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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과사자 Dec 02. 2021

딸이 변기에 빠진 날

배변훈련 (재)시작기

배변훈련의 재시작


오늘은 기대와 실망을 여러 번 한 날이다. 딸의 배변훈련을 다시 시작한 덕분이다.


혹시나 내 예상보다 잘해주는 건 아닐까? 내가 그동안 손 놓고 있었을 뿐 그사이 때가 된 건 아닐까? 은근히 설레었지만 역시나 그렇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옷을 한번 적시고 집에 와서는 가라는 시간에 안 가고 버티다가 바닥에 그대로 해버리는 꽃.


다운증후군이 최소 중증 지적 장애를 동반한다는 팩트를 머리로는 알면서도 한 번씩 이 놈의 장애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는데 배변 훈련에 있어서는 그런 감정이 자주 든다.


먼저 신호를 주지는 못할지언정 적당한 때에 알람을 맞추고 화장실로 인도하면 그것 정도는 따라야 할 게 아닌가?


그렇다고 둘째 사자처럼 변기에 앉는 걸 완강히 거부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앉아서 이것저것 하길 좋아하는 꽃이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배변훈련의 역사


58개월 꽃을 위한 배변훈련은 역사가 오래되었다.


10개월 때 시험 삼아 앉혀 보았더니 적중률이 꽤 높았고 대변 같은 경우는 자발적으로 끙끙 거리며 표시를 내기도 했다.


첫 돌이 넘어서면서 꾸준히 빈도가 잦아졌다. 아이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차를 타고 가다가도 기미가 보이면 차 댈 곳을 찾아 변기를 꺼내 주었다.


카시트에 있기 싫어서 혹은 우리가 기뻐하는 반응을 보이니까 장난 삼아 한 적도 분명 있었지만 인터넷에서 봤던 한 아이처럼 두 돌 즈음이면 적어도 낮 훈련은 끝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웬 걸? 꽃이 28개월 때 사자가 태어났고 동시에 배변훈련은 종료되었다.


동생이 생기자 꽃은 “대체로” 더 나은 발달을 보였다.


자기는 두 돌이 되어서야 젖병을 잡고 먹기 시작한 누나는 아기 동생의 젖병을 잡아주었고 꼬집고 던지고 때리던 습관도 없어졌다.


그러나 배변 훈련만큼은 점점 안 되더니 결국엔 이 아이가 훈련이 될 뻔한 적도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안드로메다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딸이 변기에 빠진 날


그렇게 포기하다시피 모른 척 한 배변훈련이 다시 떠오른 건 몇 주 전 학부모 상담에서였다.


IEP(Individual education plan)라고 해서 아이 발달에 맞게 개별 목표를 잡는 미팅이 한 학기에 한 번씩 있는데 이번에는 내년 가을 학기에 꽃이 가게 될 유치원이 화두에 포함되었다.


가장 큰 걱정이 뭐냐는 질문에 “공식적으로 학령기에 진입하는 아이가 학습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치이다 방치되거나 괴롭힘 당할까 봐 걱정이다.”라는 진심은 억누르고 현실적인 문제를 꺼내 놓은 것이 바로 배변 훈련이었다.


그러자 꽃의 담임은 수업 중 훈련을 시도해 보겠다고 한다. 아무리 법으로 보장된다고 해도 손 많이 가는 특수 아동을 맡겨 놓은 입장이라 선뜻 부탁하기는 어려웠는데 일단은 고마웠다.


그때 “학교 화장실은 크고 시끄러워서 적응 기간이 필요할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눈으로 직접 확인했어야 했는데..


단순히 공용 화장실이라 그러려니 했고 추수감사절 브레이크가 지난 이번 주부터 학교에서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이틀 째 되는 날 꽃을 데리고 온 남편이 대뜸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꽃이 학교에서 변기에 빠졌단다. 뭐라고? 짧은 말이지만 이해를 못 하겠다. 변기에 빠져서 티셔츠가 다 젖었단다.


내가 굳은 표정으로 아이 옷을 살피고 있으니 이번엔 어제도 오늘도 꽃이 화장실에서 “막 이러다가” 오늘은 변기에 빠져서 옷이 젖었다고 한다.


다시 물어봐도 자기도 그게 픽업할 때 들은 전부라며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한다.


결론은 수업 중 그렇게 되었고 지금은 여름부터 보관하고 있는 반팔 티셔츠를 입고 온 상황이다.


티셔츠가 왜 바뀐 건지는커녕 화장실에 갔는지조차 알려줄 수 없는 꽃은 그저 밝은 얼굴로 학교 재밌었다며 옷을 벗고 거실로 뛰어갔다.


남편은 몰라도 나는 착잡함을 감출 수 없었다. 변기에 빠졌다니. 변기에 상체가 빠질 수 있는 건가?


꽃이 어떤 반응이었는지 몰라도 변기에 빠진다는 건 충분히 우스꽝스럽고 수치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 일을 어린 내 딸이 겪었다는 게 가슴 쓰렸다.


나쁜 상상의 나래를 펼 바에야 담임한테 직접 듣는 게 나을 것 같아 바로 이메일을 보냈다.


I wanted her to scoot back on the seat just a little bit, I was going to help her, but she moved before I was able to hold onto her.  She just scooted back on the seat and hit a wide spot and dropped into the potty.  I really think she just scooted back too far so I know I have to make sure I have a hold of her before she scoots back.


이런 답장이 왔다. 읽으면서도 변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아서 동작을 따라 해 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를 발견했다. 담임이 딸을 잡지 않고 뒤로 물러나 앉으라 해서 그렇게 하다 부딪히며 빠졌다는 건 어린이용 변기가 없다는 뜻이다.


내가 알기로 세 살 정도부터 엄마의 도움을 받아 일반 변기를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점점 혼자서 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꽃은 아직 한 번도 일반 변기에 앉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집에는 화장실 곳곳에 커버가 있었고 외출 시엔 휴대용 변기통을 꼭 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제야 “화장실이 크고 (환풍기와 물 내려가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표현이 떠오르면서 변기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담임한테 얘기해서 오늘 바로 변기 커버와 갈아입을 겉옷 속옷 기저귀를 따로 싸서 보냈다.


담임은 커버가 있는 게 도움이 된다며 앞으로는 기저귀 대신 팬티를 입히고 학교에 있는 2시간 40분 동안 세 번 시도해 보겠다고 한다.


오늘 변기 커버가 있어도 꽃은 바지에 오줌을 쌌지만 그래도 괜찮다. 변기에 빠지거나 매번 거기 앉아있기 힘든 것보단 낫잖아!


혼자 앓고만 있었다면 실마리를 찾지도 못 했을 것이다. 너무 치맛바람인가 하고 물어보지 않았더라도 정확한 상황을 모른 채 시간이 지났을 텐데 뭐라도 해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꽃의 배변 훈련 시작기는 과연 성공기로 끝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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