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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과사자 Oct 14. 2021

아이들과 함께 춤을

콜로라도 Moraine Park Campground

10월의 두 번째 토요일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주말이다. 바로 로키산 국립공원에 있는 모레인 파크 캠핑장의 예약제가 끝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다음 주부터는 선착순으로 캠핑을 할 수 있다. 해발 2400미터가 넘는 이곳에 텐트를 짊어지고 올 캠핑객은 아마 없을 것이다.


꽤 경쟁이 치열한 로키산 캠핑장 예약이 열렸을 때 우리는 가장 마지막 주말에 캠핑을 예약했다. RV도 없으면서 굳이 10월에 한 이유는 매년 마지막 주에 이곳으로 캠핑을 간다는 어느 후기에 매력을 느껴서였다.


사실 우리는 10월에 텐트 캠핑을 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어린아이 둘 데리고 하는 모험의 끝물. 막대사탕으로 치면 사탕이 다 녹아 사라져 갈 때의 단맛이 그렇게 소중하듯 올해 최후의 캠핑을 즐기고 싶었다.


일주일 전부터 날씨를 확인했는데 이상적이던 날씨가 딱 캠핑 주말부터 확 바뀐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우리 동네보다 10도 가까이 낮은 기온인데 흐림까지 예보되었다. 그래도 비만 오지 않는다면. 그리고 우리에겐 한 가지 규칙이 있잖아? “예약했으면 일단 가고 본다.” 


10 9 토요일 오후 우리는 길을 나섰다.  좋게도 꽃과 사자   낮잠에 들었고 여느 때처럼 남편싸우지도 않았다.


에스테스 파크에 들어서면서부터 차가 서행을 한다. , 여기 단풍 나들이 명소였지? 밴드까지 초청해서 야외 공연이 한창이었다. 구름이 잔뜩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졌다. 여긴 이래도 캠핑장은 다를지도 모르지. 아니었다.


오후 내내 비가 왔다 갔다 돌풍이 불었다 말았다 하더니 밤까지 이어졌다. 우리의 타프는 세웠다 하면 바람에 넘어졌다.


신기하게도 우리 옆 자리에 한국인 아빠와 스코티시 엄마를 둔 가족이 있어서 같이 모닥불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는데 불길이 춤을 추고 잠깐만 일어서도 캠핑 의자가 휘청거렸다. 바람 소리에 묻힐까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일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꽃과 사자가 입은 옷이 그렇게 따뜻하지 않은 게 신경 쓰였다. 플리스 재질을 안에 껴입어야 하는 날씨에 방수복만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집에 또래 아들이 있어서 꽃과 사자는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어 했으나 모두가 벌벌 떨다가 얼마 후 자리를 접어야 했다.


올해 캠핑을 시작하고 춥지 않은 날은 없었다. 5월 말에도 밤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정도. 추울 만큼 추워본 줄 알았더니 오늘은 역대급 칼바람까지 합세하여 이 정도는 되어야 추운 거라며 자연이 내게 일깨웠다.


칼바람 덕분에 유난히 맑은 밤하늘과 공기


텐트에 누워 자면서도 헛된 후회가 몰려왔다. 우선 나는 내가 가진 가장 따뜻한 겨울 잠바를 들고 오지 않았다. 그걸 입고 자면 훨씬 나을 텐데 침낭 속에서도 등에 한기가 느껴졌다. 게다가 수면용으로 챙겨 온 양말에 구멍이 나서 발가락도 시렸다.


아이들은 스노 슈트를 입혀서 재웠다. 내가 한동안 열심히 봤던 Outdoor boys라는 채널에서 눈옷을 입고 자면 된다는 한 마디에 꽂혀서였다. 플리스를 입고 눈옷을 입으면 따뜻하지만 눈옷만으로는 방한이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


꽃은 자다가 몸부림을 쳤다. 이불을 두 겹이나 덮어 주었지만 침낭도 이불도 벗어나려고 했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도 계속 꺼내놓았다. (다음에는 장갑을 꼭 준비하리라.) 아까는 모자도 쓰지 않더니 밤에도 알 수 없는 고집을 피우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불편한 잠자리에 밖에서는 하이에나가 기괴스러운 소리를 연달아 내는 데다 꽃이 몇 번이나 깨서 그 난리를 치니 불같이 화가 났다.


