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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멍이 Jun 26. 2021

암환자가 된 간호사 이야기

1. 나는 간호사다.


  간호가 좋아서 시작했고, 일하면서 날마다 좋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 직업에 나름 만족하며 살았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어느덧 16년 차 간호사가 되어있다. 미혼의 올드 간호사인 나는 육아휴직 등은 당연히 해당되지 않았고, 정말 쉼 없이 일했다. 바쁘게 일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살았다. 종합검진센터에서의 PRN 업무를 시작으로(이전에는 신규 간호사가 정식 발령을 받기 전에 임시직으로 근무를 시작했었다) 외과, 흉부외과, 비뇨기과, 호흡기내과, 내분비내과, 심장내과, 핵의학과-옥소치료, 응급병동, 성형외과를 거쳐 작년 말부터는 코로나 병동 임시 파견까지 나의 임상은 지속되었다.

 

  수많은 환자들을 만났고, 죽음을 보았고, 치료과정들을 함께 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오히려 더 조심스럽고, 더 많이 공부해야 할 것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경력이 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런 환자에게는 어떻게 다가가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몸과 머리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들이 생겼다.

  학생 간호사들이나 갓 입사한 신규 간호사들이 항상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오래 임상에 있을 수 있냐고, 힘들지 않냐고. 힘들지, 힘들었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보람 있는 순간들이 있었고, 내 감정에 공감해주는 선, 후배 동료들이 있었고, 내 일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3교대로 불규칙한 일상이었지만 그 덕에 오프를 신청해서 여행도 자주 다닐 수 있었고, 이따금씩 다녀오는 해외 단기선교에서 의료팀으로 역할을 하며 내 직업의 보람도 느끼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흘러가서 지금이 되었다.


  바쁜 일상 속에 결혼은 늦어졌고 캥거루처럼 이 나이 되기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며 도움을 받고 사니 불편한 게 없었다. 틈틈이 친구들과 여행 다니며 또 바쁜 일상을 반복하며 어느새 결혼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던 내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를 만나 연애하면서도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연애만 하며 살고 싶다고. 무언가 책임지는 게 두려웠고, 결혼의 설렘보다 회의감이 더 크다 말했다. 하지만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비혼을 결심했던 내 마음을 이겼다. 코로나 병동에서 근무하는 동안 프러포즈를 받고,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천천히 결혼을 준비했다. 그리고 코로나 병동 파견이 끝나는 시점인 4월에 상견례를 약속했다.


  3월 마지막 주 일요일. 여느 때와 같이 그와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며 오랜만에 가슴을 만지며 촉진을 했는데, 좌측 가슴에서 무언가가 만져졌다. 낭종 같지도 않았고 명확하게 만져지는 덩어리였다.

‘에이.. 아니겠지..’

스스로 괜찮을 거라 별일 아닐 거라 위로했지만, 순식간에 불안감은 내 몸 깊숙이 들어왔다. 머리로는 암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지만, 마음으로는 별일 아닐 거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니, 별일 아니어야 했다. 올해 결혼 준비로 행복하고 즐겁게 분주한 한 해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아니잖아. 그 밤 나는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이 되어 있었고, 휴대폰을 손에 쥐고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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