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겪은 내겐 너무 크리피 한 현대미술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채식주의자까진 아니다.
이런 얘기를 왜 갑자기 꺼내냐면 런던 여행 중 겪었던 일화를 풀기 위해서다. 우리는 뚜벅이 여행자였기에 런던 곳곳의 관광지를 많이도 걸어 다녔는데 지나다니며 수많은 건물들을 봤다. 우리나라와 다른 양식의 건물들이나 상점들을 보는 것 역시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날도 내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걷고 있었다. 우연히 어떤 레스토랑 앞을 지나고 있었고 너무 큰 통창이어서였을까, 아니면 유난히 내 관심분야여서 였을까 그림에 그렸던 작품을 바로 알아챘다.
그냥 음식점이었는데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걸려있는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현대 미술 작가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이며 아마 동물을 박제했다는 것이나 가장 비싼 미술작품을 판 현존하는 작가, 혹은 자신은 아이디어만 주고 어시스던트에게 작업을 시키는 작가 등의 소식으로 접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현대 미술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지나가던 레스토랑 천장에 매달려있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봤을 때의 충격이란. 예를 들어 산책하다 우연히 버스킹 하는 아리아나 그란데를 만났다면 당신은 어떻겠는가? 그것도 대표작 중 하나인 작품이었으니 bang bang이나 Thank you, next를 부르고 있는 걸 본 것과 마찬가지랄까? 소리 지르고 싶은 걸 참아내고 일단 사진부터 찍어 인증을 남겼다. 세상에 런던을 여행하면 길가다가 데미안 허스트 작품도 보는구나, 감탄하다가 곧 이 장소가 어딘지 떠올렸다. 그렇다. 작품이 걸린 장소는 레스토랑이었다.
그림에 그려서 보인 것처럼 레스토랑 천장에 작품이 걸려있는데 데미안 허스트의 저 시리즈는 동물을 박제해서 만든 작품이라 미술계에서 큰 이슈가 된 작품이었다. 작가가 자신의 철학을 위해 한 선택이 야기시키는 작품이 가진 윤리의 논란에 나조차 언젠가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다. 대학원에 다닐 때도 관심 있던 주제였고 그때마다 예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 다른 생명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저 작품을 하필이면 이런 장소에서 만난 것이다. 검색해본 결과 이 레스토랑은 닭과 소 요리를 파는 곳이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 레스토랑의 콘셉트가 오픈 키친(*요리하는 과정을 볼 수 있게 개방된 주방)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리에 앉아 박제된 동물 밑에서 요리하는 과정을 보며 고기를 먹고 있었다. 이보다 비현실적이면서 현실적인 현대미술을 볼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먼저 밝혔던 것처럼 나는 채식주의자까진 아니다. 육식을 하고 있으며 육식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이 장면만큼은 도대체 내 머리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장면이었다. 물론 작품이 뜻하는 바가 이런 것이 아닐수도 있겠지만 작품을 어떻게 작품만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예전부터 예술작품은 그것이 가지는 의미만큼 전시되는 공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생각하는 입장이라 내가 목도한 이 현실을 마냥 마음 편하게 미술작품을 만났다 정도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영국이 사카즘을 즐기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시니컬하다니.
이걸 바라보고 있는 나조차 과연 무결할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이 드는 현대 미술이었다. 내가 배운 핫한 현대미술을 다 모아 전시한 테이트 모던보다 이곳에서 만났던 현대미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데미안 허스트 작품이 전시된 레스토랑 어떻게 생각하는가?
옥자를 보고 큰 울림을 받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현대미술이 내게 쏟은 찬물의 기억은 아직도 가끔씩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레스토랑 주인과 데미안 허스트의 방법을 지지하지 않지만 이 날 현대미술이 내게 심어준 느낌표는 아직도 나의 의식을 확장시켜준다. 나는 현대미술이 좋다. 너무나 불편하고 불쾌하지만 누군가는 나와같은 불쾌한 마음을 가질 것이니 말이다.(그래도 이 방법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꼭 바꿔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