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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오르프, <카르미나 브라나>

야외 공연장 Blossom에서 감상하는 클래식 공연

by 우 재

미국 안에서도 탑 클라스로 꼽히는 오케스트라 중 하나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이다. 클리블랜드미술관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음악당인 세브란스 홀과 가까이 있다. 클리블랜드가 우리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다보니 우리 부부는 음악회에 가느라고, 또 미술관에 전시 보러 가느라고 클리블랜드에 자주 간다.


마침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가 남편이 좋아하는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브라나>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연주회를 열었다. 어찌 놓칠 수 있으랴. <카르미나 브라나>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여름 야외 음악당인 Blossom에서,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연주홀인 세브란스 홀에서 열렸다. 오늘은 야외에서 열린 연주회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야외 음악당인 Blossom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는 여름이면 야외 음악당인 Blossom에서 콘서트를 한다. Blossom 음악당은 우리집에서 30여분도 안걸리는 거리에 있다. Blossom 음악당이 있는 야외 부지는 굉장히 넓고 잔디가 잘 조성이 되어 있다. 사람들은 연주회 몇 시간 전에 음식과 음료를 싸가지고 와서 넓은 부지의 야외에서 소풍을 즐긴다. 곳곳에 소풍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다. 우리 부부가 갔던 날은 연주회 2시간 전에 친구들과 만나 각자 싸온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으며 소풍을 즐겼다. 곳곳에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느긋이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연주회 시간이 다가오자 소풍을 마무리하고 연주회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20250712_180051.jpg 친구들과 각자 싸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소풍을 즐기는 모습
20250712_182915.jpg 나무 아래 가족 단위로 음악회에 온 사람들이 소풍을 즐기고 있다.
20250712_180108.jpg 곳곳에 놓여 있는 나무 벤치에서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




Blossom 음악당에서 열리는 연주회에 참석하려면 음악당 건물 안에 놓인 좌석을 예약할수도 있고, 각자 의자나 매트를 가지고 와서 음악당 앞 풀밭에 앉아 음악을 감상할 수도 있다. 야외에서 바람과 풀냄새, 곤충들 소리를 들으며 음악을 듣고 싶다면 야외 티켓을 사면된다. 그날도 어떤 사람이 야외 언덕에 매트를 깔고 누워 있는 모습도 보았다.


20250712_182928.jpg Blossom Concert 홀과 앞으로 펼쳐진 넓은 잔디밭




저녁 7시에 시작하는 콘서트는 연주회가 끝나는 저녁 9시쯤이면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다. 미국은 Daylight Saving 제도를 시행하기 때문에 봄 부터 가을까지 실제 시간 보다 1시간 빨리간다. 원래 저녁 8시여야 하는데, 시간은 저녁 9시라는 말이다. 그러니 저녁 9시라도 아직 캄캄하지가 않다. 사람들이 야외에서 음악 듣기 좋은 시간대라는 의미이다.


우리 부부는 실내 공연장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지만 열린 공간이라 습하고 더운 날씨에 땀이 흘렀다. 그럼에도 언덕에서 찬바람이 살짝살짝 등 뒤에서 불어주니 더위를 견딜만 했다. 아직 곤충들 우는 소리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8, 9월에 가면 조금 더 서늘한 바람과 가을 곤충의 우는 소리까지 오케스트라의 협연과 함께 들을 수 있다.




카를 오르프, <카르미나 브라나>의 내용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브라나>는 1937년에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연주와 합창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카를 오르프는 1803년, 독일 바이에른의 베네딕트보이른(Benediktbeuern) 수도원에서 발견된 13세기의 시집인 ≪Carmina Burana≫에서 25곡을 뽑아 이 작품을 작곡했다. 'Carmina Burana'는 라틴어로 "보이른의 노래들" 또는 "보이른 수도원의 노래들" 이라는 뜻으로, 여기서 'Carmina'는 라틴어로 '노래들'을 의미하고, 'Burana'는 독일 바이에른 지방에 있는 보이른(Beuern)이라는 지명을 라틴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전체 25곡의 짧은 곡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이 작품은 서곡과 서곡이 반복되는 결말부, 그리고 본 내용 23곡이 세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서곡과 결말곡은 〈O Fortuna〉이고, 3가지 주제는, 1. 봄의 도래(Primo vere / Uf dem anger), 2. 선술집에서의 삶(In taberna), 3.사랑의 노래(Cours d'amours)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서곡과 끝곡인 〈O Fortuna〉가 특히 유명하다. 〈O Fortuna〉는 운명의 여신이 인간의 삶을 좌우하며 인간을 한순간에 올렸다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는 등 운명의 냉혹함을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맹렬하게 몰아치는 연주와 합창을 듣고 있다보면 운명의 불가항력적인 힘과 동시에 인간의 나약함을 대비시키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이 부분을 들을 때면 운명의 여신의 파괴력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 보다는 우주의 폭발하는 에너지와 웅장함이 느껴져 가슴이 고동친다. 작곡가가 무엇을 의도했던 나는 내식으로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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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을 살펴보면 제1부 봄의 도래 (Primo vere / Uf dem anger)에서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자연의 생동감과 기쁨에 대한 찬미, 농부와 젊은이들이 들판에서 사랑을 꿈꾸는 장면, 생명의 재생, 자연과의 일체감, 에로스의 작동에 대해 노래한다. 2부 선술집에서의 삶 (In taberna)에서는 선술집, 술, 도박, 방탕한 삶을 유쾌하고 익살스럽게 묘사하고, "나는 술을 좋아한다!", "나는 도박을 즐긴다!" 등 인간의 본능과 쾌락을 다루는데, 남성 합창과 바리톤 솔로가 이 파트를 주도하며 종종 풍자와 자조적인 유머가 섞이기도 한다. 제3부 사랑의 노래 (Cours d'amours)에서는 젊은이들의 연애, 사랑의 유혹, 욕망을 찬미하며 연인들의 마음, 설렘, 유혹, 그리고 육체적 사랑까지 점차 격정적으로 묘사하는데, 메조소프라노의 독창으로 사랑의 절정을 묘사하는 곡인 23번째 곡 〈Dulcissime〉는 극도로 높은 음역에서 부드럽고 강렬하게 사랑을 노래한다. 나도 메조 소프라노가 굉장히 높은 음역대에서 음을 폭발시키는 이 곡이 굉장히 좋았다. 3부로 이루어진 본 내용이 끝나면 결말부에서는 다시 서곡의 <O Fortuna>가 반복되면서 인간이 아무리 사랑하고 즐겨도 결국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 놓여 있다는 운명론적 메시지로 마무리 된다.


