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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읏 Jul 24. 2021

여행의 시작, 이방인이 된 것을 충분히 느끼기.

완벽한 여행자가 될 준비를 다 마쳤다.



장거리 여행자의 하루는 새벽에 시작된다.


도착하자마자 저녁도 먹지 않고 초저녁부터 잠든 우리는 각자 새벽 3시 혹은 4시 정도에 잠에서 깼다. 사위는 온통 어둠이었고 동네 역시 아무도 잠에서 깨지 않아 고요했다. 문득 창 밖을 바라보다 아무도 깨지 않은 타국의 도시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에서 사는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사이클로 시간이 흘러간다는 건 여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니까. 갑자기 여행에 온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나의 시간이 브런치쯤으로 맞춰지고 나서야 차가 좀 돌아다니고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트에 가기만을 고대하며 창문 밖을 바라보던 우리는 문이 열리는 걸 확인하고선 윗 옷만 간단하게 걸치고 마트로 향했다. 당장 필요한 물과 간단한 식사 거리, 그리고 빨래와 설거지를 위한 세재를 골라야 했지만 들어서자마자 관광지에 온 것처럼 구경하고 말았다. 입구부터 윤이 나는 손바닥만 한 사과가 엄청 많이 보여서 한껏 담고, 바로 옆으로 눈을 돌리니 햄만 수십 종류가 있었다. 고기부터 페이스트 그리고 냉동식품, 빵까지 엄청 저렴한 가격이라 이것저것 열심히 담았는데 돌아보면서 느낀 건 이 나라 정말 간편 조리 음식이 많다는 거였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밀키트라고 해서 다양하게 나오지만 레트로 식품이 이렇게 다양하고 많다니 그때로선 좀 문화충격이었다. 취급하는 것마저 한국과 이렇게나 다르다니.


저 계란 햄은 진짜 천재 아닌가 싶었다. 박수
우리 숙소와 동네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우리 숙소는 다 맘에 들지만 저 계단이 너무 힘들었다.


바리바리 장을 봐서 돌아오는 길에 주위를 둘러보니 동양인이라곤 정말 우리 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분명 더 오래 있으면 만났을 테지만) 관광지도 아닌 이 동네에서 우린 완벽한 타인이었지만 매우 현지인처럼 장을 봐서 집으로 향했다. 문을 잡고 돌린 후 밀어야 하는 유럽의 대문을 열고, 올라간 사람의 궤적을 다 느낄 수 있는 나무 계단을 지나 말이다. 그건 정말 묘한 기분이었다. 여태껏 나는 어떤 여행지에서도 현지인의 삶을 체험할 수 없었던 완벽한 여행자였는데 말이다. 장 본 것을 정리하고 아침을 만들며 창문을 열고 빨래를 돌렸다. 마치 일상 같지만 완벽히 새로운 환경과 경험이었다.



우리가 열심히 만든 아침식사. 피자와 수프까지 다 합해봐야 만원? 만 이천 원 정도 되려나? 마트 물가가 싼 편이다.


아침을 배불리 챙겨 먹고 나와도 10시도 안 되었다. 첫날은 중심가에서 대충 쇼핑을 하고 돌아다니기로 해서 버스를 탔다. 2층 버스는 처음이라 떨리는 마음으로 제일 앞자리에 앉았는데 의외로 여기서 영국이 얼마나 한국과 다른지 또 느꼈다. 우리나라였음 일방통행일 길이 이차선으로 나뉘고, 절대 턴이 안 될 거 같은 코너마저 긴 이층버스가 도는 것이었다. 해리포터에서 탔던 야간 버스는 판타지니 과장이겠거니 하고 봤는데 신호 때문에 정차할 때도 사람 하나도 못 들어갈  간격에서 멈췄다. 그렇게 도로버스 주행 신기함에 시선을 뺏기다 보니 우리가 정 반대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단 걸 한참이 지나고 알았다. 이 버스가 노팅힐에서 멈춘다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포토벨로 마켓의 유명한 거리이다. 알록달록 예쁘다고 유명하던데 사실 난 그것보다 빈티지들에 더 관심 갔다. 예쁜데 비싸서 못 샀지만ㅠㅠ
옥스포드 스트릿부터 온 거리가 조명으로 설치되어 있어서 도시 전체가 큰 일루미네이션 같았다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평범한 여행자처럼 평일의 포토벨로 마켓을 여유롭게 구경하고 쇼핑을 하기 위해 리젠트 스트릿으로 향했다. 이렇게 하루 종일 다니며 깜짝 놀란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크리스마스였다. 우리가 영국을 간 것은 11월 중반쯤이었는데 유럽은 유럽인지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장식이 여기저기 되어있었다. 크리스마스는 동양에선 그렇게 큰 명절은 아니기 때문에 당일에 가까워져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편데, 한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다니. 평생을 한국에서만 살아온 나 문화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와 다르게 모두들 그것이 아주 익숙해 보였. 이 분위기에 쉽게 동조할 수 없는 것에서 스스로 이방인이구나, 라는 사실을 또 떠올렸다.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던 첫날, 눈을 뜨는 순간부터 나는 이곳에 있지만 속해있지 않다는 느낌을 다양한 곳에서 느꼈다. 어딘가에 속하지 못하고 그 분위기에 동조하기 힘든 것은 꽤 부정적인 것이란 생각이 있었는데, 이번엔 그 감각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방인임을 충분히 느끼는 일, 완벽한 여행자가 되는 방법. 그것은 의외로 나에게 새로운 감각을 깨워주는 즐거운 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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