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8
내가 다시 순례길을 걷는 날 그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고 싶다.
작금의 여행이 내 인생의 티저영상이니 다음은 2막의 예고편이었으면 좋겠다. 2막의 존재만으로도 먼 길을 웃으며 걸을 테니 말이다. 스페인 여행 전에 세르반데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읽고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를 감상했다. 뮤지컬의 넘버 중 '둘시네아'라는 곡이 있는데, 우린 이곡을 돈키호테의 세레나데라고만 알고 있지만, 사실 돈키호테가 '둘시네아'라고 부르는 인물의 정체는 초라한 여관의 하녀 알돈자다. 그녀는 극의 초반에 자신을 의심, 좌절하고 천대하며 자존감이 낮은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평소 우리의 모습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데, 자신을 아름다운 '둘시네아'라고 부르는 돈키호테를 통해 스스로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된다. 결국 돈키호테는 죽음을 맞이하지만, 알돈자가 "내 이름은 둘시네아예요."라고 외치는 장면은 그녀가 비로소 회복된 자아를 갖게 됨을 알게 한다.
서두에 '둘시네아'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사랑의 순기능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결핍이 있으며, 세상은 개인의 나약한 모습에 호의적이지 않다. 언제나 약점을 드러내길 기다리며,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랑이 필요하다. 이성 간에 서로를 책임지는 사랑말이다. 즉, 나는 세상이 내어준 문제를 함께 풀고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여 발전시키는 관계를 맺고 싶다.
바라기는 2022년의 순례길이 스케치를 그린 시간이었다면, 다음에는 '우리'의 색감을 더하고 싶다. 그날이 찾아올지 찾게 될지 모르겠으나 사랑하는 이와 보폭을 맞추어 나란히 걷길 고대한다.
그러나 반드시 스페인의 순례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그곳이 까미노의 길이 될 것이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니 다른 까미노분들에게 다시 올 거냐는 질문을 받아 한번 끄적여 본다. 세상일이란 게 항상 변수의 파도지만, 이번 순례길에 대해 나름의 결론을 냈기 때문에 혼자 혹은 친구와 또 오지는 않을 것 같다.
우선 순례길에서 얻은 결론으로 나의 길을 힘차게 걷고자 한다.
그들은 사랑노래를 만들었고
나는 멀찍이서 그들을 듣고 있었다.
Q :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랑노래는 무엇인가요?
그녀는 진동으로 세상을 보았고
나는 그녀의 손가락으로 노래를 들었다.
Q : 당신은 클래식을 좋아하나요?
내 앞을 막는 사람들도 어쩌면 길을 헤매는 중일지도 모른다.
Q : 당신은 길을 헤매고 있나요?
어둠이 있어야 빛도 아름답다.
Q : 당신은 논리적인 사람인가요?
맨오브라만차 - 둘시네아
부른 사람 - 김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