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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Aug 29. 2024

⟪햄릿⟫ 다시 읽기

햄릿에 대한 질문들

햄릿을 다시 읽었다. 내가 구독하는 오디오 매거진에서 셰익스피어 전공자인 성공회대의 진영종 교수와 김어준씨가 <햄릿>을 주제로 나누는 대화를 듣으면서 할 수 있다면 나도 그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다. 햄릿을 읽다보면 누구나 가질법한 의문을 잘 짚어내어 질문하고 그에 대해 답변하는 것을 들으며 나도 그에 대한 대답을 떠올려 보았다. 둘의 대화에 끼어든다고 생각하고 진교수가 조금 더 설명을 했더라면 하는 부분에 대한 내 생각을 보태보려고 한다. 참고로 나는 영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셰익스피어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다. 단지 그의 작품을 좋아해서 젊은 날 열심히 읽었고, 종종 되풀이해 읽었고, 또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무시로 차용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조금 아는 고로 두 사람의 대화 중에 제기된 몇가지 질문에 대한 내 생각과 함께 두 사람의 대담 중에는 전혀 언급이 없었던 그리스 비극을 조금 보태어 설명해 보려고 한다. 



질문1. 햄릿의 어머니인 왕비 거트루드는 왜 숙부와 결혼하였는가? 그리고 남편인 왕이 죽으면 왕위는 아들 햄릿에게 양위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영문학 작품을 읽을 때 오해와 애매함을 초래하는 것은 우리말 번역에 기인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영어의 “Queen”은 우리말 번역에서는 왕비도 의미하고 여왕도 의미한다. 그러나 역사상 왕비와 여왕의 지위는 분명히 달랐다. 왕비는 권력의 주체인 왕의 배우자인 반면, 여왕은 그 자체로 권력의 주체였다. 즉 여왕은 남편인 왕이 죽으면 다른 사람을 선택하여 결혼함으로써 왕의 지위를 새로운 배우자에게 부여할 수 있었다.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에 대해서는 작품 안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아서 왕비인지 여왕인지 지위가 분명치 않다. 그녀의 행동에 대한 묘사가 잠깐씩 나오는데, 왕 보다 자기를 낮추며 행동하는 장면을 보면 왕비의 지위인 것 같다. 그런데 전 왕(남편)이 독살당해 죽은 후 그를 독살한 남편의 동생(햄릿의 숙부) 클로디어스와 결혼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지키는 것을 보면 그녀는 여왕이지 않을까 싶다. 왕비라면 왕의 사후에 왕의 지위는 자연스레 햄릿에게로 물려져야 했다. 만약 햄릿이 어렸다면 그녀가 수렴청정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햄릿은 친정을 할 수 있는 나이였으니 왕비였다면 그 자리를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그런데 왕의 지위를 자식에게 주지 않고 그녀가 재혼함으로써 새 남편에게 왕의 지위를 주는 것을 보면 거트루드는 권력의 주체인 여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절은 여왕이 통치하던 시절이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를, 스코틀랜드에는 메리 스튜어트 여왕이 통치를 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처녀 여왕으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것에 반해, 메리 스튜어트는 남편을 여러 번 갈았다. 남편들은 메리와 결혼을 함으로써 왕의 지위에 올랐지만 애정이 식어 쫓겨나거나 시해를 당함으로써 권력에서 사라졌다. 권력의 주체는 메리 스튜어트였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1세 역시 결혼을 하였더라도 남편이 아닌 그녀가 권력의 주체였을 것이다. 그런 시대 상황을 염두에 두고 햄릿 속 거트루드를 보면 그녀가 권력의 주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전남편이 죽었다고 하여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새로운 남편을 맞이하여 권력을 계속 유지한 것이다. 햄릿 역시 어머니가 왕위를 자기에게 물려주지 않은 것에 분노하기 보다는 아버지를 독살한 숙부와 아버지가 죽고 얼마 되지도 않아 결혼하는 모습에 더 화가 나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만약 거트루드가 죽는다면 햄릿이 자연스레 왕위를 계승했을 것이다. 물론 숙부가 순순히 권력에서 물러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니 한바탕 전쟁을 치워야 하겠지만 정통성은 햄릿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헨리 퓨젤리, <호라시오, 햄릿, 그리고 유령>, 1789, 사진출처: en.wikipedia.org




질문2. 유령으로 나타난 아버지 왕으로 부터 복수를 하라는 명을 받은 후 햄릿은 왜 연인 오필리아에게 수녀원으로 가라고 했는가?


