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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Oct 24. 2023

22년 부국제(BIFF) 리뷰(4)

영화 리뷰

<카메라퍼슨> 10일(월) 19:30 *P&I


지금도 그러하지만, 나는 감독이 카메라로 쓴 에세이가 늘 궁금하다. 작가가 글로 에세이를 써내려간다면, 감독은 카메라에 무엇을 담고 어떻게 편집할 건지로 에세이를 짓고는 하는데, 그 방식이 작가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르기도 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기도 해서다.  


카메라퍼슨은 30여년간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살아온 감독 자신의 자서전이자 커리어 집대성 같은 느낌이다.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을 건조하게 담은 장면과 역사적 기록을 나열하는 듯한 나레이션, 그리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온기와 대화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 감독의 가족, 친구와 같은 내밀한 사생활도 함께 들어가 있다. 이것을 어떻게 배치하고 편집하느냐가 작가로 치자면 문체려나. 그리고 이를 보여주는 작가의 방식은 굉장히 노련하다. 그래, 30년 정도는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서야, 나 이렇게 살아온 이런 사람이야,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이 영화를 P&I로 인디플러스관에서 봤는데, 해당 회차에 다른 상영관에서 화양연화(리마스터링) 상영을 해서 그랬는지, 혼자 봤다. 물론 인디플러스관이 워낙 작은 상영관이긴 하지만, 영화제 기간에 극장에서 영화를 혼자 보려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뭔가 서늘했달까. 가뜩이나 영화의 전당 지하에 있는 극장이고, 영화 속 카메라는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을 떠돌아 다니고, 지금은 저녁이고, 극장에는 나 혼자 있고. 그래도 상영관 앞에서 자원봉사자 한명이라도 지키고 있겠지 했는데,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아무도 없었던;;  


<지옥만세> 11일(화) 20:00 


영화제 기간 중 입소문을 타고 한국영화 한편쯤은 화제작으로 떠오르곤 하는데, 올해는 이 영화인 것 같아서 선택한 영화. 평일 저녁 표를 어렵게 잡아서 갔는데, 극장을 찾은 대다수가 젊은 관객이어서 신기했었던. 이 영화의 어떤 점이 젊은 관객들의 마음을 끌어당겼을까. 아마도 루저들의 연대, 학교폭력, 사이비 등의 소재 때문이지 싶은데, <더 글로리>가 한국을 휩쓸기 1년 전에 나온 영화니, 감독이 소재를 선택하는 안목은 탁월했달까.


영화는 재밌다. 그리고 깔끔하다. 영화의 엔딩에서 관객에게 물음표 잔뜩 던지면서 찝찝하게 끝내지도 않는다. (영화제에서 만나는 영화 중 이런 영화 많다.) 주인공들이 그간 어떤 상황을 겪고 어떻게 굴러왔던 마무리는 아름답게 지어지길 바라는 대부분의 관객의 바람대로 적당량의 따땃함을 남긴다. 엄청 재기발랄하지는 않지만, (사실 그러기만 해서는 안되는 소재이기도 하고) 학교폭력, 사이비를 지나 왠지 청춘들에게 위로? 위안?을 주는 이야기지 않았을까 싶은. 그런데 그 위로가 다 망해라 / 나만 망한 게 아니었구나 / 너도 망하고 나도 망했으니 다 같이 리셋이 주는 위안이랄까.



<두 사람을 위한 식탁> 13일(목) 20:30


아주 특별한, 그렇지만 어쩌면 평범한 모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이다. 젊은 시절은 민주화 운동에 바치고, 딸을 양육하면서는 대안학교의 사감으로 모든 학생의 엄마였던 나의 엄마에 대한 딸의 기억. 거기서 길어올려진 마음을 담은 딸의 일기와 그림. 거식증을 겪었지만 음식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난 딸의 현재. 딸의 병세에 대한 엄마의 알 수 없는 회환과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딸과 엄마의 관계. 할머니, 엄마, 나에게까지 이어지는 서로의 가슴에 상처내기에 주저함 없는 어떠한 결의. 거식증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딸이었다면 느껴지는 어떤 내밀한 고통. 폐막 전 일반상영으로 선택한 마지막 영화로 나쁘지 않았으나, 그렇게 인상적이지도 않다 생각했는데, 일년이 지나 영화를 반추하다보니 하나하나 또렷하게 기억나며 새삼 다시 생각케 하는 영화다.  



<한 남자> 14일(금) 20:00

 

폐막작은 늘 아쉬운데, 늘 보게 된다. 그리고 퇴근하고 가다보니 요 몇년간 폐막식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여튼 그리하여 22년에도 보게 된 폐막작 <한 남자>.  일본에는 이런 소재의 소설이나 영화가 많은 것 같은데, 성년이 되자마자 열개 손가락 지문 다 뜨고, 얼굴 박힌 신분증을 받게 되는 우리나라와는 참 다른 문화구나 싶다.(올해도 이와 비슷한 소재의 일본 영화를 봤다.) 그리고 이런 소재의 영화들이 차용하는 장르는 대부분 미스터리, 아무래도 신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인물을 추적하는 스토리 라인을 취하는데, 이 영화만의 차별점이라면 츠마부키 사토시가 맡은 캐릭터(키도)의 존재랄까. 이 인물로 인해 전체적인 영화의 구성이 액자식 구성을 취하게 된다.


액자 안의 이야기는 변호사 키도가 다이스케의 신원을 추적해 가는 이야기, 즉 다이스케의 과거이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액자는 결국 정체성이 모호한 키도의 이야기인 형태다. 그리고 거기서 한국관객이라면 씁쓸함을 느낄 소재가 나오며 부국제 폐막 상영에 당위성이 부여되는 느낌이었다.


이로써 무려 일년 만에 22년 부국제 리뷰를 마무리하고, 올해 23년 리뷰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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