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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멍이 Jul 07. 2021

암환자가 된 간호사 이야기

2.  만우절,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

  의식적으로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자꾸 되뇌었다. 이제는 왼쪽 가슴을 만지는 것조차도 겁이 났다.

'그래. 빨리 진료를 보자...'

병원 유방외과 진료 표를 확인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진료를 보고 싶은데, 남자 교수님들 진료밖에 없다. 아픈데 남녀가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매일 함께 일하며 마주친 동료에게 내 가슴을 내보이며 진료를 본 다는 게 쉽지 않았다. 가장 빠른 진료일로 여자 교수님께 진료 예약을 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드디어 수요일 첫 진료를 보았다.

"젊은 여성에게서 양성 종양이 종종 만져지기도 합니다. 유방검진은 처음이신 것 같으니 검사를 좀 해보고 이야기 하지요."

나의 긴장을 느끼기라도 한 듯 교수님은 상냥하고 따뜻하게 안내해주셨다. 그리하여 생에 첫 유방촬영(흔히 말하는 맘모그라피)을 진행하였다. 근무 중 환자들이 내게 유방촬영에 대해 물으면 

"가슴을 한 껏 눌러서 검사하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실 거예요. 금방 끝나요."라고 답했었다.

조금.. 조금이라니... 많이 아프다. 아주 많이 아프다... 내 유방이 눌려서 터지기 직전까지 쓸어 모아 눌러 검사한다. 금방.. 금방이라니... 오래 걸린다. (물론 CT 등에 비하면 짧겠지만...) 확실히 왼쪽 가슴에 덩어리가 있어서 그런지 누를 때 더 아픈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내가 민감한 걸 거야. 


  유방촬영을 마치고 그다음 날 유방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다. 영상의학과 교수가 진료하기 전 전공의가 먼저 선 검사를 진행했다. 우측은 슥슥 금방 진행하였고, 문제의 좌측!

"어? 꽤 크네요. 이 정도면 만져졌을 텐데... 모르셨어요?"

내 가슴에, 내 귀에 비수가 꽂히는 느낌이었다. 연신 초음파 사진을 찍어대며 쉼 없이 질문을 하는 전공의가 야속하리 만큼 미웠다.(의사가 뭔 죄여...) 눈물이 차올랐지만 담담한 척 참아냈다. 뒤 이어 영상의학과 교수가 들어왔고, 똑같은 질문, 똑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검사를 마치고 외래 진료일을 확인 후 곧바로 이브닝 근무 출근을 했다.


  출근 후 아무렇지 않게 동료들과 인사하고, 환자를 인계받고, 병실 라운딩을 하고. 별일 없는 듯 움직이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검사 결과에 대한 불안감은 최고조를 향해 갔고, 나는 나의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결과는...

'Highly suggestive of malignancy. R/O metastasis LX.' (악성종양이 강하게 의심됨. 림프 전이 의심됨.)

모니터를 확인하고 누가 볼세라 후다닥 화면을 꺼버렸다. 암이다. 내가... 암이란다. 오늘은 만우절인데...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확연하게 암이란다. 의사를 빨리 만나야 할 것 같았다. 확인이든 뭐든 해야 했으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누가 듣을세라 작은 목소리로 유방외과 외래에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ㅇㅇ병동 ㅇㅇㅇ입니다. 제가 제 결과를 확인했는데요... 외래 일정을 조금 당겨주실 수 있을까요...?"

친절하게도 외래 간호사는 검사를 확인해주었고, 조직검사를 서둘러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교수님과 상의 후 빠른 날짜로 조직검사 일정을 잡아주었다. 외래 간호사는 안면이 있는 동료였기에 걱정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이후 근무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서 간호사 갱의실로 도망치듯 뛰어갔다. 그나마 코로나 시국 탓에 마스크로 가린 노메이크업 얼굴이라 우는 얼굴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왜 지금이야... 왜 암이냐고... 왜 나는 내 몸의  변화 조차 몰랐던 거냐고...'

서러움이 밀려왔다. 스스로가 너무 미웠고 한심했다. 부정하고 싶었고 뭔가 잘못된 결과였으면 했다. 울고 나면 그래도 좀 진정이 되겠지 기대했지만, 근무는 너무 바빴고 내게 여유시간은 없었다. 울음을 대충 끝내고 나와 다시 일을 했다. 기계처럼 아무 일 없는 듯이 일했지만 이따금씩 내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결혼이 싫은 건 아니었다. 그냥 두려웠다. 그리고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의 삶이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사랑을 만났고, 영원한 사랑 같은 거창한 믿음은 아니더라도 오래 함께 하고 싶은 확신이 생겼다. 1월 프러포즈를 받고 결혼을 약속했다. 지난 12월부터 잠시 코로나 병동에 파견을 가게 되었었고, 파견 업무를 마치는 4월 즈음 상견례를 하기로 하고 조금씩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암이란다. 내가. 암이다. 오늘은 4월 1일 만우절이었고, 상견례 9일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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