수녀원에 들어가면 결혼도 못하고 세상과 격절되어 산다고 생각하고 이런 질문을 제기한 것 같다. 현대의 수녀원은 그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수녀원은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이자 귀족의 여식들, 또는 귀족의 미망인들이 기탁하여 보호를 받으며 여생을 보내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많은 돈을 기부해야 했다. 햄릿이 아버지 유령을 만난 이후 미친 척 하며 연인 오필리아를 찾아가 수녀원에 가라고 한 것은 햄릿이 나는 너를 버리지만 너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 말고 평생 수녀원에서 독신으로 살라는 이기적인 심보의 독설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자신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해야하니 결혼은 물 건너 갔고, 그러니 오필리아 당신은 이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짓거나 자기 처럼 죄를 지을 자식을 낳아 기르기 보다는 차라리 수녀원으로 들어가 고귀하게 살라는 의미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진교수는 햄릿이 여성혐오에 빠져 그런 것 같다고 풀이하는데, 햄릿이 하는 대사를 보면 분명 여성을 비하하는 시각은 있지만 오필리아에게 수녀원으로 가라고 한 것은 여성혐오에 의한 발언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차피 자신은 이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자기를 던져야 하니 오필리아와의 미래는 꿈꿀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려 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질문 3.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바른 번역인가?


<햄릿>의 가장 유명한 대사라면 3막 1장에서 햄릿이 읊조리는 이 구절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극중에서 이 말이 나오는 부분은 뜬금없다. 진영종 교수는 이 번역이 이렇게 해석이 된 것은 처음 이 작품을 번역한 일본 학자에 의해서라고 한다. 우리는 그 번역을 받아들였던 것이고. 그러나 이것은 지나치게 극적으로 번역이 되어 전체적 맥락에 잘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원문을 보면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live와 die의 극적인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진교수는 이것을 햄릿이 선친이 현왕의 독살로 죽었고, 아버지 유령이 나타나 복수해 줄 것을 명한 이상 햄릿은 아버지의 명을 실천해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중에 하는 대사라고 설명한다. 즉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 있을 것이냐, 무엇인가를 도모해야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번역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진교수는 그 본보기의 하나로 셰익스피어극의 전문배우였던 영국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영화 <햄릿>에서 읊조리던 대사를 예로 든다. 마침 1948년에 제작된 영화가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가 되어 있어 링크해 놓는다.( www.youtube.com/watch?v=ZFGVz-eNrhg&t=5412s 영화의 59:50초 부분에 해당 대사가 나온다.) 내면의 고민을 물흐르듯 표현하고 있을 뿐 전혀 극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 대사 이후로 이어지는 대사들을 보아도 자기 목숨을 걸고 결단을 내리는 비장한 뉘앙스는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Stratford-upon-Avon에 있는 햄릿 동상, 사진출처: en.wikipedia.org




4.  작품 속의 그리스 신화 인용


셰익스피어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동방의 신화에 능통했던 작가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살던 작가이니 왜 안그렇겠는가! <햄릿> 뿐 아니라 다른 작품들에서도 곳곳에 자유 자재로 신화를 인용한다. 독극물을 제조하는 숙부의 모습에서 그리스 신화 속의 헤카테를 인용하고, 아들딸 14명을 일시에 잃고(판본에 따라 딸1, 아들1는 살았다고 하기도 하지만)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다 돌이 되어 버린 니오베를 인용하며 선왕의 죽음으로 니오베 처럼 하염없이 눈물짓던 어머니가 두달도 안되어 새로 결혼한 것을 비꼬고, 또 선왕이 죽고 어머니 거트루드가 다스리는 모습을 보면서 “한때 주피터의 것이었던 이 왕국을, 지금은 고작 공작새 한마리가 지배하지.”라고 읊조리는 모습을 통해 선왕을 제우스로, 어머니를 헤라 여신(공작새는 헤라 여신의 상징새)에 비유하고 있다. 또 극중 극으로 네댓명의 배우들이 공연하는 연극 주제도 <일리어스>의 트로이 전쟁장면이다. 2막 2장에 나온다. 아킬레우스가 파리스의 화살에 발뒤꿈치를 맞고 죽은 이후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는 파리스의 아버지이자 트로이의 왕인 프리아모스를 잔인하게 살해한다.자기 아버지를 죽인 파리스, 그러나 파리스는 이미 필록테테스의 활에 죽임을 당한 후라 네오프톨레모스는 파리스 대신 그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에게 자기 아버지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네오프톨레모스의 무지막지한 잔인성과 아버지 죽음에 대한 즉각적 복수는 햄릿의 우유부단함과는 대조적이다. 내면의 분노로 폭주하는 네오프톨레모스에 비하면 햄릿은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생각이 많아 결단이 쉽지않다. 네오프톨레모스와 햄릿의 대비는 이토록 극단적이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네오프톨레모스의 이름을 아명인 퓌로스로, 프리아모스왕은 프리암으로 표기하고 있다. 


