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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슬 Oct 03. 2024

빙그레공장에서 메로나를 만져봤습니다.

6. 만들었다 하기엔 조금 그래서

잘 다니던 한의원이 폐업을 했다.

원장은 서울에 가서 다시 개원을 한다고 했다.

사람 심보 착하게 써야 한다고 하지만 망하길 바라고 있다.

직원들에게 그렇게 나쁘게 행동한 년은 내가 굳이 저주를 내리지 않아도 잘 되진 않겠지만.







올초

이 정도로 열심히 했으면 하버드 갔겠다 싶을 정도로 해외구매대행에 목숨을 걸었다.

그동안 일하면서 해외구매대행일도 간간히 해왔었는데, 이제 백수이기도 하니 이참에 잘되면 병원일 때려치우고 사업가로 커가리라 생각했다.

몇만 원이었던 매출이 두 달 만에 천만 원대로 훌쩍 뛰었는데

참나. 기쁘지가 않았다.

내 삶이 전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귀신머리를 하고는 컴퓨터 앞에 하루종일 앉아 있어야만 했다.

무재고로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에 주문이 들어오면 재빨리 거래처에 주문을 넣어야 안심이 되었다.

그사이 품절이라도 될까봐 노심초사했다.

사업이 이런 걸까? 컴퓨터 앞에서 밥을 먹고 하루종일 주문창을 들여다보았다.

어느 정도 매출이 나왔고 순수익도 월급보다 훨씬 많이 남겼지만 그만두고 싶었다.



그렇게 몇 주를 쉬다 보니 온몸이 근질거려 쿠팡알바도 몇 번 갔다.

역시 몸을 쓰는 일을 하니 잡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는 게 참 좋았다.

하지만 쿠팡계약직으로 일하지 않는 이상 알바신청은  매번 쿠펀치 어플로 해야 했고, 그마저도 100%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신청을 해도 내일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전날 문자가 와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한여름에 에어컨 없는 곳에서 하려니 힘들기도 했다.


그러던 찰나에 같은 한의원에서 일했던 쌤이 빙그레공장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권유를 해왔다.

"구슬쌤~ 저랑 같이 빙그레공장에서 일해볼래요?"

"네?? 거기서 뭐 하는데요? ㅎㅎ"


"제가 아는 지인이 있는데 바나나우유공장에 있거든요. 바나나우유 그 단지컵 있죠.

그 케이스를 기계 위에다 올려놓는 거예요. 엄청 쉽다고 하는데요?"


"어머~ 진짜 쉬워 보이는데 월급도 괜찮은 편이네요! 우리 해볼까요? ㅎㅎ"


그렇게 이력서를 써서 빙그레 공장에 갔다.

면접을 보시던 분은 우리가 병원에서만 일했던 사람들인데 몸 쓰는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우리는 어렵지 않다고 당당히 말했다.

(마음고생이 더 힘들죠. 호호)

대신 우리는 야간작업은 할 수 없다고 했더니 주간작업만 할 수 있는 메로나공장에서 일해야 한다고 했다.

와! 메로나! 뭔가 설렜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당장 일을 할 수 있었다.

입사동기? 는 총 8명이었다.

다들 어려 보였고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아 보였다.

그중에는 제약회사에서 일하다가 스트레스로 퇴사 후 지원한 사람도 있었다.

남일 같지 않았다.


첫날에는 하루종일 교육장에서 교육을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붕어싸만코도 빙그레꺼였잖아! 교육을 받을 땐 약간 지루했지만 재미있었다.

이것도 월급에 쳐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다음날은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8명이 봉고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ㅎㅎ

이때는 빙그레 유니폼을 입었었는데 바지는 흰색, 티는 회색으로 모두 동일했다.

8명은 같은 옷을 입고 조그마한 봉고차에 올라탔다.


"쌤~ 우리 꼭 죄수복 입고 감옥탈출 한 사람 같지 않아요?"

