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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Oct 19. 2024

⟪율리우스 카이사르⟫

셰익스피어 희곡 읽기

이 작품은 중앙대 신상웅 교수 번역의 동서문화사 출판본으로 읽었다. 



이 작품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책에 묶여 있다. 그런데 목차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보다 뒤에 편성되어 있다. 셰익스피어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보다 먼저 썼고, 역사 순으로 보아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살해 당한 이후에 로마 제국의 정황이 많이 바뀌기 때문에 카이사르를 먼저 읽고 나서 그 다음으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읽는다면 독자가 전체 정황을 이해하기 더 쉬웠을 텐데 왜 순서를 거꾸로 잡아놓았는지 모르겠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BC 44~30, 바티칸 박물관 소장


이 희곡의 제목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지만 정작 작품에서는 브루투스에게 더 방점이 가 있다. 고결한 브루투스가 왜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하는지, 그리고 그를 암살한 이후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더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품 속에도 율리우스 카이사르 부분은 많지도 않고 또 3막 1장에서 브루투스 일파에게 암살 당하면서 작품에서도 사라진다. 암살 당한 이후로는 한 번, 필리피 전투에서 유령의 모습으로 브루투스의 막사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브루투스, 너 마저!


율리우스 카이사르(영어로는 쥴리어스 시저)와 브루투스에 대해서는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고, 또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여 죽으면서 읊조리던 “브루투스,너 마저!”라는 대사도 하도 유명하여 종종 회자될 정도라서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대체로 암살자라고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브루투스는 단순히 악한 놈으로 보아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증오 때문에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로마의 명운을 위해서 존경하던 카이사르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카이사르를 황제로 받들려는 정치적 정황의 변화를 지켜 보던 그는 카이사르가 황제가 된다면 벌어질 수도 있는 독재정치를 미리 염려한 것이다. 정치란 통치자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다. 비록 카이사르가 황제가 되어 독재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를 황제로 추대한 세력들은 황제를 등에 엎고 끊임없이 자기들의 잇권을 노리고 황제에게 압력을 가하여 그들의 욕망을 채우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브루투스가 염려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고, 따라서 그런 정치적 움직임이 포착되자 카이사르의 암살 모의에 가담한 것이다.  




군중 심리의 위험성


이 작품에는 시민들의 군중심리가 얼마나 가볍게 변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후 죽은 카이사르의 시신을 장례하기 전에 원로원 앞에 시신을 모셔 놓고 암살파가 시민들을 행해 암살의 정당성에 대해 연설하는 장면이 있다. 먼저 연설을 한 브루투스는 황제가 되려는 야심가로서의 카이사르의 위험성에 대해 시민들에게 호소하며 그들이 카이사르를 암살한 정당성에 대해 호소했고, 시민들의 동조를 얻어낸다. 그러나 뒤이어 연설한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가 로마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그의 정치 이력을 나열하며 카이사르는 황제의 왕관을 세번이나 거절했다고 강조한다. 그런 그를 과연 황제가 되려했던 야심가라고 할 수 있느냐고 호소하자 순간적으로 시민들의 행동은 돌면하여 암살파들을 향해 폭동을 일으킨다. 정치가들이 어떻게 군중심리를 이용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조지 에드워드 로버트슨, <시저 장례식에서 연살하는 안토니우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거사 이후에 드러나는 대인배와 소인배


암살이 성공한 이후에 암살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의 가담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난다. 대인과 소인이 명확히 갈린다. 브루투스 외에느암살에 가담한 사람들 대부분이 카이사르에 대해 개인적인 증오가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카이사르를 암살한 이후에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는데 급급했다. 극에는 브루투스의 매부 카시우스가 예만 나온다. 많은 뇌물을 받고 벼슬자리를 팔고 있는 카시우스에게 브루투스는 격분한다. 브루투스는 대의를 가지고 카이사르를 제거했지만, 카시우스는 그를 기회로 개인의 욕망 챙기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대인과 소인의 행보는 거사를 치룬 이후에 하는 행동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암살이 진행되었으니 이젠 암살 가담파와 반대파는 일대 격전을 치를 수 밖에 없다. 삼두정치의 일인이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자 두 집정관인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암살파들을 제거해야만 했다. 결국 양쪽은 전쟁을 치를 수 밖에 없었다.  현재 그리스의 북동부 지역에 있는 필리피에서 2차에 걸린 전투를 벌인다. 그런데 작품 속에는 필리피 전투는 한번만 치루는 것으로 극화되어 있다. 결국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파가 전쟁에 지면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필리피




죽음의 방법, 자살


그리스 신화에도 전사들의 자결 이야기들이 제법 나오지만 로마 제국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에서의 자살은 시민 남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고 한다. ⟪일리아스⟫를 보면 트로이와 벌인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승리를 거두고 난 후 죽은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두고 누가 그 무구를 가질 것인지 경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무구를 두고 큰 아이아스와 오뒷세우스가 경쟁하는데, 결국 무구는 오뒷세우스의 차지가 된다. 심한 모욕을 느낀 아이아스는 자결을 결행하는데,  칼을 땅에 꽂꽂하게 세워놓고 그 위로 넘어져 자결한다. 담대한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하지 못할 방법이다. 


이 작품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도 장수들의 자결 모습이 여럿 나온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부하나 하인에게 자기 칼을 건네며 죽여줄 것을 부탁하는데, 부탁을 받은 사람은 칼로 찔러 모시던 분이 명예롭게 죽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반면 모시던 사람을 찌르지 못하고 오히려 그 칼로 자기가 먼저 자결하는 안토니우스의 부하 에로스와 같은 경우도 있다. 안토니우스는 에로스가 죽은 그 칼 위로 넘어지며 그도 결국 중상을 입고 죽게 된다. 이렇게 상대편에 포로로 잡혀 모욕을 당하느니 전사로서 명예롭게 죽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큰 스케일의 정치 및 전쟁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대단히 좋아하지만 역사극은 나에게 큰 재미를 주진 않는다. 대사에서 보여지는 통찰력은 대단하지만 내용이 권력집단의 정치와 전쟁,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권모술수에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 것과는 관련 없는 나는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뿐 그 안에 개입하여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느낌은 받기 어렵다. 또 등장 인물이 너무 많고, 전쟁 장면 없이 정황을 전하는 방식으로 극적인 장면들을 처리하니 너무 밋밋한 느낌이다. 과연 당시의 관객들은 어떤 점에 환호하고 동조했는지 궁금해진다. 


그럼에도 셰익스피어가 역사극을 많이 쓴 것을 보면 그것을 좋아하는 관객이 많았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을 크게 위협하는 것은 내란과 외세의 침략이었을 것이다. 한꺼번에 삶의 터전을 흔드는 이런 위험요소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으니 그 시대상을 담아냈을 역사극에 사람들은 크게 호응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역사극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도 결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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