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협업할 작업자를 찾는 법
좋은 작업을 만나면 크레딧을 눈여겨본다. 그래서 책에서 가장 먼저 찾아보는 지면은 판권면이다. 몰랐던 이름을 발견하면 인스타그램이나 웹페이지를 찾아 저장해 두고 팔로우업 한다. 언젠가 함께 작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협업의 산물이다. 디자이너의 업무 범위는 좁게는 주어진 자료를 잘 가공해 결과물을 뽑아내는 걸로 끝나지만, 디자인에 쓰이는 수많은 재료(그림, 사진, 레터링, 심지어는 그 내용까지)를 개발하고 디렉팅 하는 일까지... 뻗어나가려면 한없이 뻗어나갈 수 있는 게 디자이너의 일이다.
그래서 내 SNS 피드는 잠재적 동료의 리스트이기도 하다. 언제 다른 디자이너가, 일러스트레이터가, 사진가가, 카피라이터가, 기획자가, 편집자가, 레터링 작업자가, 스타일리스트가, 번역가, 프로그래머가 필요할지 모르는 일이니까. 앞서 나열한 건 지금까지 내가 직접 협업자로 섭외했던 작업자들의 리스트고 이는 앞으로 맡을 프로젝트에 따라 계속 늘어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는 협업자들을 섭외할 때 좋은 작업 말고도 염두에 두는 것이 더 생겼다. 반드시 페미니스트일 것, 그리고 그동안 기회를 덜 얻어온 사람을 더 우선할 것. 왜냐면 모든 창작자들에게 기회는 중요하니까. 그리고 그에게 기회가 없었던 건 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였을 수도 있으니까.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무려 100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이야기다. 1921년 화가 나혜석은 ‘회화와 조선여자'라는 글을 통해 ‘시 짓는 부인이나 글씨 쓰는 여자는 더러 있어도 채색 붓을 들어 화폭을 향하는 부인은 한 사람도 없었는’지 물으며 기회만 주면 재능을 깨우칠 여성들이 많이 있음을 지적했다. (나혜석, ‘회화와 조선여자’, 동아일보 1921년 2월 26일) 50년 후 미국에서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라는 글을 통해 예술 교육에서 여성이 배제되는 과정을 분석하여 애초에 ‘위대한 예술가'의 길목에서 차단되어 왔음을 밝힌다. ‘선택을 할 기회’를 박탈하며 시작되는 배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라 더 해롭다.
나는 해외에서 교육받고 초기 커리어를 쌓았다. 업계에 아는 사람이 없는 채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고 다양한 창작자의 정보를 수집하던 시기, 나는 한국에는 어떤 그룹들이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늘 비슷한 무리의 이름들이 뭉쳐 보였다. 관찰의 결과 무리의 공통점은 학연인 것 같았다. 언젠가 디자이너 한 분이 나에게 ‘인아 씨는 신비로운 사람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한국에 학연으로 이어진 인연이 없으므로 수소문해서 물어봐도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무리에 속해있는지 파악할 수 없어 한 말은 아닌가 싶었다. 이는 디자인으로 ‘유명'한 학교에 가는 것부터가 디자이너로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중요한 문턱임을 의미한다. 그런 학교는 손에 꼽기 때문에 수많은 디자이너 중, ‘진짜 디자이너'로 인식되고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극소수로 한정된다.
물론 꼭 학연만이 절대적 요소는 아니다. 어떤 채널로든지 간에 자신을 잘 알리면 기회는 찾아온다. 다만 거기에 성별이나 학연, 지역 등이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아무튼 그렇게 기회가 내게도 돌아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게 된다. 이 기회의 메커니즘이 내 순서부터는 조금 어긋나게 작동될 방법은 없는지 말이다.
2019년엔 보그에서 여성 디자이너 특집으로 내게 지면을 한쪽 내어 주었다. 네 명의 여성 디자이너와 함께였다.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이라니. 늘 그렇게 소수의 이름들에게 주어지는 지면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가 이 지면을 다른 디자이너들과 나눠보기로 했다. 그 시점에서 작업시간은 이틀이 남은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디자이너에 주변 디자이너들에게 물어 모은 이름들까지 최대한 많은 이름과 그들의 SNS 채널을 모았다. 최종적으로 204명의 이름이 모였다. 그리고 지면을 전화번호부처럼 꾸려 모두의 이름과 SNS 아이디를 리스트업 했다. 늘 디자이너를 찾지만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내가 그리 하듯) 스스로 다양한 디자이너를 팔로우하고 디자이너가 필요할 때 그동안 지켜본 그들의 관심사와 흥미에 맞춰 기회가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본 지면은 여성의 날을 기념해 PDF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배포했다. 시간이 지난 현재는 많은 부분 에러가 뜰 것…)
기존의 구조를 어긋 내는 일을 굳이 한다는 건 연결된 모두를 성가시게 하는 일이다. 당연하지만 협업자를 아는 누군가로부터 추천받거나, 유명한 사람을 컨택하거나, 이미 잘 아는 사람과 함께하는 편이 수월하다. 창작자를 찾고 팔로우하고 그들을 계속 지켜보며 어떤 사람들인지 파악하고 마침내 협업자를 구해야 할 때 지금까지 쌓아둔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적합한 사람들을 추리고, 그들에게 연락을 하고 협업이 낯설 경우 실험과 시도의 기간을 확보하고 작업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는 에너지가 든다. 여기에는 물론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것도 포함된다. 때로는 그들이 신경 써야 할 일이 더 많아지기에 작업적으로 납득 가능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 일은 나 혼자 어쩐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미 기존의 구조가 여성과 소수자의 기회를 박탈하고, 방식으로 지워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가만히 앉아 관습을 따르는 건 공모다. 나는 협업을 제안하고 제안받는 과정이 그 자체로 기회를 나누는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그래서 적합한 협업자를 선정하여 함께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작업을 하여 결과물을 내는 것이 작업적 측면에서도, 정치적 측면에서도 디자이너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들과 함께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를 만들 당시 FDSC의 운영원칙에도 이런 항목을 넣기도 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은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정리되어 있다.
말을 실행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많은 한계에 부딪힌다. 일례로 공개적으로 구인 글을 올리면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들은 그 자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에 구인 글에 응답을 하는 사람들이 꼭 적합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배제되어 온 이가 응답을 하게 하려면 공개된 만큼 또 안전한 공간이 우선 필요한 것이다. 아직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과 일을 한다는 건 그만큼 시도와 실패가 용인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경우 창작자들에겐 매우 짧은 시간과 매우 적은 보상이 배정되곤 한다. 앞서 이 작은 행동이 정치적이라고 설명한 이유다.
일전에 여성 민우회에서의 강연에서 ‘나는 내 뜻을 이해해주는 여성들이 먹여 살려주고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글의 대부분은 내가 나누는 기회와 노력들로 이뤄져 있지만 나 역시 나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 덕분에 무사히 돈을 벌고 기회를 얻어왔다. 한 번의 기회와 믿음이 다음번의 기회를, 기회의 문제 자체를 구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만들어 나갈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므로 또 그렇게 기회가 올 때마다 조금 더 힘내서 성가시게 일을 해나간다. 그럴수록 이 성가신 일에 대한 믿음은 더욱 단단해진다. 이 일의 방식이 옳다.
p.s.- 혹시라도 이 글의 제목이 많은 디자이너와 창작자들에게 밤 11시에 날아오는 작업제안 dm의 괴로운 기억을 상기시키진 않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