나는 햄릿을 읽다보면 그리스 신화의 아가멤논 패밀리가 떠오른다. 햄릿을 보고 있으면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자 부인인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남편이 돌아온 날 목욕하고 막 욕조에서 나오려는 그를 죽인다. 남편이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 그녀는 아가멤논의 사촌동생과 바람이 났고, 아들인 오레스테스는 그런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성공한다. 진영종 교수는 햄릿의 복수는 현왕인 숙부 보다는 어머니에게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극화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하는데, 오레스테스와 같은 맥락이다. 즉 오레스테스는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어머니를 폄하하고 아버지 편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가멤논이 그녀와 결혼하기 전에 그녀에게 저지른 악행(이미 결혼했던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남편을 죽이고 그녀를 전리품으로 뺏어와 결혼했다.)과 또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장녀 이피게네이아를 속여 딸을 항구로 불러내어 트로이 전쟁의 제물로 바친 것을 보면 남편에 대한 그녀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집안의 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녀의 불륜은 이 집안에 얽히고 섥힌 핏빛 악연들의 결과로 일어난 일이며,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가에 얽힌 악연 속에서 희생된 당사자일 뿐이다. 따라서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만 떼어서 보면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천하의 죽일 년이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아가멤논은 집안에 내려오는 악의 에너지가 응집되어 인과응보의 결과로 죽었다고 볼 수 있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의 편에서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해 보려고 전혀 시도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복수를 한다는 명목에만 매몰되어 어머니를 죽이는 반인륜적인 행동을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는 오랜 동안 양심의 가책에 시달린다. 햄릿 역시 현왕이 자기를 독살하려고 두었던 독이 든 와인을 어머니가 모르고 마신 후 죽은 것을 보고 “불쌍한 어머니, 안녕히”라고 말한다. 진교수는 햄릿이 죽은 어머니에게 까지도 악담을 퍼부었다고 하는데, 내가 읽은 햄릿에는 그런 장면은 없었다. 오히려 어머니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있었음에도 어머니에 대한 측은한 감정 역시 있었던 것 같다. 



5.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 비극


그리스 비극은 신이 영웅적인 인물에게 내린 가혹한 운명으로 인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그 영웅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대표적인 작품이 오이디푸스 신화이다. 그는 처음에는 운명을 피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썼지만 결국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은 실현되고 말았다. 종국에 영웅은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지만 그렇다고 운명에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거부하고 싶을 만큼 가혹한 운명에 오히려 순응함으로써 운명을 초극한다. 죄갚음으로 평생 온갖 풍상을 겪으며 산 오이디푸스가 마침내 죽음에 직면했을 때 그는 죽음 앞에 비굴하지 않았다. 아주 초탈하게 자기 인생의 끝을 받아들였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경우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인간의 몰락이 아니라 한 개인이 가진 성격적 결함으로 파멸하는 “성격 비극” 이다. 유럽은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기에 접어들며 개인의 가치에 눈이 트이기 시작했다. 중세의 종교의 시대를 벗어나 인간의 가치가 다시 부흥한 것이다. 햄릿은 아버지 유령이 나타나 자기에게 복수를 명하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이런 저런 (이성적) 생각과 망설임 속에서 내내 고뇌한다. 외부 환경은 계속 변해가는데, 이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빨리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동안 자신이 계속 살인을 저지르고, 그렇게 살해 당한 사람의 가족들이 햄릿에게 복수의 칼날을 겨루는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며 결국 죽임을 당하는 파국으로 끝나고 만다. 종국에는  숙부에게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했지만 그 과정에서 어머니도 죽었고, 자기도 죽음으로써, 이루어진 것은 아버지의 복수 밖에는 없는 상황으로 끝이 났다. 과연 죽은 선친이 햄릿에게 바란 것이 이것이었을까? 햄릿은 아버지의 복수를 실현하기 위해 생각이 너무 많았고, 결단하지 못했고, 끝까지 우유부단함으로써 외부에서 닥쳐오는 종말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햄릿의 독백을 읽고 있으면 그의 지적 능력에 감탄하지만 지식인의 유약함이 먼저 떠오른다. 햄릿이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르네상스시대의 인간의 가치에 다시 눈을 뜬 이후 한 인간이 가진 개성(성격)에 주목하여 그것이 어떻게 삶을 전개해 나가는지 깊이 파고든 작품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6. <햄릿>에 대한 현대적 해석


작품을 읽고 나서 2019년 Claire McCarthy 가 감독한 영화 <Ophelia>를 보았다. 마침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가 되어 있어서 타이밍이 좋았다. 작품 <햄릿> 속에서는 자기의 목소리를 전혀 낼 수 없었던 오필리아였지만 이 영화는 온전히 오필리아의 자주적 관점에서 극을 다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용도 햄릿의 결말과는 다르게 끝난다. 왕비, 왕, 햄릿, 오필리아의 부친과 오빠 모두 죽지만 오필리아만 살아남아 햄릿과의 사이에 낳은 아이와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다. 이렇게 다른 결말이지만 그럼에도 햄릿 속의 대사들이 그대로 사용되는 장면이 많다. <햄릿> 원작을 살리되 원작에서는 아빠와 햄릿에게 휘둘리기만 하던 가련한 존재였던 오필리아가 이 영화에서는 살아남은 유일한 존재로써 자기의 이성과 의지대로 미래를 열어가는 모습이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햄릿을 연기하며 감독도 했던, 원작을 그대로 영화화한 1948년작 흑백영화 <햄릿>과, 화려한 궁중의 모습과 복식이 잘 묘사된 2019년의 <오필리아>를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있다. 두 영화 모두 현재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가 되어 있다. <햄릿>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비교사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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