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이치코> 5일(목) 19:00
2021년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2022년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그냥 우연히 고른 일본영화들이 좋았기에 선택한 영화인데, 올해는 너무 신중했나보다. 프로그램 노트 뒤져가며 신중하게 골랐건만, 매년 베스트를 기록하던 그간의 일본영화들과 달리 다소 실망감을 준 작품이었다.
작년 폐막작이었던 <한 남자>도 그렇고, 이 작품 <이치코>도 그러하고, 그만큼 사회문제가 되서 그런건지, 일본에서는 신분이 불분명한 자들에 대한 소재로 영화를 많이 만드는 것 같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사회적 실종'이라고 자신의 원래 신분을 바꾸고, 인생을 리셋해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는데, 이게 남의 나라 문화다보니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성년이 되자마자 관공서에서 열손가락 지문 다 따고 얼굴 사진까지 박힌 신분증을 받다보니, 그냥 글자만 나열된 일본 신분증을 보며, 저걸로 어케 신분증명이 될까 싶은 느낌.
배경설명은 이쯤하고, 영화의 대한 인상을 말하자면, 주인공 이치코가 동거남 하세가와와 처음 등장하는 청혼 시퀀스에서 일본특유의 야샤시~~한, 나긋나긋하고 순종적인 말투와 태도에서 이미 마음의 장벽이 세워졌달까. 결국 이치코에 대한 퍼즐을 맞춰가는 영화인데, 주인공에 대한 흥미가 크게 생기지 않는 느낌. 그리고 이치코를 추적해가는 하세가와에게도 무게를 실어주다보니 더 애매해진 느낌. 하세가와가 결국 이치코의 실체이자 사연을 알게 되고 폭풍오열하는 장면이 있는데, 너 왜 우니? 이런 냉정한 눈길로 봐졌달까.
이쯤에서 스포를 날리자면, 결국 무적자(호적이 없는 사람)인 이치코의 험난한 인생살이에 대한 영화인데, 플롯 구성에 신선함을 주고자 했으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고, 이치코의 과거를 퍼즐 맞추듯 보여주고 등등. 그에 비해 기저에 깔린 정서가 너무 뻔한 느낌이다. 여성잔혹사에 나올 법한 이야기는 다 나오고, 동거남의 시점으로 진행되다보니 마르고 닳도록 보아온 전형적인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 결국 하세가와의 시점에서 맞춰진 퍼즐이다보니 영화의 말미에 가서도 이치코의 실체를 관객 또한 알 수 없는 것마저 뻔하디 뻔하다. 여성주인공 영화인데 언제까지 남성주인공 시점의 영화를 봐야하는가;;
거기다 엔딩으로 갈수록 시제를 애매하게 배치해서, (여느 예술영화를 표방하는 영화가 그러하듯) 개운치 못한 뒷맛으로 끝나는 영화다. 그러나 영화제 기간 중 본 영화가 이 작품뿐이라 (시평단 리뷰 기한을 맞추느라) 이 영화로 첫 리뷰를 남길 수 밖에 없었는데, 왠지 첫글이라 가열차게 까지 못했다.
<포 도터스> 7일(토) 12:00
올해 본 작품들은 거의 그만그만하거나 이건 아니잖아;; 싶은 작품도 많은 편이었는데, 그나마 베스트를 뽑자면 이 영화가 아닐까 싶다. 작품의 형식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영화적 성취를 이뤘다 할만하다. 감독이 이런 형식을 채택한 것으로 이미 반은 먹고 가는 셈. 작품의 형식은 다큐멘터리에 재연드라마를 섞은 형태인데, 이것이 주는 효과는 심리치료의 일종인 사이코드라마에 가깝다.
영화는 튀니지의 한 가정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엄마와 네 딸들. 친아빠는 있으니만 못하고, 엄마의 남자친구 또한 차라리 없는게 나은, 결국 이들 모녀 사이의 역학관계,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종교, 문화, 정치적 배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영화다. 이를 어떤 형식으로 보여주냐하면 실제인물, 그리고 그들은 연기할 전문배우가 이들 가족의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재연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등장인물은 물론 관객에게도 어떠한 심리적 근간을 건드리는 효과가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