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
여행에서 사전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오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그들의 울타리에 스며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나에겐 산티아고를 목전에 둔 시점이 그러했다.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숙소에 도착해 무거운 짐과 발의 피로를 내려놓았다. 친구는 마을을 탐방하고 겸사겸사 빨래방을 찾기 위해 숙소를 나섰고, 나는 콜라 한잔과 함께 지난 일정에 관한 글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늘의 색깔이 주황색으로 물들여질 무렵 별안간 북소리와 트럼펫 소리가 온 마을을 채웠다.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 건 저녁 9시였는데, 10시 30분에 취침하는 나로서는 소음에 불과했다. 드럼과 다른 악기의 박자도 정확하지 않았을뿐더러 음정을 무시하고 노래 부르는 인파로 온 마을이 뒤덮였다. 게다가 이 소리를 저녁 내내 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유발되었다.
우린 아침 일찍 산티아고에 도착하려 했고 혹여 일정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되었는데, 어차피 피하지 못할 현실이라면 함께 즐기자는 친구의 제안에 나 또한 군중에 합류하게 되었다.
군중의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끌었던 장면이 있었는데, 어린아이와 어머니, 할머니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었다. 박자 위에 올라탄 아이의 모습에 주위 어른들은 박수로 응원해주었고 아이의 몸짓과 음악의 호흡이 일치할 수 있도록 어머니와 할머니가 함께 춤을 추었다. 아이의 모습을 발견한 밴드는 아이의 발걸음에 북소리를 맞추었다. 그야말로 하나의 미래를 위해 수많은 과거가 모인 게 아닌가?
어떠한 규칙도 형식도 없지만 그 자체로 조화로우며 아름다웠다. 찡그리고 있던 나의 얼굴에는 점점 미소가 차올랐고 어느새 나도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춤을 추는 사람이 많아졌고 몇 분 후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 손에는 술 한 손에는 그루브를 들고 축제에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타인과 함께 춤출 일이 없기에 스페인의 문화가 생소했지만, 거부감보다는 부러움이 마음 한편 가득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길거리가 만남의 장이 되고 열정과 뜨거움이 전파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러움도 부러움이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한 점도 있었는데, 바로 희로애락 중 '락'을 경험한 것이다. 순례길은 인생의 축소판이기에 인생의 기승전결과 인간에게 필요한 주요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살짝 엿보기 위해 순례를 시작한다. 나 또한 그런 요소를 기대했기에 여행 곳곳에서 희로애락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하루에 30km를 걷는 와중에 '락'의 요소를 찾기란 어려웠다. 게다가 당시에는 '락'이란, 그저 인간의 욕구를 풀기 위한 거라 단정 지으려던 찰나였다. 그러나 내가 본 군중은 단순히 욕구를 해소하려고 춤을 추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생에 대한 경이로움과 '감사'가 그들의 몸짓에 내포된 듯 보였다.
문득 이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표면상으로 축제라는 찰나의 행복으로 보이지만, 이들에게 음악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소박해 보이나 이들에게는 거대한 행복의 요소로서 자리할 것이다.
아직 나는 진정한 '락'을 경험하지 못했다. 춤추는 군중을 통해 제삼자의 시선으로 관찰은 했으나 아직 즐길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도무지 삐걱대는 관절은 리듬을 소화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락'의 한자는 '즐길 락'이다. 즉, 즐김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인생을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아직은 여유가 없는 것인지 즐기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길의 끝에는 여유가 기다리고 있을지,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자세를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무엇을 받았으며, 무엇을 줄 수 있는가?
Q : 당신은 부모님에게 무엇을 받았나요?
진정한 노익장은 화려함에 가린 여유를 찾는 사람
Q : 당신은 어떻게 늙고 싶나요?
우린 욕망을 내려놓고 온전히 음악에 심취해본 적이 있는가?
Q : 당신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요?
같이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Q : 당신은 함께 늙어갈 사람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