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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멍이 Aug 07. 2021

암환자가 된 간호사 이야기

4. 간호사이자 환자, 환자이자 간호사

  믿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이제 나는 암환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암이 강력히 의심되는 환자이고, 이제 그 놈(암)의 정체를 알아내야 한다. 적을 알아야 치료도 시작될 테니까. 가슴의 멍울을 인지하고 이놈이 암이 의심된다고 이야기를 듣기까지 딱 4일 걸렸다. 그 4일이 내게는 40년 같이 길게만 느껴졌다. 본격적으로 검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아직 그 누구도 몰랐으면 싶었다. 이미 토깽이에게는 알릴 수밖에 없었고... 가족들에게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직장에서 검사를 진행하게 되어 검사 결과를 빨리 알 수 있었지만, 직장 내 동료들이 내 병을 알게 될까 두려워졌다. 하루아침에 나를 안쓰럽게 바라볼 그 눈빛들이 상상만 해도 너무 싫었다. 내가 환자인걸 인정하게 되는 게 너무 싫었다. 늘 밝고 목소리 크던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직원이라 배려해 주신 덕에 빠르게 조직검사 일정이 잡혔다. 가족들에게는 도저히 알릴 자신이 없었고, 혼자 몰래 검사하러 가고 싶었지만, 토깽이가 검사를 따라오겠다고 했다.

 "나 혼자 가도 돼요. 어차피 그날도 오후 출근이라 검사하고 바로 병동 올라갈 거예요."

 "보호자 없이 검사하는 게 어딨어요. 우린 결혼할 사이니까 내가 보호자 할게요."


  10여분 남짓이면 끝나겠지 라고 생각하며 토깽이와 함께 유방외과 외래로 갔다. 검사실에서 조직검사 진행하기 전 좀 더 세심하게 보기 위해 유방 추가 촬영을 한다고 했다. 하아... 그 아픈걸 또 하는구나... 눈물이 찔끔 날정도로 또 내 가슴이 구겨지고 찌그러지며 검사를 진행했다. 하...나 엄살 대마왕인데. 직장이라 소리도 못 지르겠고, 꾹 참느라 힘들었다. 이후 진행된 조직검사. 총 처럼 바늘을 쏘아 검체를 채집한다 하여 Gun-byopsy라 불린다. 교과서로 배워 알고 있었고, 이미 많은 환자들에게 안내하고 간호했던 검사였지만 내가 하는 건 처음이니까... 긴장되었다. 그리고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도 싫었다.


   측면으로 누워 겨드랑이가 보이도록 한 쪽 팔을 쭉 올린 약간은 불편한 자세로 검사가 진행되었다. 국소 마취 후 진행하였지만, 그 마취조차도 아팠다. 초음파로 유방 병변 위치를 확인하고 몇 번의 '탕', '탕' 소리와 함께 조직을 채취했다. 그다음 겨드랑이 조직 채취. 림프절의 조직 검사였기 때문에 이곳은 주사기를 이용한 흡인의 방법으로 검채를 채취한다. 한 번, 두 번... 너무 아파서 눈물이고 비명이고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이곳은 내 직장이니까... 참아보자. 참아보자... 금방 끝날 것 같았던 검사는 꽤 오랜 시간 진행되는 것 같았고, 검사 완료 후에도 출혈 위험이 있어 몇 분의 안정을 취한 후 일어나도록 안내받았다.


  "괜찮아요? 많이 아팠어요?"

걱정하며 나를 바라보는 토깽이의 얼굴에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조직검사 부위가 아프기도 했고, 긴장이 풀려서 이기도 했고, 그냥 이 상황 자체가 아직도 현실 같지가 않았다. 결과 확인을 위한 외래 날짜를 확인하고 검사실을 나왔다. 

  "일 할 수 있겠어요? 많이 아플 텐데..."

  "괜찮아. 너무 아프면 진통제 먹어보지요, 뭐."

말은 괜찮다 했지만 욱신거리고 뻐근하고 아팠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팠다. 마취가 풀리며 점점 더 불편해졌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 하니까. 


  검사 진행한 것에 대해서는 부서장님께 알려야 할 것 같아 말씀드렸다.

  "팀장님, 실은 제가 며칠 전에 유방에 멍울이 만져져서 외래 진료 봤는데 조직검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오늘 출근 전에 검사를 했습니다."

  "응? 검사를 했다고? 오늘? 근데 출근했다고?"

  "네. 조금 아프긴 한데 일할 수 있습니다."

  "아이고... 오늘 검사한 거면 힘들 텐데... 미리 얘기를 하지 그랬어. 검사 결과는 언제 나오니? 별일 없을 거야."

