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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언 Nov 07. 2022

들장미 소녀 캔디

Day3-1

사리아의 이야기는 밤 12시부터 시작한다.


사실상 우리는 마드리드에서의 일을 겪은 후로 단 한 방울의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지친 육체도 문제지만 스페인이라는 탈곡기에 털려버린 멘탈이 더 큰 문제였는데, 더 이상의 변수를 맞닥뜨릴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인생은 고해이기에 작은 인간의 사정 따윈 고려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흘러가는 물고기 혹은 플랑크톤이기 때문이다. 사리아에 도착한 우리는 언덕 꼭대기에 있는 숙소를 향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올라갔다.


우리의 첫 알베르게는 초록 대문의 옛 스페인 건물이었다. 고요한 밤 골목의 노락 가로등과 어우러진 거대한 진녹색의 대문은 우리에게 완벽한 쉼과 안식을 줄 거라 약속하는 듯했다.


우체통에 열쇠를 넣어두었다는 사장님의 말을 따라 대문과 방 열쇠를 꺼냈다. 그러나 웬걸? 문이 열리지 않았다. 분명 열쇠는 들어가지만 아무리 돌려도 열리지 않았다.


아직도 여행의 흐름이 나로부터 시작된다 여긴 걸까? 이미 스페인에 오자마자 내 계획의 허황됨을 경험했음에도 사리아에 발걸음이 닿은 것을 오로지 나의 공로로 생각한 것 같다.


그렇게 대문 앞에서 노숙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천사 2가 등장했다. 새벽 1시, 좁은 골목을 순찰 중이던 경찰이 다가왔다. 우리는 그가 다가온 줄도 몰랐기에 마치 뿅! 하고 나타난 것 같았다. 그는 우리에게 "coreano?"라고 물어보았고 한 줌 미소와 함께 굉장히 쉽게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스페인의 옛 문은 열쇠를 돌리면서 문을 밀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렇게 숙소로 들어갔고 기나긴 시간의 여독을 풀었다. 다만, 충격적인 사실은 아직 순례길의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목 : 어린아이 믿음


Q : 당신의 믿음은 순수한가요?




제목 : 다툼


Q : 다툼은 문제의 해결책일까요? 혹은 미궁의 입구일까요?




제목 : 남겨진 추억


Q : 당신은 지금 깜빡 잊고 내린 추억이 있나요? 




제목 : 가벼운 휴식


Q : 당신은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휴식처를 알고 있나요?




제목 : 기록


Q : 당신은 지금을 기록하고 있나요?



오늘도 당신의 작은 창문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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