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입 꾹 닫고 앉아만 있어도 될 듯하고 실제 그런 분들도 있다. 그래도 나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최대한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한다고 티가 나는 것도 아니고 점수를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장학금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어차피 하는 것 제대로 하면 좋겠다. 무언가는 남는다.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우선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주 2,3회는 코피를 쏟았고 회사 일이 힘들 땐 길에서 넋 놓고 멍 때린 적도 많았다. 7월부터는 ‘잘하자’는 생각보다 ‘제발 버티자’라는 생각만 했다. 수업을 듣고 다시 새벽까지 일을 하고 택시에 겨우 몸을 실은 채 귀가했다. 학기가 지날수록 앓는 횟수가 늘어나는데 그럴수록 아프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난 그러지 않았지만)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고 틈을 내서라도 운동하기를 당부한다.
두 번째로 비교 의식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던 점이다. 4월 Legal Institutions 수업에서 극에 달했다. 1년 차가 되어도 변화가 없는 느낌, 팍팍해져 가는 삶의 질, 정체된 것 같은 내 모습을 볼 때면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법학이 나와 안 맞나 싶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5월부터는 집 근처 대학 도서관에 주말 내내 박혀 있었다. 3달 동안 할 수 있는 건 다한다는 각오로 공부했다. LEET, CPA, 변리사, 토익, 각종 고시 등 방학 중에도 수험서와 싸우는 학생들로 가득했고 비슷한 모습의 그들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 부끄럽지만 나만 힘들기 싫었던 건지 힘들어하는 타인의 모습을 통해 나를 합리화하고 싶었던 것 같다.
때로는 감정 주체가 되지 않아 울기도 했고 겨우 마음을 잡고 공부했다. 출근 1시간 전에는 카페에서 e-book을 읽거나 단어를 외우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에는 낮잠을 자거나 회사 근처 카페에서 판례집을 읽었다. 몸이 습관적으로 인식한 건지 복잡한 생각이 들어도 기계처럼 움직였다.
수백 장의 판례집과 자료를 읽다 보면 진이 빠지는 날도 있다. 그럴 땐 도서관 근처 카페에서 녹화 강의를 듣거나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거나 배운 이론을 타이핑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 공부를 하고 다시 도서관에 돌아와 문 닫기 직전까지 공부했다.
그렇게 2개월을 했더니 반나절이면 판례집 40-50 페이지는 그냥 읽히기 시작했다. 모르는 단어도 절반 이상 줄었고 구글링 하지 않아도 판결문의 전반적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예전 수업 판례집들을 펼치니 이걸 이해하는데 왜 며칠이 걸렸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 학기를 마친 소감은?
여전히 배울 것도 개선할 것도 많다. 새로운 과목을 마주하면 다시 겸허해지고 나에 대한 믿음은 불확실해진다. 세상 일은 역시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간절함, 불편함을 마주하는 용기, 실행력으로 임한다면 목표에 가까워져 갈 수 있음을 배웠다. 버티는 게 답은 아니지만 버티는 게 유일한 답일 때도 있다. 3학기가 내겐 그랬다.
향후 일정과 바라는 것은?
올해 12월 국내 과정은 공식적으로 끝이고 내년까지 미국 로스쿨 수업 두 과목만 들으면 최종 학위를 취득한다. 교수 면담을 통해 시험 응시 주(州)를 최종 확정했고 지원 프로세스도 알아보는 중이다. 현재로서는 내가 원하는 State 라이센스를 취득하는 게 우선적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