  "다음 주로 예약 잡고 왔어요. 결과 나오면 바로 말씀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이미 암이 강력히 의심되는 예비 암환자였지만 팀장님께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었나 보다. 


  환자 인계를 받고 업무 준비를 하는데 검사한 쪽 팔과 가슴이 너무 무거웠다. 동료들에게 말하지 않았으니 내색할 수도 없고, 통증을 숨기느라 애먹었다. 오늘따라 수술 환자는 많았고, 내가 봐야 할 환자들 중 유방암 환자도 역시 있었다. 신경 쓰지 말자, 신경 쓰지 말자를 되뇌었지만 신경이 쓰였다. 환자가 수술실에서 병동으로 복귀하면 이동침대에서 환자의 침상으로 환자를 들어 옮겨야 하는데, 왼쪽 팔에 힘을 주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참고 버텼다. 환자 차트와 카덱스를 읽고 일하면서 유방암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추춤했지만, 그것 또한 잘 참고 일에 집중했다.


  저녁시간 즈음, 환자들의 저녁 약을 투약하기 위해 병실에 들어갔다. 1인실 유방암 환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녁 약 드리러 왔습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왜 울고 계세요?"

  "다른 환자들은 수술하면 (치료가) 끝인 거 같던데, 나는 이제 시작이잖아요... 가슴의 상처도 이렇게 큰데. 항암도 해야 한다고 하고, 방사선 치료도 해야 한다고 하고... 가슴도 나중에 복원하려면 또 수술해야 한다고 하고... 희망이 없는 거 같아요."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병에 대해 알았으니, 이제 잘 치료하면 되죠. 더 늦기 전에 발견하게 되어 다행이지요. 지금껏 잘 따라와 주셨으니 앞으로도 잘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저 같은 환자 많이 보셨나요? 치료가 잘 되나요?"

  "많이들 오시지요.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기운 내세요."

  "고마워요, 간호사님. 그래도 이야기하고 나니까 기분이 좀 낫네요."


  병실 밖에 나오자마자,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근무하는 내내 너무 우울했고, 불안감에 빠졌다 나왔다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이런 내가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다. 오래도록 매일 하던 일이라 머릿속에 있던 루틴의 대사들을 읊은 느낌인데, 그것이 상대에게는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부끄러웠다. 주책맞게 또 눈물이 차올랐다.

  '내가 지금 누굴 위로해... 나도 무서운데... '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재빨리 간호사 갱의실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한참을 끅끅 거리며 눈물을 닦아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마스크를 올리고 나왔다. 코로나 시국의 마스크 착용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불안함과 우울함을 잘 숨기며 며칠을 버텨오고 있었다. 조직검사 이후로 좌측 유방이 더 커진 것 같고, 아프고 불편해지면서 점점 더 초초해졌지만 티 내지 않고 잘 버텼다. 한참 일하고 있는데 오후 회진을 위해 유방외과 교수가 병동으로 왔다. 이번 내 검사의 주치의이기도 했다. 평소에도 오후 회진은 전공의 없이 혼자 오기도 하는데, 그날도 혼자 병동에 올라왔다.

  "같이 가시죠?"

  "네."

당연히 내 환자를 보러 온 거라 생각하고 회진을 따라 가는데 병실 복도 끝에서 내게 조용히 말했다.

  "지난번 선생님 조직검사했던 것 결과가 나와 먼저 알려주고 싶어서 왔습니다. 세부 검사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현재로서는 악성 종양이 맞구요. 좌측 겨드랑이 림프절에도 전이가 있습니다. 유방암에도 종류가 여럿이라 조직 결과가 최종 나와야 치료가 시작되겠지만, 현재로서는 항암을 먼저 진행해서 암의 사이즈를 좀 줄여보고 이후 수술을 계획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렇군요. 이렇게 먼저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교수님."

  "요즘 항암제도 신약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치료법도 좋아져서 잘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미리 겁먹지 마시고 차근차근 진행하시면 될 것 같아요. 항암도 하고 수술도 하려면 휴직도 고려하셔야 할 거고... 집이 어디시죠? 항암치료는 치료 동안 힘들 수 있으니 가급적 가까운 병원으로 선택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결정하시겠다고 하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 아직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한 상태라... 다음 외래 때까지 좀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악성종양... 가족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상견례는 정말 이대로 진행해도 되는 건지, 내가 결혼은 할 수 있는 건지... 또 휴직이라니... 지금 내가 맘 편히 쉬어도 되는 건지. 그 어떤 것도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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