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옛날 향수를 자아내는 음식, 노래, 향, 그리고 날씨를 만날 때가 있다. 나에게 그 향수들의 대부분은 엄마와 함께 나누던 순간들이었다.
어묵. 어린 시절 우리 집엔 욕실이 따로 없었다. 옛날식 주방에 있는 큰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바가지로 물을 퍼서 몸에 끼얹으며 씻어야 했다. 마당으로 바로 이어지는 그 공간에서 겨울에 씻는 건 혹한기 생존과 맞먹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엄마와 나는 주기적으로 15분 거리에 있는 동네 목욕탕을 갔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서늘한 거리에는 모락모락 김을 뿜어내는 한 분식집이 있었다. 목욕탕을 갈 때마다 그 보상으로 어머니께서는 300원짜리 어묵 한 꼬치를 사주셨다. 짭짤한 국물을 꽤 오래 머금어 야들야들해진 어묵을 한 입 베어 먹으면, 나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아이가 되었다.
어릴 때 엄마는 직접 만든 모닝송을 부르시며 우리 남매를 깨우셨다. 일어나요~일어나요~ 어서어서 일어나요 일어나요~. 제멋대로 도망가는 개구진 음가락 속에 새물내가 날 거 같이 포근히 내려앉는 엄마의 목소리가 우리 남매의 아침을 열었다. 대게 공감하겠지만 아침기상을 위해 설정한 노래는 싫어지기 마련이다. 이상하게도 엄마의 노랫소리는 싫증 나지 않았고, 지금도 가끔씩 떠올라 혼자 미소 짓게 된다. 고구마처럼 퍽퍽한 삶 속에서도 그토록 밝게 아침을 열었주었던 엄마께 고마움과 존경심이 함께 든다.
푹푹 찌는 어느 여름날이 되면, 머리를 힘껏 올려 묶은 채 분홍색 반팔 니트를 입고, 양손 가득 장바구니와 수박 한 통을 들고 집으로 오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땀에 흥건히 젖은 채, 여름에는 수박을 먹어야 한다며, 우리 남매를 위해 3-40분 떨어져 있는 마트에서 수박 한 통을 혼자 들고 온 엄마. 그런 무더운 날의 사랑이 엄마의 팔에는 땀띠로 나타났다. 그때가 생각나는 계절은 여름이었음에도 왜 내 코끝은 시큰해진 걸까.
외국의 한 펍에 친구들과 놀러 간 적이 있다. 마침 펍에서 퀴즈를 열었고 노래를 맞추는 게임이 있었다. Carpenters의 close to you와 yesterday once more. 나는 듣자마자 노래를 맞췄고, 친구들은 옛날 노래를 어떻게 아냐며 신기해했다. 어릴 때 엄마와 나는 2주 또는 한 달에 한번씩 40분 정도 떨어진 지역 도서관을 가서 책을 빌려오곤 했다. 특히 한 겨울 그 거리를 걸어가기 위해선 우리에게 노동요?가 필요했다.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엄마 폰에 녹음했고, 그 거리를 오갈 때면 엄마와 함께 Carpenters 노래를 들었다. 추운 겨울 잠바 속에 놓인 폰에서 흘러나온 음악 소리는 고르지 못했고, 우리의 걸음, 세차게 부는 바람마다 흔들렸다. 하지만 그 따뜻한 선율에 행복했던 그 겨울, 내 마음의 온도와 엄마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때와 다르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했던 그 순간들이 계절에 따라 노래, 수박, 향기, 어묵이 되어 나를 감싸돈다. 오늘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 나비처럼 낭창하게 날아와 내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