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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메리 Nov 23. 2023

It is what it is

 

새로운 직장에 들어간 지 이제 한 달 가까이 지났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이들과의 일하는 즐거움은 크다. 타인에게 무한한 웃음과 친절을 베푸는 태도에 스스로가 놀랍다. 퇴근하고 오면 광대뼈 근육이 아릴 정도로 낮에 많이 웃는다. 시답지 않은 일에도 깔깔거리며 누구에게나 웃음을 준다. 직원이 묻는 말에 능숙하게 대답하는 날 보면 가끔 나름의 전문가스럽게 비칠 때가 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월급에, 괜찮은 직장 환경이고, 잘 적응한 셈이다.  


그러나 퇴근하고 집에 혼자 있으면, 묘한 정적으로부터 우울과 괴로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너무 웃어서 아픈 광대뼈를 어루만지다 보면 어느새 눈으로 손이 간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온 얼굴이 화끈거린다. 뒤늦게 정신 차려보면 방바닥이 눈물로 흥건하다. 이런 반복적 슬픔은 오래되고 낡은 집에서 으레 맡아지는 하수구 냄새와 같다. 막을 수도, 감출 수도 없다. 가족이 죽으면 애도기간이 5년이라는데 나에겐 5년 일 것 같진 않다.


"It is what it is."

좋아하는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존이 아내를 잃고 난 후, 셜록이 위로하는 상황에서 존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는 상황이다. 가장 좋아하는 셜록 시즌 4에 두 번째 에피소드 이야기다. 200번은 더 돌려봤다. 물론 내 가족이 죽고 난 이후엔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아직 휴대폰 즐겨찾기에 아빠와 언니가 있다.


새 직장에서 어떤 분들과 모여서 얘기를 하는데, 건강이야기가 나오더니 암 이야기가 나오고 결국 누군가가 그렇게 해서 죽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자리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떠한 반응도 전혀 못했다. 여태 반응을 잘해주던 여자애가 어느새 입을 딱 다물고 있어서 아마 다들 의아했을 수도 있다.  <암. 병원. 죽음. 가족> 이 단어가 이젠 나의 금기어가 되었나 보다. 순간적으로 듣는 즉시, 떠올리는 즉시 울거나, 마비되거나 하는 그런 금기어.


새 직장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일 하고, 이젠 더는 지각하지 않고, 인정받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날 보고 아빠는 얼마나 기뻐할까. 단 몇 년 전만 해도. 2020년 7월 이전까지만 해도 아빠에게 모든 시답지 않은 일까지 일일이 통화로 즐겨 말하곤 했다. 언니도... 언니도 참 기뻐했을 텐데.


어느새 서른이 됐다. 요새 분초사회라고 하던데. 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건너온 것 같다. 아직 내 모든 건 아빠와 언니가 건강했던 스물일곱에 멈춰있다. 언제 벗어날까 고민하기보다, 아 이왕 여기 머무는 거 진득하게 슬퍼해보자라는 생각이 든다. 슬픔이 날 삼키려들거든 기꺼이 고개를 숙이고 푹 담글 것이다. 사람들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되니까. 지금 요새 만나는 사람 대부분은 내 슬픔을 모르니까 오히려 편하다. 아침에 부어있는 눈을 봐서 놀라는 상대에게 라면 먹고 잤다고 했다. 바로 믿더라. 편하다.


오늘은 그냥. 글을 적고 싶었다. 이 글을 적으면서도 눈물 몇 방울을 떨구긴 했지만 괜찮다.

It is what it is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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