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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멍이 Jun 22. 2022

암환자가 된 간호사 이야기

5. 코끝 시린 상견례 그리고 내 안의 암시키 파헤치기

  악성 암이 맞다고 한다. 정확한 결과는 좀 더 기다려야 한다 했지만 그건 암의 성질을 보는 거지 악성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이미 여러번 내가 암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주치의를 통해 듣는 '암'이라는 단어는 더 강하고 날카롭게 내 가슴에 꽂혔다. 진짜 암환자가 되었구나...


  근무 중 유방암 환자를 대하는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일하는 시간이 좋았다. 적어도 바쁘게 움직이는 그 시간에는 딴 생각을 할 수 없었으니까. 

문제는 퇴근길. 퇴근길이 문제였다. 퇴근길 운전하는 그 시간동안 온갖 경우의 수들이 나를 둘러쌌다. 

'암이라니... 내가 암이라니... 죽을 수도 있다는 건가...?'

'휴직... 내가 지금 휴직을 해도 되는 상황일까...?'

'항암이라면... 나도 곧 삭발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겠지...?'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운전중이라 눈물을 닦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 생각이 났다. 특히 부모님께 어떻게 말해야 할 지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상견례... 이제 정말 약속한 날이 다가오고 있다.

 

[까똑]

'퇴근길 잘 오고 있어요? 우리 집엔 내가 잘 말씀드렸어요. 우리 상견례는 예정대로 진행하는 걸로 해요'

'고마워요. 근데 나 아직 우리 집에 말씀을 못드려서...'

'혼자 말씀드리기 어려우면 내가 같이 갈께요. 걱정말아요.'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서 고맙고... 그래서 또 미안하고... ㅠ.ㅠ

에휴. 이제 이 고민은 그만하자. 내가 이럴수록 내사랑 토깽이가 더 힘들어 질 테니까.


상견례도 그렇지만 이제 하나 둘 추가 검사를 시작해야하니 가족에게 알려야 했다. 부모님께 알리기에 앞서 하나밖에 없는 형제인 오빠 부부에게 털어 놓기로 했다.

"저기...내가 아프다네...? 그... 암이래...유방암...림프에도 이미 전이가 된 것 같고..."

오빠, 새언니 모두 크게 놀란듯 했지만 나를 배려해서인지 애써 담담하려 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울컥했지만 잘 참아냈다.

잘 치료받으면 될 거라고, 아무일 없을 거라고, 뭐든 다 도와주겠다고 미리 걱정하지 말자고 말해줬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기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 힘에 기대어서라도 힘내자고.

다음, 부모님께 알리기. 정말이지 입이 떨어지지 않을것 같았지만 오빠부부와 내사랑 토깽이가 함께 해주기로 해서 용기를 내기로 했다.

올해는 울엄마의 특별한 생일이 있다. 엄마의 칠순. 엄마에게 잊지 못할 생일을 만들어 줄 것 같아 너무너무 죄송했다. 그래도 잘 치료해서 다시 건강해지는게 중요한 거니까 힘내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내 사람들을 대동하여 엄마, 아빠에게 통보하듯 말씀드렸다.

"엄마 내가 암이래. 그래서 이제 검사랑 치료를 시작할 것 같아. 요즘 암치료약이 많이 나와서 암이라고 해도 옛날 같지 않데. 토깽이랑 상의했구, 상견례도 예정대로 진행하려구요. 울면 약해질거 같으니까 울지마시구."

떨어지지 않을것 같았던 내 입술은 속사포 랩을 하듯 하고 싶은 말들을 우다다다 쏟아내었다. 엄마, 아빠가 어떠한 말도 하실 틈을 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큰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지만 부모님도 마찬가지로 나를 배려해 무너지지 않으셨다. 

"그래. 치료 받으면 되지. 잘 치료받고 건강해지면 되지. 아직 뵙지못한 사돈어르신께 면목이 없지만..."

