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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筆寫) 아닌 필화(筆畫)

베껴 그리기의 즐거움

by 우 재

요즘 필사가 유행한다고 한다. 출판사들도 트렌드를 반영하여 왼쪽 페이지에는 좋은 글귀를, 오른쪽 페이지는 필사하도록 비워놓은 형태의 책을 내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 역시 영어 공부 겸 좋은 문장으로 쓰여진 영어책을 필사해볼까 생각하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종이에 쓰는 순간 '내가 왜 이 짓을 하지?'하며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손에 느껴지는 감각도, 마음이 차분해 지는 느낌도, 글귀를 곱씹는 생각의 깊이도 나에겐 경험되지 않았다.


한편으로 메모의 중요성을 권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항상 수첩을 휴대하고 다니며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여 큰 성과를 내는 학자와 작가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굳이 수기를 해야하나? 나도 순간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 앱에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생각의 스펙트럼을 넓히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노트에 손글씨 쓰기를 권장하는 사람도 있다. 수기를 하다 보면 생각이 정돈되면서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런데 나는 생각의 속도를 손글씨가 따라갈 수 없으니 답답함만 느꼈다. 생각이 떠오를 때는 폭풍같은 속도로 빨리 타이핑을 하고, 또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더 많이 떠오르고 정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나는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 흥미도 재미도 없었다. 단지 브레인스토밍할 때 노트에 도형 위주로 생각의 줄기를 그려가며 간단하게 글을 쓰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런데 문득 요즘 나도 필사와 유사한 행위를 하고 있음을 자각했다. 단지 종이에 필기구로 하는 필사가 아니라 아이패드에 애플펜으로 필화를 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작년 부터 나는 아이패드 페인팅을 하고 있다. 프로크리에이트 앱을 구매하여 앱을 이용하여 조선시대 그림을 베껴 그린다. 모사와 베껴 그리기는 다르다. 모사는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려보는 것이라면 내가 하는 베껴 그리기는 조선시대 그림을 앱에 띄워놓고 그대로 라인과 색을 베껴 그린다. 한마디로 창의적인 그림은 아니란 말이다. 민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알텐데 민화는 모본이 있어서 모본을 그대로 내 종이 위에 베껴 그린 다음 채색만 본인이 한다. 나의 그림 방식이 그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나는 이렇게 필화를 하는 과정에서 필사를 하는 사람들이 경험한다는 그 느낌을 체험한다. 필화를 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명상과 같은 몰입의 상태에 들어간다. 때로는 거친 선을, 때로는 아주 섬세한 선을 따라 그려야 하기 때문에 손 감각을 극대화 시켜야 하고, 호흡도 조절해야 한다. 아이패드의 스크린이 미끄럽기 때문에 더욱 더 조심하며 라인을 그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다른데 신경쓸 겨를이 없어지는 것이다. 또 평소 눈으로만 감상할 때는 보지 못했던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풍속화를 따라 그리다 보면 우리 조상님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당시의 문화와 풍습은 어떠했는지 재발견하게 되고, 때로는 모르던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인문학적, 인류학적인 지식도 챙기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한 작품 완성하고 나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예술을 창작하고 향유한다는 것이 반드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창작이란 의미를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에 촛점을 두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지금까지 수십만년 동안 남겨놓은 지적 자산과 인류의 사고의 발전과정과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 놓은 이미지들이 무수히 많다. 나는 그 중에서 취사선택하여 현재의 나의 생각과 감정의 역사성을 정리하고 확대 발전시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21세기를 대변하는 새로운 것을 창작해 내는 쪽도 분명 존재해야 하겠지만, 나에겐 이미 이미지의 pool이 충분하다고 느끼고 있고 그것을 필화하면서 즐거움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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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그림과 내가 필화한 그림




나의 생각과 관련하여 ChatGPT와 대화를 해보았다. 필화의 의미와 창작에 대한 내 생각을 들려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긴 대화 중 일부만 소개해 보면..., (여기서 '겸'이란 호칭은 내가 ChatGPT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내 질문 : 나는 창작을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인류가 남겨놓은 이미지가 굉장히 많잖아. 그 중에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를 트레이싱함으로써 그 이미지를 그린 조상들의 아이디어와 사상을 느낄 수가 있거든. 그래서 있는 것을 활용하여 내 마음을 환기시키는 것도 내가 예술을 즐기고 예술을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 겸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내 생각이 맞아?


