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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과사자 Jan 08. 2022

공놀이를 하자

오늘은 자기 전 딸과 한참 동안 공놀이를 했다. 아이들이 아무 데나 공을 던지는 게 싫어서 지하 놀이방에 모든 공을 보관하는 우리 집에서는 꽤 이례적인 장면이다.


이년 넘게 양반 다리 하는 연습을 시켰더니 자세가 흐트러질 때마다 다리를 다시 모아 앉고는 공을 던졌다 받는 꽃의 손길은 참 어설펐지만 흉내만 내는 내 웃음과는 달리 진짜 웃음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Do you like? 재밌어? 슬슬 귀찮아지려고 할 때마다 물어보니 재미(ㅆ어) li(ke)라고 대답하는 딸. 멀리 간 공은 엄마가 주워 오라고 Ge(t) ball 명령하기도 하고 실수로 내 얼굴에 던질 때는 No fa(ce)라고 말하는 딸을 보고 있자니 크게 두 가지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할 수 있는 걸 보고 할 수 있다고 말하자


예전 놀이 치료사가 꽃이랑 공 던지고 받기를 해보니 “생각보다” 잘하는데 학교 물리치료사한테 물어봤을 때는 거의 못 한다고 했단다. 도대체 무슨 공으로 했던 건지 궁금하다며 농담처럼 웃었던 그 기억은 떠오를 때마다 조금 씁쓸하다.


우리가 지금 하는 치료는 학교에서 일주일에 30분씩 제공하는 물리치료 언어치료 작업치료가 다인데 매일같이 특수 아동을 대하는 치료사가 꽃이 잘 해내고 있다는 기본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다운증후군이라는 큰 장애를 가지고도 공놀이를 하는데 의미를 둔다면 실제로 실력이 만 1세에도 제대로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긍정적인 뉘앙스의 피드백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싶어서이다.


그런데 부모인 나조차 딸이 가능한 부분보다는 못 하는 걸 더 크게 여길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온갖 스쿠터며 자전거도 잘 타고 “다운증후군치고” 철봉 왕에 가까운 꽃인데도 왜 아직 밸런스 빔에서 잘 걷지 못하는 건지 의문을 가지고 조바심을 낸다.


물론 그런 의문을 통해 꽃에게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고 연습시켰던 것도 맞지만 누가 꽃이 뭘 잘한다고 할 때 “그건 잘하는데 이건 안 돼서..”라는 대답이 바로 나오는 걸 보면 오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딸을 바라보는 건강한 시선을 완성하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는 딸의 발달이 어느 정도다 규정짓기보다는 딸이 할 수 있는 걸 보고 딸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걸 할 수 있다고 말해야겠다. 그것이 공던지기든 요즘 한창 빠져있는 퍼즐이든 앞으로 도전해야 할 어떤 과제든 말이다.


가능한 자주 같이 공놀이를 하자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신체와 공인데도 소리 내 웃으면서 던졌다 받(으려고 하)는 꽃이 나이가 들어 혹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시설에서 살게 된다면 이렇게 뭔가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놀이를 할 수나 있을까 싶은 애잔함도 있었다.


내 딸이 아니라도 누군가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려져서 어린 나이부터 시설에서 살아가는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곳에서 기본 의식주야 해결되겠지만 그 아이들이 누구에게 이렇게 더 하자고 조르며 편안하게 놀 수 있을까.


딸의 또래는 이미 공으로 트릭을 선보이는 나이인데 꽃과 함께 공놀이를 해줄 또래가 몇이나 될까 생각하니 앞에 있는 내 딸에게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할애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사실 장애아를 키우면서 가장 답답한 점 중 하나가 바로 아이가 스스로 놀 수 있는 시기도 늦게 온다는 점이다. 아이가 친구들과 놀 때 최소한의 간섭만 하고 싶어 하는 게 부모들의 소원이고 아이 혼자 한참 동안 퍼즐이나 뭔가에 빠져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바란다.


그에 반해 우리의 경우 꽃이 젖병을 잡고 먹은 나이가 두 돌이요 로 머슬톤 플러스 활발한 성향 때문에 계단에서 안정적으로 있을 수 있게 된 것도 세 돌이 한참 지나서이다. 동생과 합세해서 모든 장난감을 지하로 던지는 버릇이 없어진 것도 퍼즐을 자발적으로 하게 된 것도 최근에서야 이루어진 발전.


동생 사자와 꽃이 자기들끼리 놀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니와 직장 생활하는 남편 말곤 바통 터치할 사람도 없기에 그동안 어떻게 하면 아이를 보는 동안에도 엉덩이를 소파에 붙이고 있을지 고민했던 게 사실이다.


아이들 놀이방에 이것저것 구비해 놓고 위험한 것만 내가 지켜보고 나머지는 알아서 놀기를 간절히 바랬다. 같이 부엌 놀이하자고 손을 잡고 이끄는 아이들에게 못 이겨 들어갔다가도 몇 분 채 되지도 않아 엄마는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다며 빠져나왔고 공은 알아서 골대에 집어넣거나 작은 공을 주워 담으며 놀라고 지시했다.


공을 주고받는 놀이를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다음에 다음에 최대한으로 미루었다. 꽃과 사자가 공을 가지고 올라와 놀다가 그릇이라도 한 번 맞히면 이래서 공은 안 된다며 거의 바로 지하로 던져 버린 엄마가 바로 나였다.


월마트 갔다가 아이들이 직접 고른 작은 공을 방에 보관하고(꽃에겐 prince(ss) ball) 앞으로는 가능한 자주 같이 공놀이를 해야겠다. 아이들에게 공을 잘 던지고 잘 받으라고 말하기보단 아이들과 함께 웃고 “Fun! 재밌어!”라는 말을 듣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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