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습득기 7
영어 습득기 글을 쓴 지 벌써 6개월이 흘렀다. 영어를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한 날이 6개월이 넘었다는 이야기이다. 올해 계획을 세우면서 영어 습득에 대해서 6개월 후 재점검을 할 것이라고 표시해 두었다. 6개월까지 달려온 영어와 얼마나 친해졌는지부터 학습 방법이 적절했는지 둘러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6개월 전과 지금의 영어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지 않았다. 처음에는 6개월 정도면 어려운 단어와 문장은 몰라도 듣기와 기본적인 회화는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매번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방법과 관련된 영상을 미친 듯이 봤다. 유창하게 영어를 말하는 사람들은 결국 6개월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중독에 빠진 듯이 빠르게 습득할 방법을 탐닉했다. 물론 일정 부분 학습방법에 대한 영상은 도움이 되었다. 인풋과 아웃풋 중에 초반에는 인풋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내 수준에 맞는 영상과 오디오 자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공간도 많이 알게 되었다.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면 익숙하지 않은 것과 친해지는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한 번도 보지 않아 영어에 대한 공포가 좀 있었다. 단어만 몇 가지 알 뿐 문장은 전혀 해석이 되지 않았다. 여러 번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고 하루에 20~30분 남짓 단어만 외우는 공부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실패의 원인을 찾아보니 명백했다. 언어는 완전히 내 일상에 자리 잡지 않는 이상 절대 습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난 6개월의 노력은 영어라는 언어를 어떻게 내 일상생활에 습관과 생활로 자리 잡게 하느냐의 싸움이었다. 대충 설렁설렁해가지고는 매번 헬로 하와유 아임 파임 땡큐와 같이 서로 소개만 하고 끝날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상 패턴을 바꾸는 것은 어려웠다. 기존 수십 년간의 패턴에 새로운 방식을 주입하는데 스스로의 저항감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려움 중 하나는 음악 듣기를 줄이는 일이었다. 나는 주로 출퇴근과 자투리 시간에 음악을 들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락 밴드 음반을 샀을 정도로 중요한 취미였다. 하지만 영어를 듣기 위해서는 음악감상 시간을 다른 시간으로 옮겨야 했다. 자투리 시간을 영어 듣기를 해야 한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처음에 쉽지 않았다. 순간 꽂이는 음악이 있으면 하루종일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 일니깐 말이다. 결국 유료 앱 결제를 해지하고 듣고 싶은 곡만 찾아 듣는 라이트 리스너로 전환했다. 저항감이 컸지만 결국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자투리 시간 리스닝이 중요한 것은 바쁜 생활 속에 직장인이 많은 시간을 따로 할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직 그 시간에 집중력을 잃고 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졸고 있어도 계속 영어가 흘러나오기 때문에 왠지 계속 노출되어 소리가 익숙해진다는 느낌이 있다.
두 번째는 집중적으로 영어에 노출될 시간을 정하는 문제였다. 노조 활동을 하면서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하루에 30~40분 정도는 책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영어 공부 하기 전까지는 무리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사업장 및 투쟁현장에서 연락 오지 않는 밤 10시즘이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으로 가장 적절했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책을 읽는 시간을 주말로 배치하고 평일에는 영어를 집중적으로 보는 시간으로 편성해야 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결국 책 읽는 양은 많이 줄었지만 평일 밤에 1시간씩은 꼭 영어에 노출될 수 있었다. 이 습관이 자리 잡는데 방해꾼은 TV였다. 놓치고 싶지 않은 뉴스나 드라마 등이 있다면 꼭 하루 정도는 안 해도 되겠지라는 유혹이 슬며시 올라왔다. 그런 유혹 앞에 굴복하기도 했지만 매일 1시간은 집중 학습을 한다는 습관을 몸에 베이게 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영어가 일상으로 자리 잡는 것만 아니었다. 왜냐면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비기너(A1, A2) 레벨에서는 영어가 아무리 많이 노출돼도 잘 들리지 않고 잘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시간을 어떻게 버티는지가 중요했다. 잘 안 들리고 잘 말하지 못하더라도 일상에서 꾸준히 해나가는 힘이 필요했다. 여러 번 좌절감을 느꼈다. 소소한 재미를 포기하면서 까지 이렇게 필살적으로 해야 할까 라는 의구심도 있었다. 너무 안 들리는 날에는 그냥 포기하고 AI 시대의 발전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결국 나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 마이크의 조언대로 나를 스스로 너무 몰아붙여서는 안 되는 게 언어였다. 수능 공부나 시험공부처럼 바짝 공부해서 결과를 낼 수 있는 과목이 아니었다. 내 수준에 맞는 자료를 꾸준히 들으며 하나하나 실전에서 써보는 방법이 언어에서 가장 중요했다. 또한 영어권 나라에 살지 않는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미국 사람처럼 유창하게 하기보다는 직무에 필요한 표현을 잘 해내는 것이 내 언어의 목적이 되어야 했다. 원어민처럼 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려놓는 과정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이 내용을 깨닫는데 딱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영어를 어떻게 내 일상에 접목하여 함께 공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된 것만 해도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6개월 감히 영어와 친해진 시간이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