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학부모가 되었다. 유치원을 다니건 초등학교를 다니건, 어쨌든 아이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나름의 사회생활인건 매 한 가지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조금 늦잠 자면 어때, 엄마가 데려다주면 되지
컨디션이 안 좋으면 집에서 쉬어,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돼
여행 가느라 빠지는 거 미리 말씀만 드려놓으면 되지
날씨가 좋으면 점심시간에라도 원에서 데리고 나와 나들이를 갈 수도 있고, 걱정되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선생님께 주저 없이 연락드릴 수 있지>
현진이가 다니던 유치원은 소규모의 놀이학교여서 더욱더 자유롭고 제약이 없었던 반면, 학교는 당연한 듯 해왔던 위의 모든 것들과 세세한 더 많은 것들이 불가능하기도 또는 일정의 증명 서류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학부모란 원래 이런 것이었던가. 이렇게 조심스럽고 신경 쓸 일이 많았던가. 즉흥성 따위는 없는 파워 J의 성향만이 살아남을 듯한 규칙적이고도 촘촘한 하루가 진정 초등 1학년 학부모의 생활이었단 말인가.
그래서 현진이가 학교에 입학한 지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늘 긴장하고 있다. 늦잠을 잘까봐 긴장, 현진이가 준비물을 안 챙겨갔을까봐 긴장, 교실은 잘 찾아다니려나 걱정하느라 긴장, 빠르게 다가오는 하교시간 때문에 긴장.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느긋한 여덟 살 딸을 바라보던 젊었던 엄마의 마음도 지금의 나와 같았을까.
또 한 가지 다른 것은 학습에 대한 마음이다. 워낙에 학습속도가 빠른 편이고, 학원 없이도 스스로 잘하는 편인 모범생 스타일의 아이라 그간 학업에 대한 큰 걱정이나 압박감 없이 지내왔다. 그런데 유치원 졸업을 앞둔 즈음부터 슬금슬금 영어학원이며 수학학원을 등록하는 친구들이 많아졌고, 입학을 앞두고는 학원 스케줄을 짰느냐는 질문을 꽤나 여러 번 받기 시작했다. 입학 후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엄마들 틈에 서있으면 시계는 보는지, 한글은 잘 쓰는지, 영어학원은 어딜 다니는지(학원 다녀요? 가 아니라 어디 다녀요? 인걸 보면 영어학원은 필수처럼 여겨지는 듯도 하다) 등 학습적인 부분에 대한 질문을 수시로 받으며, 이제 막 출발하긴 했지만 어찌 됐건 현진이도 수능열차에 탑승을 하긴 했구나 실감했다.
현진이는 예체능 외에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있고, 집에서 나와 매일 일정시간(평균적으로 30분 전후) 문제집을 풀거나 책을 읽는 것으로 모든 학습을 대신하고 있다. 열심히 공부를 하거나 타고나길 영재로 태어난 아이들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하지만, 현진이는 스트레스받지 않고 본인만의 속도로 꾸준히 학습하는 중이다. 나는 현진이와 내가 함께 선택한 지금의 방식에 조금의 후회도 없다. 심지어 집에서 나와만 해온 현진이의 학습속도는 장담컨대 평균치보다는 확실히 빠르다.
그래서 생각했다. 학원이 없이도, 똑똑하지 않은 엄마와의 가정학습만으로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로. 나와 같은 길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증명해 보기로. 물론 학원의 장점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학원이 필수처럼 여겨지는 요즘의 흐름에, 나는 돌연변이같은 존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현진이 또한 몇몇 학원에 테스트를 받으러 가보고는 학습적인 학원 일체를 거부했다. 학원의 장점 또한 물론 많지만 현진이와 나에게는 맞지 않았고, 그러니 우리는 우리 둘만의 고립된 학습 방식을 선택했다. 이런 방식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다. 그래서 현진이가 나와하는 진짜 공부, 놀이를 빙자한 공부, 공부이지만 놀이인 그 모든 것들을 차근차근 기록해 볼 참이다.
현진이는 유명해는 게 꿈이다. 어떤 날은 정재승박사 같은 뇌과학자가 되어 티브이에 나와 강연을 하고 싶고, 어떤 날은 BTS 같은 아이돌이 되어 전 세계인들이 보는 공연을 하고 싶고, 어떤 날은 아나운서가 되어 매일매일 티브이에 나와 뉴스를 전하고 싶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유명해지려면 그 분야의 최고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지금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는 중이다. 현진이가 정말로 유명한 사람이 되면, 현진이의 학창 시절에 엄마와 함께 했던 무수한 학습의 기록 또한 빛을 발할 거라는 허황되기까지 한 그 꿈을 나도 같이 꿔보려고 한다.
열차는 이미 출발했다.
하루하루 열심히 함께 하다보면 열차는 언제나처럼 달릴테고, 그 곳이 어디든 종착지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