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과사자 Dec 17. 2022

다운증후군 딸과 걷기

나는 왜 억지로 걷게 하는가

오늘 누군가 꽃을 데리고(끌고) 걸어가는 10여 분간의 나를 보았다면 이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


“애가 걷기 싫어서 끌려가는 것 같은데 저게 과연 맞는 걸까? 장애아를 뭐 그리 힘들게 걷게 하는 거지? 날씨도 추운데 적당히 차로 가면 되지.”


심지어 아이를 학대하는 모양새로 보였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꽃은 절대 걷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는데 내가 그 옆과 뒤를 오가며 내 손으로 몸으로 밀다가 주저앉으려는 아이를 몇 번이나 들었다가 놓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세 돌밖에 되지 않은 사자는 잘 걷는 아들이 되기 위해 우리 속도에 맞춰 갔다 섰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자의 손에 들린 초콜릿이 위로가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그건 “도보 하교”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내 욕심이었던가? 내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겨울이 되고부터 등교는 남편이 자전거나 차로 데려가고 하교도 날씨가 너무 고약하거나 방과 후 활동이 있는 날에는 차량으로 하고 있다. 그 나머지 날에만 내 몸상태가 허락하는 한 걸어서 오는 것이다.


오늘 날은 쌀쌀해도 해가 나왔고 다른 일정도 없으니 집에 후딱 걸어와서 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사자가 누나에게 줄 간식도 챙겨가서 보자마자 손에 쥐어 주었고 6시간 넘게 학교 생활하느라 피곤할 수 있음을 감안해서 3분의 1은 이미 내가 안고 온 터이다.


학교까지 650여 미터, 아이들 걸음으로 약 15분. 간식 먹으면서 그중 400미터 남짓만 가면 TV도 보여주고 주스도 준다는데 안 걷겠다고 그 난리를 치니 내 속에서는 천불이 난다.


지나가는 스쿨버스로 유혹해봐도 춥다며 굳이 그늘에 멈춰 서있다.


“츠으니까 거르라고(추우니까 걸으라고)!”


욕하며 소리라도 치고 싶지만 화를 참기 위해 입을 꽉 깨물어 본다.


하지만 정말이지 오늘 같은 날엔 적당히 하는 법이 없다. 눈물 콧물 흘리며 온몸에 힘을 빼고는 걷지도 서지도 않는 딸을 보고 있자니 나의 인내심은 그야말로 떡락하고 만다.


일반 염색체를 가진 사자라고 해서 늘 잘 따르는 건 아니지만 특히 학교까지 걷는 데 있어서는 이미 이런 행위를 하는 단계는 벗어났다.


사자는 걷다가 내가 너무 빠르면 좀 기다리라며 속도를 멈추고 서있다가 다시 가는 수준이 되었는데 이 놈의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는 신체 발달이 어느 정도 되었다 싶어도 알 수 없는 고집과 짜증이 내 속을 해집는다.


수년째 키우고 있지만 이런 순간엔 딸이 진심으로 밉다.


두터운 잠바 밑에 딸의 팔을 한번 꼬집었더니 딸이 더 울어 제쳤다. 나는 말없이 꽃을 밀며 전진했다. 지금 아이가 바닥에 앉아 버리면 더 이상 내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400미터를 걸어 차고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예전 같으면 가방을 집어던지고 불같이 소리를 질렀겠지만 오늘은 나도 모르게 잠바를 벗고 있는 딸을 끌어안은 채 울고 말았다.


이 아이도 다운증후군이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힘들게 집에 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바꿀 수도 없는 일이건만 태어난 지 6년 가까이 되어도 그런 생각이 훅 찾아온다. 딸의 염색체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이 나를 슬프게 만든다.


그러다 옆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아들을 안았더니 가만히 있던 사자도 눈물을 터뜨리는 게 아닌가!


겨우 세 돌인데 아들 혼자 엄마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해 얼마나 조용히 열심히 걸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늘 손을 잡고 걷는 아이가 엄마 손 잡자는 말도 못 하고 속으로는 무서웠겠지.


사자의 존재는 참 소중하고 고맙지만 한편으론 장애가 있는 누나의 동생으로 태어나게 한 것이 미안했다. 그냥 한 명만 키우고 살 걸 괜히 동생을 낳아서 아직 다운증후군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에 알게 모르게 마음고생시키는 것 같아 눈물이 복받쳤다.


꽃도 사자도 나도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엉엉 울다가 여러 감정의 찌꺼기를 눈물로 흘려보냈고 아이들은 곧 주스 마시며 TV 보면서 즐거워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다운증후군이 있는 딸을 억지로 걷게 하는 걸까? 이렇게 몸 고생 마음고생해서 한번 더 걷는다고 얻는 게 있을까?


그 모든 것이 딸을 위해서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꽃을 기쁘게 하는 것은 사실 내가 차를 타고 나타났을 때니까!


아마도 “타고나기를 로 머슬톤에 살찌기도 더 쉽고 몸 움직이는 것을 일반인보다 훨씬 싫어하는 내 장애아 딸이 그렇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삶을 살기보다는 걷는 습관을 들이고 활동적으로 살았으면 하는 욕심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게 가장 근접한 답이 될 것이다.


열 번 중 두어 번은 조금 힘들고 두어 번은 오늘처럼 초절정 힘들지만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서 수년을 이렇게 걸어 다니다 보면 분명 다른 결과가 있지 않을까?


예전을 한번 돌이켜 본다.


꽃이 세 돌이 되어 모든 홈 떼라피가 종료되었을 때 다른 언어 치료를 더 찾으러 다니지 않고 차라리 몸 한번 더 움직이는 게 더 건강하게 잘 사는 길인 것 같아 만 3세 꽃과 만 1세 사자를 혼자 이끌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녔다.


기본 치료 말고는 받아보지 않았으니 비교를 할 순 없어도 아무튼 그랬더니 꽃은 때가 되자 말문이 터졌고 지금은 수영이며 체조 등 각종 운동을 즐기며 사는 어린이로 자랐다.


누구나 그렇긴 해도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가 있기에 더더욱 내다볼 수 없는 꽃의 앞날. 몇 년이 지났을 때 너는 어떤 단단한 아이가 되어 있을까 소망을 가지고 오늘 당장 우리의 걸음이 조금 ugly 했더라도 걷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련다.

작가의 이전글 다운증후군 악어 소녀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