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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Sep 22. 2024

⟪맥베스⟫ 다시 읽기

작가도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시대성을 반영한 작품을 쓸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극장에 올릴 작품을 쓰는 극작가(드라마 작가)라면 더더욱 시대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들이 아테네의 정치적인 변화에 따라 같은 주제를 가지고도 다른 성향의 작품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의 아이콘 셰익스피어 역시 시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시대적 배경과 맥베스가 바탕한 원전


1603년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떴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 제임스 1세가 왕으로 등극했다. 맥베스는 제임스 1세가 왕이 된 이후에 쓰인 작품이다. 제임스 1세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뿐 아니라 아일랜드까지 통치하는 왕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메리 스튜어트가 서로 반목하며 서로 잡아먹으려고 으르렁대던 시대가 지나 이제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제임스 1세 아래 세 나라가 뭉치게 되었다. Great Britain의 토대가 마련되는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맥베스가 집필되었으니 당연히 이 시대성이 담겨있다. 


이 작품을 번역한 이미영 교수(을유문화사 판본)의 해설을 읽어보니 “<맥베스>의 원전으로는 홀린셰드(Holinshed)의 <연대기>가 가장 중요하게 지목된다. 영국과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역사를 담은 <연대기>에는 맥베스 시대를 비롯한 11세기 스코틀랜드의 역사가 담겨있지만 셰익스피어는 이를 의도적으로 변형해서 사용했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맥베스의 주무대는 스코틀랜드이다. 그리고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는 스코틀랜드와 우방으로 등장한다. 제임스 1세의 출신이 스코틀랜드라서 그런지 맥베스의 주무대가 스코틀랜드인 것이다. 비록 셰익스피어는 그를 폭군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맥베스는 실존했던 인물로 비록 왕위를 찬탈했지만 10년간 스코틀랜드를 잘 통치했던 군주였다고 한다.



줄거리


맥베스를 읽을 때면 인간의 내면에서 들끓는 욕망이 얼마나 작은 동기에 의해서 폭발할 수 있는지 놀라움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동시에 그만큼 거대하고 강력한 힘으로 욕망을 응징하는 양심의 정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극에서 욕망을 들쑤시는 매개체로 세 마녀가 등장하지만 기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도사린 욕망을 표상한 것이라 생각된다.


맥베스는 한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던 도중에 세 마녀를 만난다. 세 마녀는 맥베스를 그가 다스리는 글래미스의 영주가 아니라 코도어의 영주라 호칭하며, 나아가 미래에 왕이 될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같이 전승을 세운 뱅코 장군에게는 당신의 자손들이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맥베스와 뱅코는 의심하며 돌아오는데, 맥베스가 돌아오자 마자 왕은 맥베스에게 코도어의 영주까지 하사한다. 이에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이 맞았다고 생각하고 왕이 될 생각까지 하게 된다. 맥베스와 뱅코 두 사람의 마음 속에 악의 씨앗이 심겨진 것이다.


헨리 퓨젤리, <세 마녀를 만난 맥베스와 뱅코> (사진출처 : en.wikipedia.org)


왕 덩컨은 맥베스의 승전을 축하할 겸 조카인 맥베스의 성에 와서 하룻밤을 묵는데, 그 날 밤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은 왕 덩컨을 죽인다. 사태를 짐작한 왕세자인 맬컴은 영국으로, 왕자인 도널베인은 아일랜드로 도망쳐 후사를 도모한다. 


이 악이 펼쳐지는 동안 더 대담한 쪽은 맥베스 부인이었다. 그렇게 왕과 왕비가 된 두 사람의 앞날은 이제 불안과 초조 뿐이다. 왕은 되었으나 자손이 왕이 될 것이란 예언을 들은 뱅코 장군이 혹시 자기를 죽이지 않을지, 점점 의심은 가중되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귀족들의 마음도 돌아선다. 마음 속 어둠은 더욱 짙어가고, 흔들리는 맥베스를 몰아부치던 왕비는 몽유병에 시달리다 남편 보다 먼저 죽는다. 맥베스는잉글랜드로 피신했던 왕세자 맬컴과 그를 돕는 잉글랜드, 그리고 맬컴에게로 전향한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지지를 업고 스코틀랜드로 쳐들어와 결국 맥베스를 죽이고 정당하게 왕위를 잇는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매력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을 때마다 탄복하는 것이 작품 안에 펼쳐지는 대사들에 담긴 인생에 대한 통찰력이다. 줄거리를 알아야 대사가 눈에 더 잘 들어오니 극의 흐름도 알아야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 마디 한 마디의 대사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거듭 읽으면서 나는 불교의 가르침을 읽는 듯했다. 도올 선생도 그러셨는지 1998년 ⟪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라는 책을 쓰셨고, 나도 그 책이 나오자 바로 사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양심의 힘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양심.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면서까지 욕망을 쟁취하지만 그러나 그 이후로 엄습하는 양심의 가책은 삶을 짓누른다. 남을 향하던 욕망의 칼끝이 그 보다 더 큰 양심의 가책이 되어 자기를 향할 때 자멸을 초래한다.


몸과 마음의 안식을 주고 에너지를 충전케 하는 잠. 그 잠을 편안하게 자지 못하고 살았으되 죽은 듯 몽유병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맥베스 부인을 보고 있으면 마음의 병이 어떻게 몸을 앗아가는지, 어쩌면 욕망 보다 더 강력한 것이 양심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어찌 판단할 수 있을까? 마음 속 마녀가 들쑤시는 욕망의 소리가 나를 살리는 소리인지 죽이는 소리인지. 그러니 마음의 속삭임이 나를 살리는 소리라 판단하고 발을 내밀 때는 방법이 정당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비록 밖에서 형벌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욕망만큼 강력한 내면의 양심이 자신을 칠 것이다.


맥베스에 묘사되는 헤카테와 세마녀, 그리고 굳건한 요새를 연상케 하는 성채의 분위기가 그로테스크함을 자아낸다. 르네상스가 아니라 중세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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