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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멍이 Aug 06. 2021

암환자가 된 간호사 이야기

3. 너를 위해

  4월 1일 이브닝 근무였다. 그날 무슨 정신으로 일했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엔 온통 '내가 암이다'와 '결혼을 진행하는 건 무리가 있겠다'였다. 환자의 검사 결과를 조회하면서도 자꾸 내 검사 결과가 떠올랐고, 환자 카덱스에 유방암이라는 진단명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결혼은 내게 먼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이 하고 싶어 졌다. 그만큼 그 사람이 좋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제 암 진단을 받았으니 수술에서 항암까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게 느껴졌다. 이런 나에게 결혼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내게 너무도 다정한 그 사람이 나로 인해 힘들어지는 게 끔찍하게 싫었다. 퇴근 즈음 나는 토깽이(애칭)에게 톡을 보냈다.


"근무 후에 잠시 볼 수 있어요...? 내가 자기 집 근처로 갈게요."

"퇴근하고 오는 거면 피곤하잖아요. 내가 갈게요."

"늦은 시간이라... 내가 자기 집 근처로 가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일하고 오는 사람이 더 피곤하지. 나는 쉬었으니까 내가 동네로 갈게요."

톡으로는 내 감정이 전달될 리 없었겠지만... 굳은 결심을 하고 만나자고 하는 내게, 그는 이 시간의 만남을 너무 좋아하며 직접 오겠다고 했다. 이 상황이 너무 싫고 또 슬펐다.

  

  그의 고집대로 우리 동네에서 만났다. 늦은 시간이라 토깽이의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눴다.

"무슨 일 있어요? 갑자기 보자고 해서 놀랐는데 기분은 좋다."

밝은 얼굴로 마주하는 그에게 나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말해야지.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눈물이 말보다 먼저 튀어나오려 애를 쓰고 있었다.

"저... 내가 왼쪽 가슴에 뭐가 만져지는 게 있어서 검사를 했는데... 암이래요... 물론 조직검사까지 해야 정확한 진단이 나오겠지만, 암은 확실한 거 같아요... 오늘이 만우절이라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는데, 미안해요. 거짓말 아니고... 나 유방암이래요..."


너무 뜻밖의 말에 놀란 그였다. 나는 곧 울음이 터져 버렸고, 그는 나를 위로하듯 꼭 안아주었다. 그가 안아주는 품이 너무 따뜻했지만 나는 손으로 그를 밀어냈다. 눈물이 자꾸 새어 나와 말을 제대로 이어가기 어려웠지만 꿋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끄윽) 상견례는..(끄윽)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결혼도요..."

"아니요. 우리는 상견례할 거고, 결혼도 할 거예요."

"말도..(끄윽) 안돼요. 나는 나 때문에(끄윽) 자기가 힘들어지는 게 싫어요....(끄윽) 수술도 해야 할 거고, 항암치료도(끄윽) 해야 하는데 결혼은(끄윽.. 하아..) 더더욱 힘들 것 같아요. 나는 자기가 행복했으면(끄윽) 좋겠고, 나보다 더 좋은 사람(끄윽...) 만났으면 좋겠어요..(엉엉..)"

토깽이는 내 팔을 당겨 자신의 품에 꼭 안았다.

"나는 자기랑 결혼할 거예요. 자기가 있어야 행복한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내가 자기 보호자 할 거예요"


그 역시 울고 있었지만, 내가 밀어내려 하면 더 세게 끌어안았다. 우리는 한참을 "헤어지자", "안된다"를 반복했다. 결국 내가 그에게 졌다.

"우리 가족들에겐 내가 알아서 잘 얘기할게요. 걱정 말고, 치료 잘 받고 다시 건강해지면 돼요."

눈물범벅이 된 얼굴에 바보같이 웅얼거리는 내게 사랑한다고, 함께 하자고 말해주는 그가 너무 고마웠다. 고마운 만큼 더 미안했지만, 그에 말에 이끌려 붙잡고 싶었다. 내 욕심이라고 해도 사실은 헤어질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다음 날 토깽이는 꽃을 들고 내게 왔다. (평소도 꽃을 좋아하는 내게 자주 꽃을 사다 주곤 했다.) 우리에게 아무 변화 없을 거라고. 치료 잘 받고 결혼하자고. 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마음 약해지지 말고 힘내야지. 내 사람 생각해서라도 맘 다잡고 꼭 이겨내야지. 아직 우리 부모님께도, 하나밖에 없는 오빠에게도 내 얘기를 못 한 상태였지만 힘든 고개 하나하나 잘 넘겨봐야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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