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나 Jun 23. 2021

음악에 발전은 있는가

   내가 글감을 찾는 방법은 일주일에 한 편 이상 읽는 논문이다. 논문을 요약하며 읽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곤 한다. 읽는 논문은 대부분 슈만이나 19세기 음악에 대한 내용이고, 가끔 음악미학이나 바흐에 대한 논문을 읽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주기적으로, 그리고 필수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음악학 자체에 대한 논의이다. 작품으로서의 음악이 아닌 학문으로서의 음악을 공부하는 것. 이 안에는 수많은 논의가 들어 있다. 현재의 음악사 서술 동향, 서양음악 수용 현황과 한계, '서양음악'을 벗어난 '음악'으로 향하고자 하는 음악학의 논의 등...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음악을 바라보는 역할을, 음악학자들은 하고 있다. 혹자는 의미 없는 공부라고 할 수도 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들이 모여 토론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논의는 음악 수용, 그러니까 청중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보이지 않는 우리의 논의가 모여 음악사의 서술 방향이 바뀌고,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방법이 바뀐다. 다양한 시각에서 끊임없이 논의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 논의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역사는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석기를 이용하던 사람들이 철을 이용하고, 지배자를 중심으로 집단을 이루더니 국가를 이룬다. 국가를 이룬 구성원 중 피지배자가 점점 평등에 눈을 뜨고,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으며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기술도 끊임없이 발전해 도구를 사용하던 인류는 기계를 사용하게 되고, 무기 역시 발전하며 세계대전이라는 가슴 아픈 전쟁도 일어난다. 그러나 인류는 슬픔에 멈추지 않고 전쟁의 아픔을 회복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힘쓰며 오늘날에 이른다. 이렇게 인류는 발전한다. 도구가 기계가 되고, 개인의 생존은 세계 평화가 된다. 이러한 발전 과정을 서술한 것이 바로 '역사'다.

   그렇다면 서양음악'사'도 마찬가지일까? 과연 음악이 점점 발전한 걸까? 음악사를 아주 거칠게 살펴보자면 이렇다. 악기 반주 없이 사람의 목소리로 하나의 성부(part)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다 성부가 늘어나고, 악기가 이를 반주한다. 악기만을 위한 곡이 탄생하고, 주로 종교를 위해 사용되던 음악이 점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오페라가 탄생한다. 악기도 여러 성부로, 즉 수평적으로 음악을 진행하다 화성의 개념이 등장하며 수직적인 진행이 나타난다. 단순히 반주 역할이나 오락에 불과했던 기악음악(악기로만 연주하는 음악)은 그 자체로서 이야기를 가진 음악이 되고, 화성이 풍부해져 감정을 극대화한다. 특정 화성을 중요시하던 이전까지의 음악에서 모든 음정을 동일시하는 음악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작곡가와 연주자는 더 다양한 대상을 노래할 수 있게 된다.

   발전으로 볼 수도 있다. 하나만의 성부가 등장하는 음악인 단성음악에서 다양한 성부가 등장해 음악을 이어나가는 다성음악도, 기악음악의 탄생도, 그리고 그것의 역할 확대도 모두 음악의 발전이라는 말에 타당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다. 그런데, 왜 옛 음악은 사라지지 않았는가? 여전히 옛 음악을 작곡하던 방식으로 음악을 작곡하고 있으며, 꾸준히 그 작품은 늘어나고 있다. 


   즉, 음악에는 발전이 없다. 다만 확장이 있을 뿐이다. 변화하고 발전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음악은 확장한 것이지, 결코 발전한 것이 아니다. 음악은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좋은 상태로 나아가는' 발전에 해당할 수 없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예술 사조가 생겨나고, 그에 따라 음악의 영역이 더욱 넓어지는 것이다. 

   음악학은 20세기 이후부터 '일부 유럽 국가의 백인 남성 작곡가'가 작곡한 음악 말고도 다른 음악에도 집중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서양'이지만 '서양음악사'에서 배제된 음악, 여성의 음악에 대해서도 다루고자 하는 논의를 펼쳐나간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에 우리가 조명했던 음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17세기의 바로크 음악이 남아 있듯이, 그리고 중세의 그레고리오 성가가 사랑받듯이 꾸준히 사랑받을 것이다. 대신 그 조명의 빛을 다른 곳으로도 넓히자는 것이다. 모든 음악이 사랑받을 수 있도록, '서양음악사'에 걸맞는 서술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공부해야 할 분야는 더 많아져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한 사람의 마지막을 들여다본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