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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당 Jun 03. 2023

코인노래방

노래방 동지가 있었다.

같은 장르의 노래를 좋아하고, 집이 가까워 노래에 갈증이 생길 때면 치맥 한잔 후 노래방을 향한다.


가는 곳은 동*역 근처 코인노래방이다.

코로나 이후 조심스레 개업한 이 노래방의 시설은 깔끔했으며 20대 젊은이들이 주 고객이었다.


두세 명 간신히 앉을 수 있는 탁자, 노래방 기기와 마이크가 얹힌 선반이 전부였다.

처음 갔을 때 코인노래방은 좁고 답답했지만,

노래만 집중토록 실용화된 이곳이 차츰 좋아졌다.


우리는 보통 오천 원(천 원에 세곡) 어치를 부르는데, 둘의 노래 점수도 비슷하게 나와서 대체로 좋은 파트너였다.


그런데 약 4개월 전쯤, 그날도 간단한 치맥 후 이른 저녁시간에 그 노래방을 찾았다.


주인이 반기면서 지금까지 못 본 큰 방으로 안내를 하였다. 이 방은 보통의 방 5개를 합친 것 같이 10명도 수용가능하였다.


"가격은 같으니 넓은 곳을 쓰세요."

"아니~ 예, 이렇게 큰 방에서, 정말 고마워요."


우리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그 큰 방에서 노래를 불렀다.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양편 긴 의자에 마주 앉으니 여유롭고 쾌적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 노래가 끝난 후 점수가 너무 적게 나왔다. 친구의 점수는 80점 전후였으나 나는 거의 20점대에 머물렀었다.

몇 곡을 불러도 점수의 변화는 없었고, 친구가 민망하여 내게 위로의 말도 던졌다.


"기계가 미쳤는가 봐, 고장 났나 보다!"  


친구와 마이크와 자리도 바꿔보았으나 점수는 일정했다. 템포가 빠르거나 늦은 노래를 불러도 소용이 없었고, 하물며 친구가 불렀던 노래를 곧바로 불러봐도 점수차는 여전했다.


친구 노래가 끝나면 밝은 아가씨의 목소리가

<와~아, 진영이 완전 심쿵! 멋져요! 95점~>

<오~ 그대 황홀한 목소리에 반했어요! 98점~>


내 노래 후엔 아가씨의 목소리가 냉랭하다.

<너~어! 노래에 조금만 더 집! 중! 28점~>

<이 점수 어쩌면 좋지, 진짜 모르겠어! 22점~>


어떨 때는 친구가 100점, 연이어 내가 0점이 나올 때는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내 노래역사에 최대 오점을 남긴 셈이었다.)


끝나고 나올 때 주인에게 기계 이상 여부를 물어보았지만 그냥 잘 가세요 대답뿐이었다.


그 이후에도 예닐곱 번쯤 그 방에서 노래를 불렀으나, 모두 나는 0~30점대, 친구는 80~100점 만을 기록했다.


노래가 끝나고 점수 차가 크게 나오니, 나와 친구 사이에 미묘하고 어색한 감정도 생겨났다.


"점수가 뭐가 중요하나, 신경 쓰지 말고 즐기자!'


친구의 위로가 진정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내심으로 나는 기가 죽으며 의기소침해졌으며 반면 친구의 우월감은 조금씩 커져만 갔다.


"목소리를 높여 불러보는 게 어떤지!"

"박자를 정확히 맞추어 보면 좋겠는데!"


친구의 진심 어린 충고가 월권 같았으며, 노래할 때 가수처럼 마이크를 치켜올리는 친구의 여유도 내겐 기고만장한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최근 둘 다 좋아하는 이치현의 '사랑의 슬픔', 윤형주의 '어제 내린 비' 를 1, 2절로 친구와 나누어 불러보니 처음으로 4,50점대 점수가 나왔다.

아마도 정확히 둘의 평균값이 아니었을까!


나는 더 이상 시험할 필요가 없어졌다.

고장 난 기계가 아니라 내가 친구보다 노래 실력이 없다는 확실한 증인이었다.

(친구의 동생이 음악과 교수였음도 떠올랐다)


이곳에서 노래 부르기를 즐기기로 했다.

단골 노인을 우대하는 주인의 배려로 생각하고 이 큰 방의 매력에 빠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을 들어올 때면 도도한 아가씨(노래방기계)의 놀리는 소리가 늘 들리는 듯하다.


"오늘도 함께 오셨군요! 가수 님과 음치 님!,

언제라도 환영합니다!"~~~라고 하면서~ㅠㅠ


결코 모르는 게 약이 될 수 없었다.


친구가 내보다 노래 고수임을 진작 알았어야 했으며, 스스로 노래를 좀 한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았어야 했었다.


인정머리도 융통성도 없는 아가씨(노래방기계)의 점수는 가장 공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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