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미야케 쇼, 2023년)은 청각장애인 여성 복서가 주인공이지만, 막상 시간이 흐른 뒤 영화를 반추해보면 신기하게도 장애나 스포츠 등은 첫말에 떠오르지 않는 영화다. 그보다 세월에 따라 사그라드는 체육관의 풍경과 나아가지도 멈추지도 못하는 주인공 내면의 풍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관객의 마음에 쓸쓸한 심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복싱이라는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리듬감, 타격감을 소리를 통해 그대로 전달하며, 관객들이 그 호흡과 리듬을 온몸으로 체화하게 하는데, 그로 인해 주인공 케이코, 관장님, (어쩌면) 체육관이 겪고 있는 시간의 흐름이 관객에게 그대로 스며드는 듯한 느낌을 준다.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공간은 줄넘기 소리, 샌드백 치는 소리 등으로 가득 차 있는 체육관이거나 타격감이 느껴지는 링 위의 공간이다. 관객들과 케이코는 스크린 안과 밖에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케이코가 경험하는 공간과 관객들이 체험하는 공간은 다르다.
고요한 그녀의 세상을 관객들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케이코가 동생과 대화를 나눌 때 무성영화처럼 검은 화면으로 전환되며 자막이 나온다거나, 외화면의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친구들과 수어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짐작할 뿐이다. 대신 소리로 가득 찬 화면과 사운드를 통해 그녀가 있는 공간을 체험할 수는 있다.
그리고 이 체화의 경험은 공간을 넘어, 시간을 쌓고, 결국 케이코의 내면에 가닿게 만든다. 케이코의 공간을 시청각적으로 경험한 관객들은 케이코의 아프다, 무섭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내면의 풍경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가는 체육관, 관장님과 겹쳐 보이게 된다.
영화는 케이코가 어떻게 권투를 시작하게 됐는지, 그녀에게 권투는 어떤 의미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주인공 내면의 동기보다 케이코를 둘러싼 상황을 보여주며, 이 영화만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프로가 되고자 하는 꿈은 체육관 관장과 코치들의 희망이지, 케이코의 꿈은 아닌 듯하다.
호텔에서 일하는 그녀는 신참에게 침대 정리 방법을 알려줄 만큼 베테랑으로 보이고, 동료가 권투에 대해 물어보면 그저 취미라며 가볍게 넘기지만, 사실상 일 외의 대부분 시간을 권투를 하거나 권투를 생각하며 보낸다. 그렇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도 멈추지도 못하는 케이코의 상태를 체육관과 함께 보여주며, 그녀의 내면의 풍경을 체화하게 한다.
프로와 아마의 경계에서 권투에 대한 열망이 조용히 사그라들고, 프로 선수를 배출하지 못하는 오래된 체육관은 신식 체육관에 자리를 내주어야 하고, 평생을 권투에 써버린 몸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서, 사라져감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결국 사라져감과 함께 존재하기로 하는 그들. 확고한 목표의식이나 엄청난 반전 없이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Small, Slow But Steady(영제)>하려는 과정이 주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 라이벌 선수도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일하는 여성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둑 밑에서의 스치는 만남이 전하는 담담한 위안까지. 지금 내 자신이 지치는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