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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과사자 Jan 22. 2022

재활승마

서론이 긴 재활승마 시작기

얼마 전 굉장히 후회되는 소비를 했다. 약 37불. 큰돈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돌아서서 찜찜한 카드 결제는 3불조차도 참기가 어렵다.


한 번 더 냉철하게 생각하지 않은 나 자신이 밉기도 하고 하릴없이 인스타를 내리다가 아주 쉽게 낚싯줄에 걸려 충동구매를 한 내가 한심하기도 하다.


그 사연인즉 이러하다. 핸드폰을 보다가 모든 내용물이 밸크로로 되어 있는 책에 푹 빠져 있는 한 아이의 광고 영상에 눈길이 머물게 된 것이다.


동물도 떼서 같은 모양에 붙이고 각종 차량도 붙이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숫자가 있었다. 꽃이 아직까지도 잘 못 하고 제대로 따라 배우기는 싫으면서 매일같이 혼자만의 소리에 빠져있는 영역, 숫자.


꽃의 담임도 그걸 알기에 얼마 전 다섯 번째 생일 선물로 숫자 세는 곰 이야기책을 선물로 줄 정도라 나도 모르게 사이트로 들어갔다.


세일 가격이라 괜찮게 느껴진다. 혹여나 할인 시간이 끝날까 봐 재빨리 구매 버튼을 눌렀다. 택스가 붙고 심지어 배달 보험료까지 추가란다. 사이트 이름도 생소한데 따로 검색도 안 해보고 홀린 듯 구매를 확정했다.


그런데 상세 내역이 이상하다. 동물 차량 숫자 모양 네 권을 주문한 줄 알았는데 동물만 적혀있다. 그제야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지불한 건 달랑 한 권 가격이었다. 그것도 다른 사이트에도 많이 팔고 집에 익힘 재료도 충분히 있는 동물 책이라니 막심한 후회가 몰려왔다.


주문 변경이나 취소 이런 버튼도 없다. 받은 이메일 끝에 궁금한 게 있으면 여기로 이메일 보내라고 적혀 있어서 취소하겠다는 이메일을 보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최소한 “이메일을 수신했다. 언제까지 답장 주겠다.”라는 자동 답장이라도 기대했으나 조용하다.


이메일 전송 여부도 확실치 않으니 조급한 마음으로 사이트로 돌아가 Contact us를 눌러보았다. 쉽게 연결될 줄 알았지만 웬 걸 무슨 앱을 받으라더니 결론은 내가 잘만 쓰고 있는 지메일도 작동이 되지 않고 컨택을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난 조금 전 배송이 시작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은 것이다. 내가 보낸 이메일은 공중분해된 듯 소식도 없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연락도 할 수 없는 사이트에서 배송과 카드 청구와 알림은 아주 성실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 상황이 우습고 짜증 난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없다. 누가 뭐래도 내가 내 손으로 확정한 구매인 것을 왜 보내냐고 탓을 할 곳도 없다.




오늘 나는 거의 하루 종일 청소를 했다. 집안 곳곳에 있는 벽장 곳곳에 숨은 아이들 물품을 정리하고 그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들은 버렸다. 어디서 받은 것이나 뭔가에 쓰겠지 하고 수년 째 모으기만 했던 것들을 과감하게 처분했다.


2년 여전 이 집에 이사 들어올 때 내가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은 육아 용품을 사들였는지 여실히 깨닫고는 정말 놀랐는데 오늘 보니 여전히 조금은 투머치 채워져 있었다.


부엌 놀이라든지 트램펄린이나 구름다리 세트처럼 부피가 커도 용도가 전혀 다른 물품은 내 소비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다.


나의 의문은 다름아닌 색깔을 익히기 위해 버튼을 꽂는 그림판이나 창문에 붙이는 컵처럼 목적이 비슷한 용품을 굳이 사야 했을까이다. 그것 말고도 크레용이나 책 등 활용할 거리가 많은데 당장에 꽃이 인지를 하지 못 한다고 조바심내서 이것저것 샀던 지난날의 내게 그저 꾸준히만 가르쳐주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꽃의 발달보다 몇 년씩 일찍 (할인가도 기다리지 않고) 뭔가를 샀던 적도 많다.


예를 들면 꽃이 두 살 때 나는 가장자리를 끼우는 디스크 세트를 샀다. 다운증후군 아이 중에서도 유난히 색칠도 거의 못 하고 숟가락질도 느린 딸에게 뭐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사고 나서 알고 보니 그건 초등학교 갈 나이는 되어야 제법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장난감이었다.


