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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Jan 23. 2024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

영화리뷰 혹은 잡념 

작년 영화제에서 못 보기도 하였고, 요즘 머리도 산란하여 관람한 오퍼스. 


영화제에서 먼저 관람한 지인 혹은 건너건너 지인들의 감상은 다양했는데, 1) 전 좋았어요!!! 보셔요. 2) 숙면하였습니다. 3) 한 인간이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붓는 것을 보고 있기가 괴로워 다 못 보고 나왔다. 등등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투병 중, 아마도 그의 인생 마지막 라이브 연주를 녹화한 영상이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의 뒷모습부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화면이 흑백인지도 모르고 보다가, 점점 카메라가 그에게 다가가자 아, 그의 피부가 살구색이 아니구나, 불현듯 깨닫는다.


흑과백으로만 채운 화면은 마치 영화 전체를 류이치 사카모토, 피아노, 그의 연주로만 채우겠다는 의지처럼 느껴진다. 그 의지를 반영하듯 지금 연주되고 있는 곡목조차 자막으로 띄우지 않는다. 그저 류이치 사카모토가 연주하는 흐름대로 소리가 흐르고, 이를 담는다. 


물론 실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다양한 앵글로 그를 담기도 하고, 클로즈업과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그의 세밀한 표정 하나하나까지 잡기도 한다. 그리고 곡이 바뀔 때마다 실내의 소품들, 피아노, 의자, 조명 등을 비추며 끊어가는 챕터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리, 피아노 패달을 밟는 소리, 연주의 호흡에 따른 숨소리까지 잡아내는 음향. 


어두운 극장에서 오로지 피아노 연주와 연주자가 내는 잡음을 듣다보면, 자연스레 음악감상과 더불어 사색을 빙자한 잡생각이 자꾸 피어오르다가 말다가를 반복했는데, 그건 비단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음악가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나의 잡념에 가까웠다. 


나는 과연 내가 평생에 걸쳐 해왔던 일을 말년에 가서도 저런 표정으로 할 수 있을까.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말을 떠드느라 나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나. '잠깐 쉬었다하죠. 좀 힘드네요. 무지 애쓰고 있거든요.' 나의 수고를 저리 간단한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상념들을 꽃피우고 있을 때, 화면 속 류이치 사카모토가 같은 부분을 여러번 반복하더니 다시 가자고 한다. 저런 거장이, 인생의 말미까지, 완벽을 추구하고자 틀린 부분을 반복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나의 상념 따위 쓰잘데 없다 싶은 기분. 


그리고 영화는 기가 막히게도 류이치 사카모토가 다시 연주했을지도 모르는 레코딩분을 바로 이어서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연주자가 만족하지 못한 부분을 영화 속에 그대로 실은 것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곡이 진행된다. 이 묘한 엇나감이 주는 효과가 느슨했던 영화에 다시 집중을 시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른 곡에서 아까 여러번 반복했던 것과 비슷한 음계 진행 부분을 연주하며,(물론 음악에 일자무식이라 비슷한지 어쩐지 모른다, 그냥 내 귀에 그렇게 들렸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만족한 듯 씩 웃는데, 그걸 보고 있는 기분도 참 묘했다. 인생에서 어쩌다 삐끗할 수 있고, 그걸 당장 같은 모습으로 바로 잡지 못해도, 결국 다른 방법으로 해낼 수 있구나, 뭐 이런 거창한 생각이 들었달까. 


실내 공간을 좀 넓게 잡아 여러 조명과 마이크를 함께 보여주기도 하고, 그의 얼굴에 카메라가 바짝 다가가기도 하고, 류이치 사카모토의 옆모습과 조명 하나만을 잡아 마치 달 아래서 연주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103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다소 길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것이 아버지를 보는 아들의 시선이라 생각하면 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관람 전에 '감독이 아들이래요!' 정보를 던져준 지인이 있어 이 또한 잡념에 한몫 했는데, 나는 아빠나 엄마를 저리 오래 들여다 본적이 있나, 내가 아빠의 직장 모습을 모르고, 엄마의 사회생활을 모르는 것처럼, 엄빠도 내가 밖에서 어쩌고 있는지 모르것지. 


나는 삼십대 중반에 엄마와 단둘이 해외여행을 가서야, 우리엄마가 이런 사람이구나, 이런 면이 있는 사람이었구나 처음 알았다. 대체 자기 부인이랑 자식들이 쓰는 돈이 뭐가 그리 아깝다고 저리 유세인거야 싶었는데, 막상 내가 남 밑에서 돈을 벌어보니 아빠의 노고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의 부모를 오래 들여다보는 건 왠지 겁나는 일이다. 굳이 알고 싶지 않고, 어쩌면 이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크레딧에 감독 소라 네오, 프로듀서 소라 노리카라고 뜨길래, 저 소라 성은 무엇인고 했더만 나름의 가정사가 있었다. 여튼 부인이 제작을 맡고, 아들이 감독을 한 작품인 셈. 그리고 엔딩에서 연주자 없이 피아노 건반만 움직이며 음악이 연주되는데, 어떤 의도인지는 알겠으나 약간 악취미 같은 느낌. 그의 영혼이 음악에 남아있다? 거장은 떠나도 음악은 영원하다? 뭐 어떻게 해석해도...;; 그냥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그의 옆모습을 비추며 암전으로 끝났어도 충분했을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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