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믿어요
이번 주 월요일부터 프리 스쿨에 다니는 사자. 오늘 하교 시간에 간식 먹으며 킨더에 간 누나를 기다리는 동안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 엄마들이 흔히 궁금해하는 질문들 있지 않은가.
“학교 재밌었어?” “네.”
“선생님이 좋아?” “네.”
“그래서 내일 또 학교 가고 싶어?” “음.. 네.”
“학교에서 화장실은 갔어? “네.”
“누구랑 갔어? S샘이랑 M샘이랑?” “음.. M.”
어제 같은 시각 프링글스를 내놓으라고 짜증을 부려서 내일 가져오겠다고 약속하고 원하는 간식을 대령했더니 아주 맛있게 과자를 바삭거리며 대답도 아주 순조롭다.
남들한테는 별 것도 아닌 대화지만 나는 문득 가슴이 벅차올랐다. 첫째 꽃이 2019년 가을에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늘 하고 싶었던 이런 스몰 토크.
모든 아이들이 적정 나이가 되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런 순간이 나에게도 왔다는 것이 조금 신기하고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졌다.
“간식은 뭐 먹었어?” “음.. 요거트 and 크래커.”
아들이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첫째 하고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대화이기에 일말의 의심이 생겼고 나머지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있는 프리 스쿨 담임한테 가서 정말 그 간식 메뉴가 맞는지 한 번만 확인하고 싶었다.
웨건에 앉아 있는 사자에게
“저기 가서 S샘한테 뭐 좀 물어보고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엄마 금방 올게. 여기 그늘이니까 사자는 여기서 기다려. 갔다 올게.”
라고 말하고 길을 건너려는 찰나 그것조차도 나에게는 신기한 경험이라는 걸 깨달았다.
꽃이 사자 나이였을 땐 이런 설명이 통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말귀를 어느 정도 알아듣는 지금도 내가 지시하는 대로 하기보다는 순간적인 자기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훨씬 잦기 때문이다.
10초면 될 일이라 잠깐 기다리라고 해도 투정을 부리며 따라붙는 경우가 허다한 꽃을 오래 키우다 보니 이렇게 즉각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고 내 말이 통한다는 사실이 아직은 어색했다.
그렇게 길을 건너가서 아까 간식이 뭐였냐고 물었더니 담임이 대답했다.
“He had yogurt and graham crackers.”
아들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니면 그냥 웃고 말자 싶었는데 사자 말이 맞았구나!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뭘 했는지 뭘 먹었는지 물어보고 대답하는 대화를 처음 해보는지라 확인하고 싶었다니까 담임은 사자는 할 수 있다며 응원의 제스처를 취해 주었다.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참 가벼웠다. 또래에 비해 말이 빠른 편이 아닌 걸 몇 번 느꼈기에
“누나가 말을 못 하니 자극이 별로 없어서 그러나, 영어는 남편과 내가 원어민이 아니고 한국어는 나 밖에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러나”
하고 적잖이 걱정했던 둘째. 어느새 이렇게 커서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대꾸를 해주는 것이 기특하고 또 고마웠다.
“오늘 요거트랑 크래커 먹은 거 맞네! 엄마가 사자를 안 믿은 건 아닌데 이런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서 S샘한테 물어봤어. 요거트랑 크래커 먹었대. 다음에는 사자가 말하면 엄마가 믿을게.”
“네.”
첫째는 첫째요, 둘째는 둘째로다. 꽃 하고 누리지 못 했던 대화라고 해서 의심 갖지 말고 아이의 말을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