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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 Jan 15. 2024

베낭매고 출발



자전거는 주인을 닮았다. 또는 서로를 닮아간다. 함께 하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 자전거야, 묵은 때를 벗어보자 


다시 창고에 있던 자전거를 꺼냈다. 약 5년 전에 중고로 얻었던 자전거다. 지난 1년 동안 창고에만 있었던 자전거의 상태는 만신창이였다. 바퀴에는 모두 바람이 빠져 있었고, 무심한 주인 덕분에 잔뜩 갈려서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손잡이에 감겨져 있던 갈색 테이프는 닳고 닳아 허옇게 변해 있었다. 초라해져 있었다.



만신창이인 자전거를 끌고 동네에 있는 한 자전거 가게를 방문했다. 의자를 한껏 젖히고 누워계시던 자전거 가게 사장님께서 벌떡 일어나 인자한 미소로 맞아주셨다. 자전거의 바퀴 두 개와 손자이 테이프를 교체했다. 제법 돈이 나갔다. 이 가격이면... 하며 가게에 전시되어 있는 새로운 자전거들로 눈이 휘익... 돌아갔다. 다행히도 나는 내 자전거와의 의리를 지켰다. 1년 동안 창고에서 외롭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자전거와 다시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 나의 자전거를 소개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보면 자전거의 종류에 따라 그 사람의 분위기가 다르게 보인다. 산악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강하고 다부진 아우라를 풍긴다. 접이식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검소한 아우라를 풍긴다. 로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도전적인 아우라를 풍긴다. 이쁜 색의 라탄 바구니를 단 자전거를 가진 사람들은 아기자기하면서도 너그러운 아우라를 풍긴다.  



나는 픽시 자전거를 탄다. 픽시 자전거는 바퀴와 기어가 함께 고정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형태의 자전거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인 만큼, 사람들이 제어해야할 부분이 여느 자전거보다 많고, 그래서 위험하기도 하다. 픽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대게 위험한? 아우라를 풍긴다. 



내가 이 자전거를 선택한 주된 이유는 운동과 여행을 함께 즐기기 위해서 였다. 또한 픽시 자전거는 달린 부품이나 기능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고장날 일이 없다. 자전거를 타는 도중 체인이 꼬이는 것만큼 불편한 일이 없다. 하지만 픽시 자전거를 타면 체인이 하나기 때문에 꼬일 체인이 없다. 



브레이크 없는 픽시 자전거는 돌발 상황에서 나를 위험한 상황에 몰 수 있기도 하고, 불법이기 때문에 양 손잡이에 브레이크를 달았다. 예전에 학교에서 성격 유형 테스트를 받아본 적이 있다.  여러 항목들 중에 '도전 정신'과 '안정 추구'라는 항목이 있었다. 보통은 이 둘 중 한 쪽이 높게 나오면 다른 쪽이 낮게 나온다고 한다. 나는 이 두 항목이 모두 표준 이상으로 나왔다. 당시 테스트를 담당하던 선생님께서는 이런 성향으로 인해 스스로 선택과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고민과 갈등이 많다고 하셨다. 브레이크가 있는 픽시자전거는 왠지 나의 그런 성향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다.



여행은 누구와 함께 가는지에 따라 보고 느끼는 바와 남게 되는 감정이 다르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친구들과 갈 때면, 여행지 곳곳에 심오한 질문과 답들을 꼿아두고 오곤 한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이 픽시자전거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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