토깽이는 집에 잘 설명드렸고, 이해해 주시고 계신다며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않게끔 얘기해주었다. 이제 본인이 보호자도 할 거라고. 부모님들은 걱정하시지 말라는 말도 함께 해주었다.


상견례날. 토깽이에게 절대 울지 말자고, 아니 울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코로나 시국이라 실내 인원 제한이 있어 모든 가족이 다 참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양가 부모님과 대표 형제만 참여하기로 했다. 평소 자신감 넘치고 낯가림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내가 떨고 있었다. 몸이 아픈게 죄가 아니지만 죄를 지은것 같았다. 결혼을 앞두고 이런일이 생겼다는게 너무나도 억울하고 기가 막혔다. 한껏 예쁘게 꾸미고 울지말자, 울지말자를 되뇌이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암 진단이후 처음뵙는 자리였다. 어머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맞아주셨는데 거기서 한 번 울컥했다. 빠른 속도로 눈물이 차오르는데 참기가 어려웠다.

"울지마. 잘 치료 받으면 되지. 죄송할 것도 없어."

따뜻하게 위로해주시며 손을 꼭 잡아주셨다. 엄마, 아빠도 보고 계셨기에 재빨리 눈물의 흔적을 지웠다. 여러 코스 요리가 나오기 시작하고, 양가 부모님의 말씀도 오갔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계속 나왔지만 긴장한 탓인지 잘 넘어가지 않았다. 토깽이는 코스요리가 나올 때 마다 정말이지 맛있게 먹었다. 정말 편안하게 잘 먹었다. 좋아. 내 보호자 할 만하네. 흐흐.

내 우려와 달리 상견례 자리는 즐겁게 마무리 되었다. 상견례 이후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지만 오늘은 암에 대한 추가 검사가 예약되어 있었다. 양가 부모님께 인사 드리고 나와 토깽이는 검사를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 예정된 검사는 유방MRI. 지난 주간 이것저것 검사를 했다. 유방 조직검사에서 림프 전이를 확인했기 때문에 다른 장기로의 전이가 있는지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흉부, 복부 CT, 뼈 스캔 검사, 그리고 오늘 MRI까지. 오늘까지 검사를 마치면 다음 주 외래에서 검사 결과를 듣고 치료 방향이 결정 될 것 같다.

상견례라 예쁘게 화장하고 차려 입고 나왔는데, 검사를 위해 옷을 갈아 입었다. 약 40여분 정도를 엎드려서 검사하게 되는데 움직이면 검사가 부정확하게 나올 수 있어 최대한 가만히 있어야 한다. 같은 자세로 40분을 지속한다는게 쉽지 않았다.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꾹 참아냈다. 검사를 완료하니 검사실 선생님께서 수고 많았다고 하며 일으켜 주었다.

엊그제 뼈스캔 검사가 있었는데 데이 근무였어서 근무 후 검사실로 갔었다. 피곤도 했지만 시무룩한 얼굴을 숨길 수 없었다. 예전에 핵의학과 환자를 봤었던 경험이 있어 검사실 선생님들이 혹시 날 알아볼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검사를 마치고 퇴근하느라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병원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 방금 검사하시고 간 핵의학과에요. 검사 끝나고 사진 검토해봤는데 bone은 다 깨끗해요. 결과 나올 때 까지 걱정하실까봐 미리 연락드려요. 다른 것도 괜찮으실 거니까 치료 잘 받으세요."

너무 감사했다. 내 병이 들통날까 이리저리 숨어 다녔는데... 이리 배려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울지말고 정신 잘 챙기고 잘 싸워봐야겠다 생각했다.


이제 암시키를 파헤치기 위한 검사는 모두 완료한 듯 했다. 다음 주 모든 결과가 종합되면 이제 치료도 결정이 되겠지. 치료를 시작하려면 회사에도 알려야 하고, 치료받을 병원도 결정해야 하고... 아..그리고 2월에 예약해두었던 우리의 웨딩촬영.. 치료 전에 해결해야 할 산들이 하나 둘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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