위에서 설명했듯 카를 오르프가 이 작품을 작곡할 때 원본으로 삼았다는 ≪Carmina Burana≫는 수도원에서 발견된 시집이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내용은 운명론적 세계관과 농부들과 젊은이들의 일상적 삶, 때로는 에로스적 사랑을 다루고 있다. 이런 책이 어덯게 수도원에 소장되어 있었는지 궁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중세의 수도원은 단순히 종교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교회는 지식을 보존하고 보관하는 지식 저장소의 역할도 했었다. 따라서 종교서 외에도 작가가 누구인지 불분명한 시집도 보관되었던 것이다.


이 책이 작성된 시기에 대해서는 11세기 말~13세기 초로 추정하는데, 이 책의 작가가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당시의 방랑시인인 골리아르드의 작품이 아닐까 추정한다. 그때는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 동방의 지식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하며 르네상스의 맹아가 싹틀 준비를 하던 시기이다. 점차 중세의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에서 벗어나며 개인과 사랑에 대한 가치 발견과 함께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가 부흥할 준비를 하고 있던 시절이다. 그렇기에 ≪Carmina Burana≫에서도 기독교적 세계관이 아닌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나올 법한 운명론적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성직자들의 타락도 심각헸던 시기이고 보니 성직자들에 대한 조롱도 자연스레 작품 속에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당시 젊은 지식인들이 "종교적 엄숙주의와 현실의 불일치"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참고로 《Carmina Burana》 전체 25곡의 리스트를 소개한다.


서곡 & 결말 (Fortuna)

1. O Fortuna – 운명의 여신이여 (서곡)

2. Fortune plango vulnera – 운명의 상처를 나는 탄식하노라


제1부: 봄의 도래 (Primo vere & Uf dem anger)

3. Veris leta facies – 봄의 환한 얼굴

4. Omnia sol temperat – 만물은 태양에 의해 조절된다

5. Ecce gratum – 오, 기쁨이여 도래하였도다

6. Tanz (Dance) – 독일어 민속 춤곡

7. Floret silva nobilis – 숲은 꽃피고, 귀족처럼 우아하다

8. Chramer, gip die varwe mir – 장사꾼이여, 내게 화장품을 주오

9. Reie (Swaz hie gat umbe) – 누가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가?

10. Were diu werlt alle min – 세상이 다 내 것이라면


제2부: 선술집에서(In Taberna)

11. Estuans interius –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분노

12. Olim lacus colueram – 옛날엔 내가 호수에 살았지 (백조의 노래)

13. Ego sum abbas – 나는 주점의 주교요

14. In taberna quando sumus – 우리가 선술집에 있을 때


제3부: 사랑의 노래(Cours d'amours & Blanziflor et Helena)

15. Amor volat undique – 사랑은 사방에서 날아다닌다

16. Dies, nox et omnia – 낮과 밤, 모든 시간

17. Stetit puella – 소녀가 서 있었네

18. Circa mea pectora – 내 가슴 주위에

19. Si puer cum puellula – 만일 소년이 소녀와 함께 있다면

20. Veni, veni, venias – 와요, 어서 와요!

21. In trutina – 망설이며 나는 서 있네

22. Tempus est iocundum – 즐거운 때가 왔어요

23. Dulcissime – 가장 달콤한 이여


결말: 운명 재등장 (Fortuna Redux)

24. Ave formosissima – 가장 아름다운 이여, 아베!

25. O Fortuna (Reprise) – 운명의 여신이여 (앞의 첫 곡의 반복으로, 시작과 끝을 연결하며 운명의 순환을 강조)


이상 전체 25곡의 노래 리스트를 소개했다. 각 곡들이 독립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운명, 자연, 술, 사랑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과 삶의 순환을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명성답게 오케스트라 연주도, 합창단의 합창과 솔로 성악가들의 기량도 굉장했다. 첫 부분에서 폭발했던 맹렬함이 마지막 부분에서 반복되며 곡이 끝났다. 이미 감정은 최고조의 흥분상태에 이르러 있으니 야외 음악당을 한참 걸어 나오는 동안에도 친구들과 감상을 나누느라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려니 음악 때문에 고조된 감정이 저녁 어스름으로 조금씩 가라앉으며 마음이 상쾌해졌다.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느진 연주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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