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를 만나다

by 북키퍼


‘윌라’와 ‘밀리의 서재’ 두 개의 책 관련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두 개의 플랫폼에 겹치는 것도 많은데 하나로 정리하지 못하는 건 각각 그 쓰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윌라는 아무래도 성우가 읽어주기에 실감 나는 오디오북이 강점이다. 밀리의 서재는 방대한 양의 텍스트 중심이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산책이나 집안일하는 시간에 오디오북을 듣는다. 책은 이북 리더기를 이용해서 읽는다. 그러니 한 권 한 권이 끝날 때마다 이번엔 뭘 읽을까 와 들을까를 고민하는데 우연히 밀리의 서재에서 유명한 배우, 허성태 님이 읽는 안톤 체호프의 단편을 듣게 되었다. 본인이 러시아어를 전공하였고 좋아하는 작가가 안톤 체호프라는 간단한 소개를 한다. 전공자의 발성이라 그런지 간간이 들리는 러시아어의 발음도 훌륭하고 책을 끊어 읽는 호흡도 남다르다. ‘귀여운 여인’이라는 단편을 하나 듣고 나는 이내 밀리의 서재에 체홉 단편선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체호프의 몇 개의 단편 소설을 읽고 맨 처음 떠오른 단어, 키워드는 ‘죽음’이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그 마지막은 죽음의 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죽음은 어둡고 음습하여 다가가고 싶지 않은 우울한 이미지다. 체호프의 죽음은 현실에 비하면 매우 안정적인 상태로 들어가는 해방의 영역이다.


<관리의 죽음>에서 자신이 저지른 사소한 실수를 용서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안절부절못하는 하급 공무원은 좌절감에 옷 입은 채로 소파에 앉아서 죽는다. 어이없는 결말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감상이 일반적인 것인지 내 해석일 뿐인지 모르겠지만 견딜 수 없는 고통에서 비로소 죽음을 통해 구원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베짱이>에서 불륜을 저지른 아내로 인해 고통받던 한 남자의 죽음도 슬픔으로 묘사되지 않고 그저 죽음으로 끝난다.


체호프의 작품에서는 이런 인간 삶의 허무함이 간결하고 명료하다. 슬픔이 없이 슬픔을 바라볼 수 있다.

윌라로 오디오북을 몇 권 더 다운로드해 놓았다. 벚꽃이 피는 봄 산책길은 아마 안톤 체호프의 책들과 함께 할 것 같다. 시작하는 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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