내가 소곤소곤 옆에 쌤에게 말하니,


"쌤... 저는 우리 꼭 정신병원 탈출한 사람 같은데요. 호호"

누가 들을세라 우리는 모기만 한 목소리를 하며 낄낄거렸다.

처음 하는 새로운 경험에 두려우면서도 재미를 느꼈다.

간단한 검사를 하는데도 8명이 함께 움직여야 하니 시간이 꽤 지체되었고 하루가 또 마감됐다.






다음날은  본격적으로 생산 공장 안에 들어갔다.

바나나우유 만드는 공장을 힐끔거리며 우리가 일해야 하는 메로나 공장으로 들어갔다.

식품이기 때문에 위생모와 마스크, 위생복을 아주 철저히 갖춰 입었는데, 이렇게 입은 내 모습을 거울로 보니 많이 우스꽝스러웠다.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착용하고 있는 거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메로나가 틀에서 툭! 하고 수백 개가 떨어지면 포장용지 안에 들어가는 라인을 거쳐야만 하는데 메로나가 잘못 떨어지면 포장지 안에 못 들어가고 불량이 나는 시스템 이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처음 한 일은 메로나가 틀에서 떨어져서 라인을 타고 예쁘게 누워오는가! 를 2시간 동안 째려보는 일. 그리고 메로나가 혹여나 누워서 오지 않고 서서 오게 되면 재빨리 나의 순발력으로 아이스크림을 다시 눕히거나 손으로 잡아야 하는 것!


2시간을 서서 초록색 메로나를 수백 개 수천 개를 봐야 하니 나중에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종종 메로나녀석이 서서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나는 그걸 잡지 못했고 다행히 내 뒤 있는 선배가 잘 캐치해서 잡을 수 있었다.

불량이 나면 기계에서 위용위용 빨간 불을 내며 알림이 울리는데, 불이 난 듯 아주 큰소리가 나서 무서울지경이었다.

이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나는 메로나를 잘 째려봐야 했다.






2시간이 지난 후 나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더위사냥포장을 하고 있었다.

포장이라 하면 굉장히 쉬울 줄만 알았는데 나는 더위사냥포장을 하고 나서 빙그레에서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더위사냥이 수백 개가 쏟아져 나오면 5명이 일렬로 줄을 서서 20개씩 박스 안에 넣으면 되는 거였는데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재빠르게 해야만 했다.

더위사냥이 딱딱하고 무거운 편이라 손목이 아작 나는 느낌이었다.

다음날 여러 선배들이 어제 어떤 작업을 했냐고 물어서 더위사냥 포장했다고 하니 다들 측은하게 바라봤다.

10개월 동안 일하면서 제일 힘든 일이 더위사냥포장이라 하면서...


'참나 그렇게 힘든 일을 출근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사람에시킨다고?'


2시간 동안 더위사냥 포장을 하며 속으로 울고 있을 때 같이 갔던 김쌤은 메로나 라인에 불량이 여러 번 나서 선배에게 한소리 두소리를 듣고 멘탈이 나간 상태였다.






퇴근시간이 되고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하듯 만나 두 손을 잡고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쏟아냈다.

그리곤 김쌤은 무겁게 일을 열었다.


"구슬쌤...우리 이번주까지만 하고 그만둘까요?"

나는 생각 하지 않고 바로 오케이 했다.





아.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구나.

나는 더위사냥을 포장하고 양손목 양어깨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였다.

통증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었다.

그리곤 몇 주 후 괜찮은 공고를 보고 지원한 한의원에 지금 일하고 있다.

이곳에 오기 위해서 더위사냥을 포장한 거였을까? ㅎㅎ


올해의 여름은 기억에 오래 남을 거 같다.

해외구매대행사업 + 쿠팡 +  빙그레 까지!







구슬사냥한 더위사냥

볼 때마다 손목이 저려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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