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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청서 Sep 28. 2021

외국어 소통의 미학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20년이 넘게 나는 한국에서, 짝꿍은 폴란드에서 살았다.

나의 모국어는 한국어, 짝꿍의 모국어는 폴란드어.

그리고 둘 다 이제는 거진 10여 년을 미국 및 캐나다에서 살았고,

영어로 일하고 영어로 생활한다.

생각해 보면, 나 혼자 생각할 때, 한국 뉴스 읽을 때, 브런치에 글 쓸 때, 그리고 주말에 부모님과 통화할 때 말고는 (아 그리고 한국 드라마 볼 때 빼고는)

한국어를 접하는 시간이 드물다.

한국인 지인을 만나지 않는 이상, 한국어를 소리 내어 누군가와 소통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겠다.


하지만 영어는 여전히 외국어이다.

내 전문 분야를 이야기할 때는 이젠 영어가 더 편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내 감정과 아주 사소하고 미묘한 것들을 영어로 충분히 표현하는 건 아직 한참 멀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지만,

우리의 공용어는 영어뿐이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있지만, 아직 둘 다 걸음마 단계라 아마 서로의 언어로 소통하는 건 머나먼 이야기.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가진 언어 장벽을 안고서 소통을 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갑갑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나는 사실 이 언어 장벽이 소통을 효율적으로 만든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간결하게, 직설적으로.


어떻게 보면 관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잘 싸우는 방법", 혹은 대화로 타협하는 방법을

우리는 이 언어 장벽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터득했다고 생각한다.


문화적으로, 언어적 배경으로 전혀 다른 곳에서 왔지만

살다 보면 다 비슷하다.

정말 별거 아닌 일로 토라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크고 작은 중대사를 함께 해결해야 하기도 한다.

대화와 타협의 연속이다.


한국어로 한국인끼리 연애할 때는 오히려,

"이렇게 하면 알아듣겠지"라는 마음이 한 군데 있어서 돌려 말하거나, 은근슬쩍 힌트를 주는 화법을 종종 시전 하고는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배경의 두 사람이 외국어로 소통할 때는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기대로 어줍지 않은 언어유희를 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를 중심으로 최대한 간결하고 문제의 핵심을 짚어 말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I'm hurt because..." "I want..." "I wish..."

내가 이래서 상처 받았어. 나는 이걸 원해. 내 희망 사항은 이래.

상대방의 상황을 짐작해서 표현하는 건 오해를 사기가 더 쉬우니, 나를 중심으로 먼저 표현하려 한다.


또한 감정을 표현하기 전 한번 더 고민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면 그것도 하나의 장점이라 하겠다.

뭘 어떻게 말할지 생각해야 하니까 감정이 격앙되어 내뱉는 일들이 드문 것 같기도 하고.

뭐 물론 그렇다고 감정 상할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나는 울기에 거리낌이 없는데(?), 어떤 일로 상처 받고 울다가 겨우겨우 내 감정을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울고 이야기하고 해결하면 또 사이좋게 잘 지내니 그렇게 우리는 하루 한 달 일 년 수년을 채워 나갔다. 이제는 서로가 어떤 부분들에서 상처 받는지 더 잘 아니까 서로를 건드리는 일들이 서서히 줄어들기도 하고.


그래서, 외국어 소통이 다 답답한 것만은 아니다.

직설 화법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 건강한 관계를 맺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럼에도, 서로의 모국어를 이해하고 싶어 한국어와 폴란드어를 각각 배우는 중이다.

서로의 언어 배우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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