한동안 꽃과 사자가 와르르 쏟아내서 집어던지는데  쓰다가 최근에야 모양 없이 일자로 몇 개 끼우는 걸 보고 뭐든 너무 앞서 사지는 말자 여러 번 다짐해놓고는 최근에 알파벳 쓰는 교구를 주문했다.


꽃이 알파벳 퍼즐을 곧잘 하기에 적극적으로 시키면 내친김에 쓰기도 되는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일단 사놓고 생각해보니 이제 겨우 세모 비슷하게 그리고 아직 줄도 잘 못 따라 긋는 꽃이 글자를 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지금은 쓰기가 문제가 아니라 최대한 글자와 가까워지고 손 힘을 기르는 것이 우선인데 자꾸 잊어버리고 단계를 뛰어넘는 준비를 하고 싶은 건 하루라도 빨리빨리 발달하는 딸을 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느리게 큰다는 걸 알면서도 기대와 상상이 앞서서 어리석은 소비하는 것을 자제하자며 하루를 보낸 나에게 이메일이 와서 내가 또 불필요한 구매를 “아이를 위해” (핑계 대고) 했으며 결과물은 빼도 박도 못 하게 내 눈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꽃처럼 특수 아동을 키우면서 뭐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게 잘못은 아니다. 액수보다 중요한 건 소비에 대한 만족도라 생각한다.


최근 남편과 내가 모두 흡족해하는 소비도  있으니 그건 꽃을 위한 재활승마이다.


영어로 Hippo therapy라고 불리는 재활승마. 말이라면 관광지에서 한 번 타본 게 다인 우리에게 크게 와닿는 치료는 아니어서 내가 한 번씩 언급할 때마다 남편은 그게 뭐냐고 다시 물어볼 정도였다.


그러다 Imagine!이라는 지역 비영리단체로부터 보조금을 받게 되었다. 일 년 동안 오로지 꽃을 위해 알차게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놀이치료와 재활승마를 생각하게 되었다.


인연이 있는 놀이 치료사가 있어서 집으로 찾아오는 놀이 치료를 몇 달 하다가 쉬던 차에 대기 걸어두었던 승마장에서 연락이 와서 재활승마 겨울 학기를 지난주에 시작했다.


우리가 가는 콜로라도 재활승마장 (Colorado Therapeutic Riding Center) 펀드와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꾸려지는 비영리 단체이다.  참가자당  명의 자원봉사자가 붙고  명의 재활승마지도사가 수업을 주관한다.


첫날에는 꽃이 내 손을 놓지 않아서 같이 그루밍을 하러 갔다. 지도사와 자원봉사자 모두 친절하게 말 털 빗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꽃이 긴장해서 몸을 꼬며 난리를 치는데도 차분하게 또 다른 부위를 해보라고 이끄는 모습에서 이곳 분위기 자체가 장애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승마 수업. 줄곧 horse riding을 중얼거리더니 지도사가 번쩍 들어 말에 태우자마자 꽃은 세상 침착한 아이가 되었다.


시키는 대로 Woah라고도 하고 그래서 말이 서면 좀 있다가 또 시키는 대로 Walk on이라고 했다. 창문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다 자기를 본다고 생각했는지 몇 번이고 Hi 하며 손을 흔들어 모두를 웃게 했다.


둘째 주에는 장애물도 지나고 뒤로 가기도 하면서 50분가량을 타고 있었다. 딸에게도 나에게도 이 시간이 지루할 새 없이 지나가는 걸 보니 동물과의 교감이라던가 재활승마의 마법 같은 효과가 그냥 하는 말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승마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데에는 직접적인 이유도 있다. 첫 승마를 하고 온 다음 날 꽃이 갑자기 멍키 바에 매달려 옆으로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다양한 동작을 해왔지만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동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 나는 욕심 많고 또 어설픈 엄마이기에 때로는 “쓸데없는” 소비를 하기도 한다. 자다가도 왜 그랬지 싶은 것도 사고 발달 단계에 맞지 않아 아이들이 그저 부수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나는 딸을 사랑하기에 내가 끌어올려 줄 수 있는 건 도와주고 싶기에 늘 검색하고 고민하고 소비한다. 그랬기에 제대로 된 승마장에 가본 적도 없이 살아온 내가 그곳도 찾아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꽃에게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본다.


가격 정보 : 한 시간 기준 일대일 놀이치료 85불, 그룹 재활승마 45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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