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하 Feb 18. 2024

금복이의 고래, 나의 삐삐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단지 그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 고래   (천명관 지음) - 



천명관 작가님의 고래라는 소설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소설에는 어린 시절 엄마의 죽음을 겪어야 했고,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했던 산골 소녀 금복이의 인생이 담겨있다. 금복이는 처음 고래를 본 이래로, 고래를 보고 싶어 바다에 들어가기도 했고, 고래를 닮은 큰 극장을 짓기도 했다. 



금복이는 자신이 고래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알았을까? 그냥 자신의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느끼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금복이의 진짜 속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화자(話者)가 던진 저 시선은 금복이의 무의식을 관통하는 거 같다. 그리고 나의 무의식도 관통하는 시선이다.  



나에게 금복이의 고래와 같은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흠칫 들었다.



말괄량이 삐삐였다. 나는 어린 시절 말괄량이 삐삐를 좋아해 티비 프로그램과 책들을 챙겨봤다.



티비프로그램으로 방영된 만화에서, 삐삐는 어느 마을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 살고 있던 토미와 아니카라는 남매를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 그 세 사람은 좌충우돌 하루들을 만들어 나간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그 세 친구들이 삐삐의 소파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이었다. 나도 삐삐의 친구가 되어 그 소파를 타고 훨훨 날아오르고 싶었다. 그 바람은 어린 시절의 내 마음속에 줄곧 간직해 둔 꿈이었다.  



홀로 오빠와 나를 키우셔야 했던 어머니는 언제나 바쁘게 일을 하셨다. 그래서 함께 여행을 갈 여유가 없었다. 아침 네 시나 다섯 시에 출근해 병원 급식소에서 일을 하셨고, 저녁때쯤 퇴근을 하시면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셨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늦은 밤이나 새벽에는 할머니와 함께 홍합 작업을 하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바쁜 모습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어머니와 마트라도 가고 싶은 마음에, 홍합 작업에 손을 더했다. 하지만 작업이 끝날 때면 대게 마트도 문을 닫았다. 미어지는 마음과 함께 시큰해지는 코를 애써 감추곤 했다. 홍합 거래처 쪽 사정으로 작업이 취소되거나, 적은 보급량으로 예상보다 작업이 빨리 끝나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의 굵고 거친 손을 움켜 쥐며 마트를 가곤 했다. 그 순간의 어머니를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았나보다. 그 순간들이 나에게는 유일한 일탈이자 여행이었다. 



어릴 때 나는 겁이 많은 아이였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사는 작은 공간을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꿈을 꿨다. 뭐든 겁내지 않고 할 수 있는 삐삐, 하늘을 날아다니는 피터팬을 동경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마음 깊이 읽었다. 내 꿈을 대신 이뤄주는 그들의 이야기에 매료됐고, 그렇게 대체된 행복으로 나의 갈증을 축이곤 했다. 

'삐삐의 친구가 된다면, 세상을 무서워할 필요없이 훨훨 떠다닐 수 있겠다.'



지금의 나는 삐삐의 친구가 아닌 삐삐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삐삐처럼 초능력을 가지진 못하지만, 힘들 때면 삐삐를 떠올리며 한 걸음씩 씩씩한 걸음을 내딛고 있으니 말이다. 나의 이 한걸음 한걸음들이 모여, 더 다양한 세상을 만나고 따듯한 시선으로 그 순간들을 담아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묵 한 꼬치가 품었던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