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유리구슬 같은 물집이 발가락 곳곳에 자리하고 근육의 떨림이 멈출기미를 보이지 않지만, 아침만 되면 뚜벅뚜벅 걷고 있는 나를 마주했다.
새벽 6시...
스페인 태양의 늦잠 덕분에 시원한 바람이 마중 나왔다. 점심 즈음에는 흐릿하게 춤을 추는 아지랑이가 수평선 너머로 보이지만, 덕분에 부지런히 아침을 준비할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은 발걸음을 내딛고 아름다운 여명이 잎사귀를 흔들어 숲의 노래가 들려온다. 나의 하찮은 작곡 실력으로는 자연의 소리를 악보로 옮길 수 없었다. 그래서 지브리의 곡을 작곡한 히사이시 조의 노래를 들으며 자연과 한 몸이 되고자 했다. 개인적으로 그의 노래가 자연의 소리와 흡사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걸었다.
시간이 흘러 자연의 무대에 온전히 심취할 즈음 오래된 담벼락과 숲의 바위는 잠시 쉬어가라고 자리를 내어준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적당한 쉼이 없으면 독이 된다는 것을 숲은 알고 있었을까? 우리는 상냥한 배려를 받고 다시금 길을 걸었다.
오전 9시 즈음 숲을 뒤로한 우리는 조그마한 마을을 만나게 되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종종 옛날 중세 영화 촬영지 같은 마을을 만나는데, 오늘은 독특한 광경을 마주했다. 마을의 중심부에는 앞서간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마을의 조그만 교회에서 무료로 커피와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마침 목도 마르고 카페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양치 않고 교회로 들어갔다.
교회 내부에는 사람들이 찬양을 부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서로의 여행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종교가 있든지 없든지 교회의 친절함에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나 또한 지나온 시간을 감사하며, 앞으로 지나갈 시간을 기대할 수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교회 문을 나설 때는 전도사님이 포옹을 해주며 "I will pray for you"라고 말해주었는데, 설명하기 어려운 뭉클함과 포근함이 동시에 다가왔다.
사실 이 외에도 감사한 일의 연속이었는데, 숙소 직원에게 아침밥을 선물 받기도 하고 매번 빨래도 할 수 있었다. 심심할 즈음에는 수다를 떨어줄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배꼽시계가 울리려고 하면, 저 멀리 식당이 보였다. 마치 길을 걷는 내내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것 같달까? 감사하게도 길 위에서의 부족함은 느끼지 못했다. 혹자는 '순례길을 걸으며 궁핍을 겪어야 한다.'라지만 나의 길을 좀 다른가 보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고민할 것이 많아서일까?
어쩌면 길의 배려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길 위에서 받은 포근한 위로는 한국에 가서도 가져가고 싶어졌다. 내가 누군가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