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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읏 Jun 21. 2021

숙소를 취소당했다.

섣불리 가졌던 오만과 편견

 

많이 다닌 건 아니지만 여행을 가서 특정 도시에만 머물렀던 여행은 처음이었다. 일주일 정도 있으면 꼭 해야 하는 건 다 하고 올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완전 착각이었다.



숙소를 취소당하다니.

 여행 경험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숙소가 취소당한 적은 없어서 충격적이었다. 아니지, 뭔가 착오가 있는 거겠지. 다시 에어비앤비로 들어가 같은 숙소를 예약해보려 했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예약한 것인지 아예 예약을 받지 않는 건지 검색조차 되지 않았다.


 '에어비앤비', '취소됨'을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많진 않지만 드문 확률로 우리처럼 취소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낮은 확률을 뚫고 그중 하나가 되다니. 황당했지만 허둥거릴 시간은 없다. 빨리 숙소를 구해야 했다. 여행을 코앞에 두고 좋은 숙소를 구하는 건 국내서도 힘든 일이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됐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최소한 꼭 필요한 조건에 부합하는 곳들로 후보를 빠르게 추렸다. 최종으로 고른 숙소는 최근에 새롭게 시작했는지 후기 하나 없고 메인 시내에선 조금 거리가 있지만 독채로 쓸 수 있는 괜찮은 곳이었다. 이미 직전에 몇 번 새로고침하는 사이에 예약을 놓친 기억이 있어 주저하지 않고 바로 예약을 했다. 급하게 선택한 감이 있긴 했지만 숙소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큰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다른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동네는 어떤 곳이지? 나름 노팅힐과 가깝긴 한데 근처에 관광거리도 없고 너무 주택가라 구글에서조차 별 소득이 없었다. 정보가 너무 없어 내 멋대로 지역을 나눠 대충 맞아 보이는 지역으로 검색한 것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행위였다. 유학을 왔을 때 멋모르고 고른 최악의 동네이다, 이 지역은 치안이 별로인 지역이니 특히 밤엔 쉽게 돌아다니지 말아라. 안 좋은 키워드만 쏙쏙 골라서 뇌리에 박혔다. 내가 찾아서 추천한 숙소인데.. 결제까지 마친 후에 왜 이런 글들만 보이는 거야! 겨우 걸린 두 개 정도의 게시물이 내 안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하나 앓다가 환불받으려면 하루라도 빠른 것이 좋겠다 싶어서 비장한 마음으로 단톡 방에 운을 띄웠다.


'얘들아 사실은..'


한참을 고민하고 걱정하며 털어놓은 것이 무색하게 친구들은 걱정하지 말라며 이 정도 숙소를 구해낸 게 어디냐고 나를 위로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긴 한데 미안함이 수그러졌을 뿐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구글 지도로 동네 정찰을 다니며 이곳이 얼마나 안전한 곳인지를 확인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여행은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또 알게 한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겁쟁이다.



히드로 공항에 있는 히드로 익스프레스 기차역은 정말로 크고 멋졌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정말 편하고 빠르게 도착한 기억이 좋았어서 이동한 수단을 모두 기록 삼아 그렸다.



 런던에 가는 날은 착실하게 찾아왔다. 여행이 다가올수록 나는 여러 감정에 휩싸였다. 그토록 꿈꾸던 여행을 다시 가는 것에 기쁘다가도 숙소 이슈부터 기차표 이슈(이것 역시 사연이 길다.)까지 쉽지 않은 일들이 있어 근심도 있었다. 다른 거면 모르겠는데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과 숙소다 보니 쫄보의 심장은 조용할 틈이 없이 이리저리로 튀었다. 무사히 재밌게 잘 다녀올 수 있겠지? 가오지 않은 미래에 가장 쉽게 붙일수 있는 것은 물음표였고 나는 내 자신에게 거의 물음표 살인마였다.


 그래서 여행의 시작이 더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정말 다시 떠날 수 있다니.

 

 탑승 수속을 밟으면서도, 기내에서도 나의 기분은 계속 그랬다. 떠나고 있으면서도 실감이 하나도 나지 않고 붕 뜬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기분은 히드로에 도착하고 나서 사라졌다. 땅에 발을 디디자 제일 큰 미션을 해냈다는 홀가분함에 몸이 가볍게 뜨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막상 부딪쳐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뭘 그렇게까지 걱정하고 고민했던 것일까. 걸을수록 이 낯선 나라와 도시에 익숙해짐을 느끼며 자신감이 붙었다. 어렵다던 입국심사도 쉽게 끝내고(사실 호그와트 익스프레스 맨투맨 덕인 거 같긴 하지만) 짐을 찾아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타러 갔다.(지금은 자동입국이 되는 것으로 안다.)


 히드로 익스프레스의 종점인 패딩턴역에 도착해 숙소까지 가는 건 오히려 순조로웠다. 오이스터 카드 사는 곳을 헤맸어도 경찰분들이 잘 도와줬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도 없는 숙소 역에선 콜린 퍼스를 닮은 신사분이 20kg에 육박하는 트렁크를 들어주기도 하는 친절을 받았다. 다 비슷하게 생긴 문들에서 숙소를 찾는 게 어려워 동네를 몇 바퀴 돌 때도 근처에서 휴식을 하고 계시던 택시 기사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약간의 고생은 있었지만 사람이 베푸는 따뜻한 배려와 친절에 걱정뿐이던 이 동네에 새로운 인상이 덧씌워졌다. 나는 그동안 잘못된 정보와 편견으로 괜히 불안에 떨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의 찾기 힘든 숙소일지언정 나는 이 동네와 런던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리는 조용한 주거지역에 우리는 짐을 풀었다. 내가 쓰기로 한 소파 침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동네의 전경 역시 아름다웠다. 따뜻하고 친절함, 그게 두 번째 런던의 첫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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