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안에서 세제, 물과 함께 돌던 이불은 건조대에 축 늘어져 있었는데, 다 마르기 전까지는 내 도화지가 되었다. 이불속 세상은 그야말로 나의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레고를 가져와 왕국을 만들기도 하고 소꿉놀이 세트를 가져와 집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편견 없이 상상하던 시기였다. 그때는 곰돌이 푸와 검투사가 서로 친구였으니 말이다. 이제 몸이 커져 들어갈 수 없는 이불속 세상은 한 줌 추억으로 남았다.
동생과 TV 앞에 나란히 앉아 비디오 영화를 보던 그때가 생각난다. 영화의 제목은 ‘피터팬’이었는데, 그때는 마냥 '후크선장'이 나쁘고 피터팬을 떠난 웬디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알 수 있다. 사실상 문제는 피터팬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결국 네버랜드의 행복은 망상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네버랜드와는 달리 멍하니 서 있어도 시간은 흐르며, 현실에는 후크라는 절대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과 악을 저울질하며 살고 있다. 가끔은 후크가 내 안에 있는 것 같은데, 사실 내가 후크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후크가 자신의 손과 시계를 삼킨 악어에게 쫓기듯 나는 과거를 삼킨 미래에게 쫓기고 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이라면, 같은 상황에 놓여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피터팬은 후크 같은 어른이 되기 싫어 네버랜드에 남아있으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록 피터팬으로 남을 수도 남고 싶지도 않지만, 그런데도 남아있는 일말의 동심과 상상력을 떠올리고자 이번 사진을 찍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