다시 침낭으로 안 들어가려는 꽃을 몇 번이고 침낭으로 쑤셔 넣고 던져 넣었다. 추위가 뭔지 감각이나 있는 거냐며 모진 말도 튀어나왔다. 잠결에도 이렇게 열 받는 걸 보면 아무리 눌러 담으려 해도 나의 육아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 것 같아 절망스러웠다.


나아가 나 자신을 비난했다. 저녁부터 잠자리까지 충분히 따뜻하게 중무장시키지 못한 나. 남편과 나는 이 캠핑을 하기로 선택한 거고 나는 추우면 춥다는 걸 알고 몸이라도 웅크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자기 습관대로만 움직이는 아이들을 내가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이 들었다.


로키산에 쏟아지는 별


자책하지 말자 자책하지 말자 중얼거리며 선잠을 자고 일어나니 꽃과 사자는 콧물감기 증상을 보였다. 남편과 나는 목이 조금 따끔한 정도였다.


염려와 달리 아이들은 여전히 팔팔하게 캠핑장을 휘젓고 다녔다. 사자는 울퉁불퉁한 숲길을 가로질러 밸런스 바이크를 탔다. 어제 잠깐 왔다 사라진 사슴 가족을 찾는 듯했다.


짜증을 내며 차에 앉아있던 꽃도 바이크로 합세한 찰나 우리가 있던 사이트에 한 커플이 도착했다. 인사만 하고 가고 싶은 나와 달리 아이들은 거기 있겠다고 우겼다. 아이들에게 있는 민망함이란 나보다 훨씬 적은 양인 걸까?


그 커플은 자기들도 만 3세와 1세 자식이 있다며 괜찮다고 했다.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콜로라도로 일주일 동안 하이킹 여행을 왔다고 한다.


자기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둘이서만 하이킹을 다니는 그들이 부러웠다. 일주일은 좀 길고 3박 4일이면 행복할 것 같다. 그러나 맡길 곳이 없다. 한국 친정, 인도네시아 시댁, 미국에서 하는 결혼 생활이란 외로운 일이다.


상당 시간을 그렇게 있다가 어제 만난 한국인 가족을 발견하고서야 아이들은 인사를 하려고 자리를 떴다. 그 집 아들도 꽃과 사자처럼 모음이 가득한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아이들이 쉽게 발음할 수 있었다.


요즘 사자가 무슨 누나라고 하면 꽃도 무슨 누나라고 하고 무슨 형이라고 하면 꽃도 똑같이 한다. 맞아, 내 남동생도 초등학교 연령 될 때까지 날 따라 누나를 언니라고 했었지. 역순이긴 해도 시간을 뛰어넘어 내 자식이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게 웃긴다.


그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고 짐을 싸는 동안 꽃은 사고를 쳤다. 사자가 모든 지형에서 바이크를 너무 잘 타니까 질투가 났는지 따라오지 않고 있다가 파이어 링에 올라앉은 것이다. 자기는 해냈다고 예이! 환호하는데 나는 또 한 번 속이 터졌다. 막 떠날 참에 손도 옷도 숯검댕이가 되다니.


다시 한번 손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캠핑장을 떠나면서 내가 너무 화를 낸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런데 꽃과 사자는 그것보다 캠핑이 재밌었던지 캠핑장한테 인사를 하고 다음에 또 오겠다고 되뇌었다.


베어 레이크 로드로 들어서니 애스펜 나무 숲이 영롱한 노란색을 뽐내고 있었다. 몇몇 봉우리에는 이미 눈이 얇게 내려앉았음에도 공기 중에 가을 냄새가 있었다. 꽃과 사자와 남편과 나는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2021년 가을을 사진에 담았다.


아이들은 카메라를 쳐다보기보다 움직이기를 좋아해서 그냥 손을 잡고 뛰놀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추는 기분이었다. 현실은 고된 육아지만 아름다운 기억을 남기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캠핑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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