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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자 Mar 16. 2023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창백한 푸른 점 

들어가면서 


21세기에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로 불리는 칼 세이건은 1980년 「코스모스」라는 다큐멘터리 진행자로서 전 세계적인 인플로언서 과학자가 됩니다. 그는 단순하게 대중적인 유명세가 있는 과학자가 아니었으며, 나사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우주 탐사 프로젝트의 담당자이자, 책임자로 활동했습니다.      


이러한 그가 대중적으로 유명세를 가진 이유는, 뛰어난 소통 능력, 그리고 다양한 저작물을 통하여 대중에게 우주에 대해서, 인류의 지성에 대해서 접근했던 것도 있지만, 우주의 관점에서 인류와 지구가 가진 존재론적 의미를 던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하게 됩니다. 문명이 시작된 이레에 신화와 종교, 철학 그리고 오늘날에는 심리학에 대해서 그 질문에 답을 찾곤 합니다. 이 질문을 칼 세이건은 과학과 우주를 통해서 답했기에, 많은 대중이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고 생각합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대해서 2개의 파트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 두 번째는 지구에서 우주로 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칼 세이건의 생각을 살펴보며, 자신의 존재론, 인류와 지구의 존재론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코스모스란? 


천문학(Astronomy)은 인류의 문명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이라고 합니다. 과거 인류는 하늘에 있는 태양과 달, 별, 행성들에 대해서 관찰하고 규칙을 이해하며 세상이 가진 규칙성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계절의 변화, 시간에 대한 개념 등이 천문학의 데이터베이스가 쌓여가면서 만들어진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들의 조상들은 저 하늘을 바라보며, 태양과 달, 별들의 움직임들을 바라보며 세상(우주)에는 어떠한 질서와 규칙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르는 말이 바로, 「코스모스」입니다.      


우주에 대해서 3가지의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에게 익숙한 스페이스(Space)이며, 우주를 단순하게 공간적인 의미로 바라볼 때 사용하는 용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유니버스(Universe)로, 천문학적인 지식과 정보들이 서로 복잡한 상관관계를 맺으며 복잡하게 형성된 우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천문학적인 탐구의 주제로서 우주는 유니버스라고 합니다. 마지막은 코스모스(Cosmos)입니다. 코스모스는 본래 혼돈(Chaos)의 반대말로 나온 말로써, 무질서한 상태가 아니라 질서와 규칙이 있는 우주를 상상하면서 그리스 철학자들이 붙임 개념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질서와 규칙은 곧 종교와 신화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매우 개인적인 심상이 투여될 수도 있을 겁니다.      


코스모스에 대표적인 예로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 은하수를 우유가 흐르는 길이라 해서 밀키웨이(Milky way)라고도 부르는데, 해당 어원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어린 헤라클레스가 여신 헤라의 젖을 빨고 있을 때, 헤라가 헤라클레스를 떼어내다가 젖이 하늘에 흩뿌려진 것이 밤하늘의 은하수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신화에서 비롯되게 되었습니다.     

 

고내 그리스인들은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의 군집에 따라서 자기의 신화 속의 이야기를 부여한 ‘별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즉, 고대인들에게 밤하늘은 그들의 신화가 그려진 거대한 이야기책이거나, 기독교인들의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 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인류는 동서양 가릴 것 없이, 밤하늘에 별들에 자기들의 신화를 결부하여 이야기를 부여하고, 자신들에 대한 세계관을 하늘에 기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기록한 인류의 세계관, 세상을 이해하던 방식이 바로, 「코스모스」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별자리’는 반대로 인류가 얼마나 우주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했는지에 대한 중요한 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구에서 바라본 별들의 군집으로 별자리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실제 우주 공간에서의 상관관계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지구에서 바라본 하나의 단면만 고려한 것입니다. 3차원적으로 실제 별들의 관계는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며, 다른 행성에서는 지구에서 본 별자리의 형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겁니다.      


즉, 더는 과거의 고대 그리스인들의 별자리의 이야기들과 신화로는 오롯이 우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시절에는 인류가 가진 제한된 지성을 바탕으로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한 흔적들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과거 별자리에 부여된 신화와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우리의 문화 깊숙이, 앞으로도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우주와 세계를 바라보는 ‘과학적인 관점’이 아니라는 것을 칼 세이건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별자리 운세를 확인하며, 심하게는 여전히 천동설(지구중심설)을 믿기도 합니다. 이 또한 「코스모스」라 할 수 있지만, 칼 세이건은 과학적 지식으로 기반을 둔, 지성의 진보를 기반으로 한 「코스모스」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현재의 과학적 지식이라는 것도, 향후 10년, 100년이 지나면 하찮은 지식이 될 것이며, 오류투성이로 가득하게 해석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인류에게 과학적 지식, 지성은 언제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완벽한 지식, 진리는 우리에게 아직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 하늘의 질서와 규칙, 우주의 존재와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끊임없이 되물으며, 하나하나 진실을 밝혀 나가는 그 과정, 그 과정이 칼 세이건이 말하고자 하는 인류의 지성으로서의 「코스모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시작, 빅뱅


우주의 시작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학적으로 현 우주의 시작은 빅뱅(Bigbang)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흔히, 이 빅뱅이 성경의 천지창조에 “빛이 있으라(창세기 1장)”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시 이론을 처음 부장한 조르주 르메르트(1894~1966)가 가톨릭 사제이기도 해서 이러한 오해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르메르트의 생각은 달랐다고 하며, 오늘날 빅뱅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이라 보기 어렵기에, 창조에 개념이라 아닙니다.      


