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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읏 Aug 29. 2021

나의 여행엔 항상 테마곡이 있다.

내가 여행을 가는 이유




바쁜 관광을 마친 나는 로컬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나서 잠자리에 누워 플레이리스트를 켰다.



 당시 나는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새로운 노래를 찾는데 빠져있었고 그중 가장 빠진 노래는 Linus Hablot의 Just call이란 노래였다. 숙소의 레몬색 간접조명 아래서 하루 종일 찍은 사진을 보며 하루를 어떻게 보냈나 곱씹을 때 항상 이 노래가 함께하고 있었다. 지금도 Just call을 들으면 당시 내가 누워있던 침대 소파와 비 내리는 런던의 아침, 2층 버스 너머 일렁이던 런던의 밤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리고 나에겐 이렇게 여행하면 떠오르는 곡이 또 있다. Toploder의 Dancing in the moonlight이란 노래인데, 원래는 특정 나라를 떠올리는 곡이었지만 이젠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특별한 곡이 되었다. 이 곡이 내 여행 곡으로 정해진 것은 "또" 이전의 유럽여행으로 돌아간다. 때는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야간열차였는데, 낯선 잠자리 때문인지 자기가 아쉬워서인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네 명이 함께 이용하는 야간열차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빛 때문에 책을 읽을 수도 없고, 폴더폰으로 뭘 볼 수도 없을뿐더러 캠코더는 충전 중이었다. 이 비싼 고독을 뭐와 함께 보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mp3를 꺼내 들었다. 그때 듣고 있던 노래가 Dancing in the moonlight이었다. 커튼을 조금만 치고선 노래를 들으며 밖을 하염없이 바라봤는데, 어떤 한 역에서 창 밖에 있는 현지인과 눈이 마주쳤고 그 사람은 나를 보고 마치 유령을 본 듯 놀랐다. 하기사 그 밤에 창 틈으로 누군가의 얼굴과 마주칠 거라곤 생각조차 못 했겠지.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 사람과, 칠흑같이 어두운 그 정류장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생각난다. 다음 여행지로 향하는 설렘과 남들은 못할 재밌는 경험을 했다는 기쁨, 기차에서 숙박을 한다는 묘한 느낌. 그때 이후론 어울리는 곡을 골라가거나 그런 곡이 꼭 하나씩은 생겼다. 외가 가족과 모두 갔던 일본 여행에선 bts의 for you란 곡이 그랬고 태국 여행에선 악동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터키 여행에선 River Tiber의 West였다.


 모두 자신만의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영상을 찍을 테고, 마그넷이나 향수를 사기도 하지만 나는 항상 노래로 그 여행을 기억하는 편이다. 혼자 노래를 들을 시간이 얼마나 많겠나 싶지만 나 같은 경우는 일부러 노래 들을 시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작은 나만의 전통을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 어떤 여행도 잘 즐기는 것만큼이나 잘 소화할 시간 역시 필요하다는 것 말이다. 여행은 온통 낯선 것들의 연속이기 때문에 계획한 것들을 바삐 경험하고 감각들을 흡수하느라 그때 나의 기분이 어땠나 제대로 생각하기 힘들다. 그러다 보면 결국 돌아와서 사진을 보며 '아, 이때 좋았지'라는 말로 퉁치는 수밖에 없었다. 책 한 권을 읽어도 이 구절에서 나의 생각은 어떤가, 관련돼서 떠오르는 것들을 찾아보고 메모하느라 한참이 걸리는 내게 이 방법은 더없이 좋은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었다.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 도전으로 얻는 이 감각들은 대부분 내게 좋은 것으로 남아있어서 언제 열어봐도 행복을 느끼게 해 준다. 일상이 아닌 곳에서 잘 소화한 시간들이 일으키는 향수는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Just call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또 새로운 어딘가로 떠나 여행만이 주는 기쁨을 얻길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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