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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고래 Apr 06. 2023

할머니 나이는 고무줄

늙은 핑크색




올해로 100살이 되신 할머니께 간호사가 물었다.

"할머니 연세가 몇이세요?"

"나? 81살"

옆에 계신 할머니가 말했다

"형님, 내가 형님보다 나이가 더 많네. 나는 87살인데 "

그러자 100살 되신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나는 원래 91살이여"

나이가 많은 건 싫고 옆 병상의 할머니보다 어린것은 싫고, 100살 드신 할머니의 논리가 재밌다.


다른 병상의 할머니 주머니에 점심반찬으로 나온 잡채가 들어있었다. 

간호사가 물었다. "할머니 왜 잡채를 주머니에 넣으셨어요?" "우리 아들 오면 주려고 그랬지"


예쁜 치매를 앓고 계신 딸이 엄마에게 물었다.

딸 : 엄마 내가 누구야? 

엄마 : 글쎄요. 저를 아시나요?


 오래전에 친구들과 부모님 모시는 얘기를 하다가 "우리는 늙어서 요양원에서 만나자. 한방에 3명 정도씩 들어가니까 같은 요양원에서 지내면 재밌을 거야" 라면서 농담반 진담반 섞인 마음으로 약속을 했다. 뒤끝이 씁쓸하면서도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기에 마음이 착잡했던 기억이 있다. 


 기억력 검사실 앞에 휠체어 몇 대가 줄지어 있었다. 그 옆에는 자식으로 혹은 요양보호사로 짐작되는 보호자가 함께 동행을 하고 있었다. 나도 엄마를 모시고 예약된 시간에 내원을 했다. 검사를 마치고 나오시는 어느 할머니가 머리가 자꾸 흐려져서 검사원이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제대로 못했다고 한 걱정을 하시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엄마의 기억력지수는 지난해보다 수치가 2 정도 떨어졌다. 매년 검사를 할 때마다 수치는 조금씩 떨어졌다. 의사는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더 이상 약을 추가할 필요는 없고 현재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100세 시대라고 한다. 평균 수명이 늘어날수록 노후에 대한 걱정을 자주 한다. 최소한 자식에게 폐가 되지는 말아야 하는데 어찌 인생이 뜻대로 되겠나 싶어 걱정이 앞선다. 늙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섭리다. 그런데 부모로서의 모습은 과거로 남고, 상식과 인성은 사그라진 본능만 살아남아 돌보아야 될 대상으로만 남게 되는 상황은 피하고 싶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엄마를 모시면서 또박또박 배우고 있다. 조금 나중에 해도 괜찮겠지, 이번 일만 해결되면, 경제가 좀 나아지면, 아이 결혼하고 나면... 이런 식으로 미루다 보면 마음은 가득해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시간이 온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고 그런 시간을 살아가기에 세상은 무수히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하고 싶은 일 뒤로 미루지 말고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해보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날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카톡을 했다. 


'꽃구경 갑시다. 더 나이 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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