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활 21
매주말 펼쳐지는 학원의 아침 풍경. 사람들이 우르르 복도에 몰려있다. 복도 벽에는 지난주에 본 모의고사 성적과 등수표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나도 학원에 도착하면 강의실 자리에 가방을 두고, 복도 벽에 붙어있는 등수부터 본다. 그리고 응시자 수와 점수 분포표를 보며 내 상대적 위치를 확인한다.
GS2기까지는 선생님들이 상위 몇%에 들어야 합격권인지 설명해주신다. 아직 시험까지는 충분히 역전이 가능하다는 점과 본인의 상대적 위치와 강약점을 파악하는 용도로만 활용하라는 말과 함께.
시험을 한두 달 앞둔 GS3기에는 수험생들의 멘털이 많이 흔들린다. 강의실을 둘러보면 자리를 채우고 있는 사람이 적어졌다는 것이 느껴지고, 모의고사 응시자 수 역시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들은 모의고사에 꾸준히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합격 확률이 높아진 것이라며, 모의고사 성적이나 등수에 일희일비하지 말 것을 당부하신다.
나 역시 GS3기가 시작되면서 '실전 시험 전날에도 이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수식어구나 조사까지 그대로 외워뒀던 판례가 점점 희미해지고, 학설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서 '~한다는 견해' 이런 식으로 풀어서 쓰게 된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빠져나가는 물보다 더 많은 물이 독 안에 채워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독이 다시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괜찮다. 내 독만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 시험은 '상대평가'이다. 나는 이 사실을 매주 등수 표를 보며 확인한다.
2기까지 나의 모의고사 성적은 작년과 비슷하거나 혹은 특정 과목은 오히려 작년보다도 떨어졌다. 모의고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선생님과 전화상담을 할 때 내 등수에 대해서 고민을 토로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선생님, 저 작년보다 사안 포섭이 많이 나아진 것 같은데, 왜 등수가 자꾸 떨어질까요? 노무사 수험생들이 상향 평준화되어서 그런 걸까요? 아님 제가 모르는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햇님님, 본인이 생각하는 게 맞아요. 제가 보기에도 작년보다 사안의 포섭도, 논점의 정리도 훨씬 좋아졌어요. 이대로 하시면 되니까 등수에 신경 쓰지 마세요."
선생님의 조언은 효과적이었다. 지금까지의 공부방법이 잘못된 건 아닌지 불안해하고 있을 때 그 방법이 맞다고,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성적과 상관없이 하던 대로 쭈욱 밀고 나갈 수 있었다.
2기 후반부부터 등수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3기에는 지난 수험생활 동안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1등도 무려 두 과목에서 두어 번 해봤다(자랑할 사람이 남편밖에 없어서 여기에 잠깐 자랑 좀 하겠습니다. 다른 가족들은 기대할까 봐 자랑도 못하거든요.). 아주 답안을 잘 썼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정작 1등과는 거리가 먼 등수를 받았었지만, 내용을 부실하게 쓰거나 세부 논점을 빼먹어서 아쉽다고 느꼈을 때에 1등을 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이 시험은 '상대평가'이니까. 내가 자신 있게 쓰면 남들도 자신 있게 쓰고, 내가 버벅거리며 간신히 답을 써 내려가면 남들도 진땀을 흘리며 답안지를 채운다.
여전히 한 번씩 내 등수는 곤두박질을 친다. 매번 모의고사를 안정적으로 잘 보면 정말 좋겠지만, 어떤 날은 논점 일탈을 하기도 하고 중요한 논점을 빠뜨리기도 한다. 실전에서도 그럴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든다. 이미 작년에 논점을 따로 찾을 필요 없는, 논점을 문제에서 제시해주는 단문형 문제에서 논점 일탈을 해봐서 더욱 무섭다.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또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주 등수를 보고 한껏 쭈그러들어서 답안지를 작성하면서 말미에 “이번 사례형 문제 너무 어렵네요.”라고 썼는데, 선생님이 내게 다가왔다.
“논점 잘 맞췄는데 왜 어렵다고 썼어요?”
돌아오는 주말에 맞닥뜨리게 될 내 등수가 궁금하다.
나에게 모의고사 성적은 채찍이요, 당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