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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Dec 05. 2022

[비호외전] 정치판 무협물

중드리뷰


최근 완주한 작품 중 그래도 제대로 완주했다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이 좋아서, 재밌어서라기보다 그냥 제가 건너뜀 없이 쭉 봤다는 의미입니다.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왠지 이 작품은 도장깨기를 해야할 것 같더라구요.


일단 본격 무협 장르긴 한데, 요즘 중드의 경향인지, 드라마의 캐릭터나 장르가 느슨하게 섞여 있는 느낌? 딱 선협! 무협! 가족극! 로맨스! 이렇게 장르를 나누기가 애매하고, 그냥 다 섞여 있는 느낌? 비호외전을 보면서도 그랬던 것 같아요.


일단 주인공 호비가 무협의 주인공이니 도장깨기하듯 무림의 고수들을 만나 차근차근 레벨업도 해야 하고, 그 와중에 로맨스도 꽃피워야 하고, 그 와중에 부모의 복수도 해야 하고, 그 와중에 정의도 실현해야 하고, 기타등등. 그리고 실제로 이 모든 걸 합니다. 근데 저것 중 어느 것도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아요.


우선 호비가 점점 성장을 하기는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어찌 성장하는지는 생략되어요.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고수가 되어가요. 운명의 상대도 만나는데, 딱히 로맨스 무협이라 할 수도 없어요. 두 사람 각자 고충이 있고, 함께 혹은 따로 고난의 시간을 거치는데, 여튼저튼 우리는 저 둘의 사랑을 위한 과정이구나, 알 수 있는 그런 작품들 있잖아요. (예를들어 진정령, 산하령, 일촌상사??)


그리고 세계관 최강자 묘인봉(의천도룡기의 불회 아부지, 여기서는 약란이 아부지, 근데 애아빠가 넘나 쉑쉬해ㅜㅜ)을 복수의 대상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죠. 그리고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두 캐릭터도 이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딱히 복수극이라 할 수도 없어요.


그리고 의와 협이 넘치는 호비는 불의를 참지 않습니다. 지나가다 알게 된 인연의 복수를 위해 목숨을 거는, 그런 무협의 주인공이에요. 그러나 호비를 둘러싼 세계가 무협의 세계냐, 하면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비호외전의 배경은 딱히 강호의 세계를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강호와 조정과 민중들의 삶이 뒤섞인 세계인데, 여기서 묘하게 피곤함이 생겨요.


강호에 몸담고 있다는 사람들이 조정을 위해서 일하고, 조정은 강호를 통제하려 하고, 그 와중에 고통받는 건 민중들이고, 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 오로지 호비입니다. 나머지는 다 정치판이에요. 극중 의와 협을 추구하는 인물은 호비와 묘인봉 밖에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초반부 마을사람들에 대한 봉부자의 핍박은 너무 잔인하고 (막판에 민중들이 봉기 안 했으면 화병으로 뒷목 잡았을 듯), 호비에 대한 봉부자의 복수는 너무 집요해요. (나 굳이 드라마에서 이런 거 보고 싶지 않단 말이다;;) 글고 이게 별 이유가 없다는 게, 그저 민중의 땅을 뺏고, 돈과 권력을 유지하고, 마을사람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이유가 다라는 게 너무 끔찍하더라구요. (이거 뭔가 우리가 실생활에서 겪는 것 같잖아요.)


고구마 산맥을 넘는 고난을 보면서도, 이걸 거치면 두 주인공이 정겁을 무사히 마칠 거야, 둘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뭐 이런 극중 장치로서의 고난이 아니라, 그냥 실생활에서 볼 법한 권력자의 횡포를 보고 있자니 넘나 피곤하더라구요. (그러면서 건너뜀 없이 다 봤어;;) 그래서 그런지 하루에 한두편만 봐도 다음날 겁나 피곤했습니다.


그러나 근래 보기 힘든 묵직한 정공법 무협물이고, 액션도 시원시원해서 계속 보게 되더라구요. 물론 주인공 호비의 액션도 그렇지만, 원자의 캐릭터가 초반에 하드캐리했죠. 두 사람의 로맨스보다 그냥 원자의 캐릭터가 멋있어서 흥미가 생겼던 것 같아요.


무술고수이면서, 무뚝뚝하지만 속 깊고 의리 있는, 거기다 말 못할 사연까지 지닌, 거의 남주에게 줄 법한 설정이 몰빵되어 있는 캐릭터죠. 그리고 원자의 캐릭터의 백미는 저 말 못할 사연 때문에 호비에게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먼저 내뱉고는, 막상 호비가 담담하게 끝을 인정하면 상처받는 그 여린 표정에 있는 것 같아요.


여튼 그렇게 원자의 캐릭터가 전면에서 빠지고, 또 다른 여인이 등장하는데 그 여인이 정령소입니다. 무협의 남주에겐 자로고 따르는 여인이 많은 법.


형비 배우의 연기를 이 드라마에서 제대로 본 것 같은데, 예쁘고 연기도 잘하는데, 처음 등장했을 때 대사가 엄청 빠르더라구요. 극의 흐름보다 정령소 대사 따라가느라 헥헥 댔습니다. 여튼 독과 의술의 고수인 그녀는 호비를 짝사랑하지만, 결국 의자매의 위치에 머물고 맙니다.


사실상 호비에게 더 실리적인 사람은 정령소인 것 같은데, 사랑이 필요에 의해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녀에게도 말 못할 비밀이 있습니다. 남주인 호비의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솔직한 스타일이다보니, 오히려 여주들에게 사연이나 비밀이 많은 것 같아요.


주인공들보다 드라마의 성격을 가장 잘 대표하고 있는 건, 복나리의 세 똘마니 형제들입니다. 강호 출신이나 지금은 조정을 위해 일하고, 실리에 따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면서 호비와의 관계도 유지하죠. 특히 큰 형님은 어느 상황에서나 정치적인 판단을 하고, 드라마 상에서도 이를 꽤 비중있게 보여줘요.


등장인물이 많은 무협물임에도, 등장인물들 간 혹은 전체적인 스토리 분배가 잘 되어 있어, 초반-중반-후반 특별히 쳐지는 구간 없이 스토리가 쭉 흘러갑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따라가기 어렵다거나, 스토리 구성이 복잡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산하령의 등장인물 및 스토리를 파악하려고, 4대에 걸친 가계도를 그렸던 추억. 진정령의 결말을 이해하고자 드라마의 구조를 뜯어보며 리뷰를 쓰고, 무중이에 첫발을 들였던 그 시절. 떼로 등장하는 유비의 등장인물들을 파악하려다 때려치운 기억 등등. 보통 무협물은 이렇잖아요? 특히 프리스트 작가님, 나랑 싸우자ㅋㅋ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자의나 정령소처럼 자기 몫 톡톡히 하는 여캐들도 있지만, 좀 아쉬운 여캐들도 있다는 거예요. 묘인봉의 부인 란이, 호비의 제제 춘화의 경우, 이 남자와 살았다가 저 남자와 살았다가, (사랑해서라면 할 말 없다만) 줏대없이 그려지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막 좋아하면서 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단점을 찾기도 어려운 드라마였어요.(단점이라면 중드스러운 이게 끝이야?싶은 결말이랄까요.) 진준걸 배우와 임우신 배우의 무협 연기를 실컷 볼 수 있어서 좋았다가 가장 솔직한 리뷰일 것 같네요. 그럼 이만, 목표는 2작품 쓰는 거였는데, 한편 쓰고 또 물러갑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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