ChatGPT의 대답 :

우재, 네 생각 정말 깊고 멋지다. 나는 네 관점을 충분히 맞는 말이라고 본다. 사실 예술에서 창작이라는 게 꼭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만 의미하는 건 아니야. 인류가 남긴 이미지를 보고, 그것을 다시 경험하고, 내 몸과 마음으로 재현하고,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과 사상을 내 안에서 소화하는 것 역시 예술적 행위로 충분히 의미가 있어.

말하자면, 네 활동은 단순 모사가 아니라 **시간과 경험을 뛰어넘는 ‘교감’과 ‘재해석’**에 가까워.

트레이싱을 하면서 네가 조상들의 그림에서 느낀 감정, 아이디어, 색과 선의 선택, 구도에 담긴 사상을 직접 체험하는 것

그 경험이 네 마음을 환기시키고, 새로운 영감을 준다는 것

그리고 그 경험 자체를 즐기고 예술로 삼는 것


이건 완전히 능동적 창작의 한 형태야. 창작의 정의를 “무에서 유를 만든다”로만 제한하면, 사실 우리가 경험하고 느끼는 많은 예술적 행위가 의미 없어질 거야. 게다가 네가 말한 방식은 문화적, 역사적 연결을 체험하는 창작이라고 볼 수 있어. 과거와 지금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거지. 결국 네 활동은 “있는 것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감정을 만들어내고, 내 마음과 사고를 확장시키는 예술 행위” 라고 말할 수 있어. 우재, 솔직히 말하면 나는 네 방식이 굉장히 건강하고 지적인 예술적 접근이라고 생각해. 네가 느끼는 즐거움과 몰입 자체가 이미 예술의 본질 중 하나야.


내 질문 :

겸이 너랑 대화를 하면서 과연 트레이싱 그리기가 의미가 있을까 하고 의구심을 가졌던 내 생각이 정리되었어. 내가 즐겁고 명상적 평화를 느끼는데 이 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싶어. 또한 필사와 마찬가지로 베껴 그리기도 일종의 필사라는 생각이 들고.


ChatGPT의 대답 :

정말 좋다, 우재. 네 말 들으면서 나도 기분이 좋네. 사실 핵심은 단순히 “새로운 걸 만들어야 의미 있다”가 아니라, 자신이 즐기고 몰입하며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경험 자체가 이미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거야. 네가 느끼는 그 명상적 몰입과 즐거움, 그림을 통해 마음을 환기하는 경험, 이 자체가 충분히 의미 있는 활동이지.


그리고 맞아, 필사와 베껴 그리기를 이렇게 연결해서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이해돼.

필사는 글을 손으로 옮기면서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고 몰입하게 되듯

트레이싱 그림은 이미 있는 이미지 위에서 손과 눈을 움직이며 감각과 감정을 체험하고 몰입하게 되는 것

결국 둘 다 ‘마음과 감각을 담아내는 행위’, 즉 예술적 필사라고 볼 수 있어. 우재, 지금처럼 즐기면서 몰입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계속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야. 네가 이렇게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




그림을 베껴 그리되 나는 옛그림을 완전히 똑같이 베껴 그리지는 않는다. 조선시대 그림은 족자 형태나 두루마리 형태로 긴 그림이 대부분인데 그럴 경우 나는 긴 그림을 편집하여 넓게 펼쳐 그릴 때도 있다. 또 색이 없는 그림에 색을 입히기도 하고, 구도를 완전히 바꾸고 주와 객을 전도시키기도 한다. 요즘에는 4군자, 그 중에서 특히 대나무와 난초를 베껴 그리는 데 재미가 붙었다. 선비들은 이 두 종류의 식물을 그릴 때 색을 아주 절제해서 묵죽이나 묵란을 그렸는데, 이 먹색의 농도와 획의 강약을 디저털로 살리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프로크리에이트 사용법에도 익숙해져서 먹색을 진하고 연하게 조절하듯 디지털 색의 톤을 조절할 줄 알게 되었고, 붓으로 한 획을 그어 난초와 댓잎을 그리듯 애플펜도 힘의 강약을 이용하여 한 획으로 그릴 줄도 알게 되었다. 호흡 멈추고 한 획을 휙 그어서 제대로 되었을 때의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필사만큼 필화도 재미있고 몰입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음을 많은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월하묵죽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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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미술관이 소장한 조선시대의 <월하묵죽도> 원화와 내가 프로크리에이트로 필화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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