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공기가 가득하던 아침이었다. 원래 예정했던 입원일은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언니가 몸이 안 좋다며 병원에 빨리 가야 할 것 같다기에 전날 목포에 급히 도착했다. 새벽 6시경에 일어나 언니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어 본 언니는 전화로 말한 대로 얼굴이 창백했다. 일주일은 잠을 못 잔 사람처럼 보였다. 서둘러 병원에 가야 했다. 집에서 크나큰 캐리어와 각종 일회용 생필품이 들어있는 이동박스를 끌고 나왔다. 레이 뒷좌석에 꽉꽉 채웠다. 언니가 조수석에 타고 안전벨트를 맸다. 나도 바로 내비게이션을 찍고 시동 걸어 출발했다.
언니는 새벽에 잠을 설쳐서 피곤해했다. 조수석 의자를 뒤로 젖힌 채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고 있었다. 나도 말없이 운전에 집중했다. 목포 톨게이트를 지나자 "우와!"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언니가 어느새 눈을 뜨고 이어폰을 뺀 채 차창너머에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창밖 하늘은 붉게, 아주 높고 넓게, 타오르고 있었다. 언니는 창문을 내리며 예쁘다고 연신 말했다. 창백하던 얼굴이 붉은 하늘 덕분인지 잠시 생기 있어 보였다. 덩달아 나도 아름다운 광경에 아침졸음이 확 가셨다. 한참 하늘을 바라보던 언니는 도시락을 꺼냈다. 아무 음식이나 못 먹는 언니를 위해 엄마가 무균식으로 밥을 싸줬다. 언니는 내게도 밥을 권유했지만 혹시나 식곤증이 올까 걱정이 돼서 거절했다. 함평을 지나자 하늘은 선홍빛을 띠었다. 사라져 가는 붉은 아름다움에 아쉬워하며 언니는 맛있게 도시락을 먹었다.
우린 그렇게 함께 전주로 갔고, 몇 달 뒤엔 나 혼자 목포로 되돌아야만 했다.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날 아침을 매일 생각한다. 언니와의 마지막 드라이브가 된 그날 아침을.
몇 달 전 아침에 일찍 고속도로를 차 타고 지나가다가 언니와 함께 봤던 그 도로에서, 그때 그 하늘이 그대로 펼쳐졌다.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어서 갓길에 정차했다. 그때처럼 또 찬란한 붉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잠시 생기 있던 언니의 그 얼굴이 너무 보고 싶었다. 목놓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울다가 잠시 쓰러졌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꽤 지나있었다. 하늘은 붉은빛을 없애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조수석 언니가 사라진 채 나 혼자 남겨진 것처럼. 그렇게 다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게 바뀌는 걸까.
기억이란 건 참 야속하다. 물리적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다가도 어떠한 기억에 사로잡히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 그 공간과 시간에 갇혀버린다. 마치 가상현실처럼. 복잡한 기계장치를 머리에 씌우지 않아도 눈을 감았다 뜨면, 어느새 타들어가는 붉은 하늘 아래에 우리가 차를 타고 가고 있지. 언니는 옆에서 밥을 먹고 있어. 엔진소리와 밥을 씹는 소리, 그 도시락 냄새마저도 느낄 수 있어. 우린 그렇게 끝나지 않는 아침노을의 향현 속으로 부지런하게 차를 타고 가고 있어. 나는 이 장면의 결말을 알지만 모른 척 언니 옆에서 운전을 할래. 언니와 아침노을 속에서의 영원한 드라이브를 즐기며 그렇게 살아가야겠지.
불면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7월의 마지막 달.
아슬아슬한 위태로운 슬픔들이 장맛비와 함께 고여가고 있다. 가족을 잃은 나로서는, 장마 때문에 목숨을 잃은 분들 일이 남일 같지가 않아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 유가족을 생각하면 또 눈물이 흐른다.
부디 이번주부터 다시 오는 이 비가 그저 물 부족에 도움이 되는 그런 좋은 결말만 낳기를 읊조리며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