빅뱅 이론의 발견은 꽤 흥미롭습니다. 빅뱅이론은 천문학자들이 우주를 관측하며, 점차 우주가 가속으로 팽창하고 있다는 관측 결과를 역으로 생각하여, “최초의 순간에는 우주의 모든 질량이 한 점이 모여있을 수 있었겠네?”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발전한 이론입니다. 한 점이 모여져 있었던 우주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여전히 그 폭발하는 가운데에 있는 상태가 현 우주라 할 수 있습니다.     


빅뱅의 사건에 대해서 칼 세이건은 다음과 같이 「코스모스」에서 언급합니다.      


“지금부터 100억 또는 200억 년 전에 빅뱅(Big Bang)이라고 불리는 대폭발의 순간이 있었고 우주는 그 대폭발에서 비롯됐다. 왜 그런 폭발이 있었는지는 신비 중의 신비다. 그러나 폭발이 있었음은 거의 틀림없는 사실이다. 현존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대폭발의 순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밀도로 모여 있었을 것이다. 그 상태는 부피를 전혀 갖지 않는 수학적 의미의 점이었다. 바로 그 점이 ‘우주의 알’이었다. 지구상 여러 문화권들의 창조 신화에서 우리는 우주의 알이라는 개념을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대폭발의 순간에 이 우주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현존 우주의 어느 한구석에 모여 있었다는 것이 아니다. 우주 전체,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들어 있는 공간마저도 하나의 점에 우그러져 있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사건이 발생할 여지가 전혀 없이 꽉 차 있는 그러한 점이었다. (중략) 대폭발에서 은하단, 은하, 항성, 행성으로 이어지고, 결국 행성에서 생명이 출현하게 되고 생명은 곧 지능을 가진 생물로 진화하게 된다. 물질에서 출현한 생물이 의식을 지니게 되면서 자신의 기원을 대폭발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식할 수 있다니, 이것이 우주의 대서사시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코스모스」중에서


칼 세이건이 보기에는 지구, 그리고 인류라는 종은 빅뱅이라는 한 사건에서 발생하게 된 ‘보편적인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라는 종의 보편성을 바탕으로, 우주에 인류 이외의 지적 생명체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르메르트와 허블이 우주의 팽창의 사실을 바탕을 역으로 생각하여, 빅뱅 이론이 만들어진 것처럼, 칼 세이건은 인류가 존재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다른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칼 세이건이 생각하기에는 이 우주는 너무 넓으며, 충분히 많은 시간이 주어졌기에 우리만이 유일한 지적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칼 세이건이 사후 40년간, 우리는 지적 생명체는 커녕 지구 밖에서 생명체를 확인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인류 이외의 생명체를 확인하는 것은 점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화성의 경우에는 매우 높은 확률로, 과거에는 생명체가 살았거나, 현재에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생명체가 생성이 유리한 환경의 행성들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빅뱅 이전에 한 점에서 모두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와 다른 생명체를 만난다면, 그 모습이 어떻든, 어떠한 진보 수준을 가지고 있던, 그들도 우리와 같은 빅뱅의 후손임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창백한 푸른 점 


인류의 보편성, 우리와 다른 지적 생명체의 필연성, 그리고 우리는 모두 빅뱅의 후손이라는 칼 세이건의 생각은 그가 바라보는 우주관에도 깊게 베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우주관 가운데에서는 그가 가진 인류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칼 세이건은 나사(NASA)의 화성 탐사 계획인 바이킹 프로젝트의 총책임을 맡았으며, 우주 탐사 프로젝트인 파이어니어(Pioneer) 계획, 보이저(Voyager) 계획에도 참여했습니다. 이 두 탐사선에는 인류에 대한 메시지가 남겨져 있는 그림, 그리고 세계 여러 인사말이 녹음된 레코드판이 들어가 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탐사선은, 일종의 바다에 띄운 유리병에 담긴 편지와 같은 것이죠.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지구로부터 61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 장의 사진을 찍게 됩니다.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을 우리 태양계가 함께 찍힌 사진이기에 ‘가족사진’이라 불렀습니다. 이 사진을 보며, 칼 세이건은 훗날 그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이렇게 언급을 합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은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중략)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인류 역사 속의 무수한 장군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 작은 픽셀의 한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조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 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중략)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를 할 수 있는 행성은 없습니다. 잠깐 방문을 할 수 있는 행성은 있겠지만,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좋든 싫든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합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     


                                                                                                       -「창백한 푸른 점」중에서


칼 세이건에게 지구와 인류는 특별하지 않은 ‘보편적인 존재’입니다. 우리, 그리고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인식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서로가 서로에게 존중하며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 점도 되지 않은, 지구라는 곳에서 우리는 자기의 욕심, 특권의식 등으로 너무 많은 갈등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우리가 보편적인 존재임을 밝히며, 인류에게 세계시민의식, 더 나아가서 우주시민으로서의 의식으로 확장해 나가길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칼 세이건은 1980년 ~ 1990년대 가장 유명한 과학자였으며, 활동가로 활동했습니다. 반핵과 환경운동에 대해서 깊이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이미 금성(Vinus)이 온실효과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는 지옥과 같은 행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지구라는 곳이 지켜야 하며 아직까지는 우리가 살아갈 유일한 터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칼 세이건이 활동하는 시기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우리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중국과 미국의 패권 전쟁, 우크라니아 전쟁으로 심화된 국가 간의 갈등 구조로 인하여, 신냉전이라고 불리는 세기로 점차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신냉전으로 전환의 시기인지, 세계화의 흐름 속에 작은 굴곡인지는 필자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인과 공동체만을 위한 욕심, 특권의식은 곧 갈등과 파괴에 귀결이 된다는 점을 「창백한 푸른 점」을 바라보며, 우리가 알게 모르게 외면했던 우리와 같은 빅뱅의 자손이자, 우리와 같은 보편적인 다른 동포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됩니다.      




코스모스 2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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